더 아픈 심벌
본문
벌을 줄 때 옛 서당이나 학교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 손을 들고 서 있게 하거나 무릎 꿇려 앉혀놓거나 한다. 육체적 고통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나 한국인의 벌은 많은 사람 앞에 우세가 되는 정신적 고통 곧심벌이 주체가 되고 있다.서양의 학교에서 육체에 고통을 주는 체벌의 전통은 유구하지만 심벌의 전통은 없다.한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웃게하여 창피를 주는 [우세]가 벌의 주체가 돼 있음은 바로 우세라는 심통이 체통보다 더 아프다는 한국인의 집단논리가 인수로서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남을 웃기게 하여 징벌하는 민속은 다양하다. 어릴 때 잠자다가 요에 오줌을 싸면 키를 씌워 이웃집에소금을 얻으러 보낸다. 이것은 키를 씌운 몰골로 남이나 이웃에게 우세를시키는 행위다. 사실 그 이상한 몰골로 소금 얻으러온 아이를 보고 웃지않을 어떤이웃이 있겠는가. 우세거리로 만들어 잘못을 자제시키는 우세문화의 하나랄 것이다.옛날 며느리는 그집 불씨를 꺼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주부로서의첫째 조건이었다. 불씨는 종가에서 분양 받아 연중 그 불씨로 밥을 짓고제사의 향불로 쓰게끔 돼있어 주부는 불씨화로에다 꺼지지 않게끔 간직해야 했다. 곧 불에도 피가 통해 있었던 것이다. 자칫 실수로 그 불씨가 꺼지면 종가나 친척집에 가서 불을 빌려와야 한다. 불을 빌리러갈 때 며느리는 신발을 거꾸로 신고 가게끔 돼있었다. 불씨를 꺼뜨린 데 대한 징벌로서 우세를 시키고자 신발을 거꾸로 신켰던 것이다.아궁이 불을 땔 때 자칫 조심하지 않으면 불똥이 튀어 치마에 구멍을내거나 치마자락을 태우는 경우가 생긴다. 이 실수에 의한 치마의 훼손은반드시 붉은 천을 대어 깁도록 관습이 돼 있었다. 무명치마면 흰 베로,삼베치마면 삼베로 기워야 티가 나지 않을텐데 굳이 사람의 눈을 끄는 붉은 천으로 깁게 하는 뜻은 그 과오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우세를 시켜 징벌하려는 우세문화의 일환이랄 수가 있다.이 밖에도 아녀자들이 실수나 잘못이 있을 때 바가지를 씌운다든지 바구니를 씌운다든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몰골로 마을을 돌게 하는 습속이 있었다. 조리를 돌려 우세를 시키는 조리돌림 역시 우세문화의 구현이랄 수 있다.일제 때만 해도 서울 노량진은 무당들의 집단촌이었다. 이곳에 무당들의 동업조합이랄 수 있는 풍류방이 있었는데 이 풍류방의 기강이나 규약이 엄했고 그를 어겼을 때 가하는 벌칙도 엄하고 다양했다. 이를테면 [나무세]라는 벌칙이 있었다. 나무세는 남우세 곧 남들 앞에서 비웃음거리가되도록 하는 한국 특유의 처벌 민속이다.사람이 많이 오가는 노나루나 동구밖에 속바지저고리만 입혀 세워두거나 머리를 산발시켜 세워둔다. 얼굴에 귀신 형상의 먹칠을 하여 풍류방마당에 세워놓기도 하고 짚신 거꾸로 신겨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걸립을시키기도 한다. 이같은 우세행각을 나무세라 했다.나무세는 풍류방 뿐 아니라 기생들의 동업조합인 권번에서도 베풀어졌었다. 선배기생의 단골손님을 가로채면 머리를 박박 깎아 손님방에 들어가게 하여 우세를 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나무세는 촌락자치제도인 향약에서 명문화돼 있기도 했다.율곡 선생이 정해서 베풀었던 해주 향약의 실례를 들어보면 부모에게핏대를 세우고 말대꾸를 하는 자, 부모 초상을 당한지 한달 안에 술을 마신 자는 상벌이요, 남을 모함, 모략하거나 그로써 싸움을 유발시키는 자는 차상벌이며, 많은 사람 앞에서 양반앉음을 한다든지 말에서 내리지 않고 지나가면 차중벌, 게을러 일하지 않거나 분에 넘게 낭비를 하거나 부인의 차림새가 칠칠맞거나 하면 하벌이다.이 벌칙에 가하는 형벌의 거의가 남우세다.상벌의 경우 입정면책,곧 그 마을의 집회소인 향청 마당에 세워두고 우세를 시키는 마당 나무세다. 차상벌은 만좌면책, 곧 향약의 집행진이 둘러앉은 한복판에 앉혀두고 책망하는 방 나무세를 시킨다. 중벌은 서벽면책, 곧 얼굴을 벽쪽에 향케 하여 앉혀드는 벽 나무세를 시킨다. 곧 처벌보다 얼굴의 훼손이 한국인에게는 보다 큰 벌이 될 수 있었으며 이 체면의식이 나무세라는 처벌민속을 체질화시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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