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 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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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딸을 낳으면 [삼장액물]이 생겼다고 했다. 바라던 아들이 아니라서 액물이 아니다. 자라면서 벽장에 가두어 길러야 할 일이 세번이나 생긴다 해서 삼장액물이다.그 한번은 왕실 결혼으로 간택이 있을때 숨기고 공녀를 위한 채홍사가 들이닥치면 숨기며 유랑극단이랄 사당패가 굿마당을 벌리면 딸을 숨긴다.사당놀이의 하이라이트인 동무나 줄타기등 뼈가 굳기 전의 소녀를 필요로하는 사당패요 그 패거리가 거쳐가면 그 고을에 한두 계집아이가 증발하게 마련이다. 그중에는 애비가 돈욕심으로 팔아넘기기도 하지만 쥐도새도 모르게 유괴한다. 곡마단이 사당패 대신 이 소녀 유괴를 계승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평안도나 함경도 변방에서는 소녀 실종이 잦았는데 밤 사이에 없어지면 되놈이 업어갔다고 했다. 남녀비율에서 여자가 현저하게 부족한 중국동북지방에서는 변방 소녀를 유괴해가 이를 숨겨두고 길러 아내를 삼곤했던 것이다. 한양 엣 밤거리에서는 상경한 시골 서생들이 자루에 담겨곧잘 업혀가는 사건이 벌어졌었다.부자집 마님과 동침을 시키고 다시자루에 담겨 풀려나는 행복한 유괴다. 남편은 아들을 못낳고 종사는 이어야만 할 때 이같은 씨내리 유괴를 했다. 유괴를 뜻하는 영어가 키드내핑이다. 17세기 영국에서 미국 답배농장 노동을 위해 소년을 유괴한데서비롯됐다던데 한국의 유괴를 뜻하는 [업어간다]는 이처럼 성을 위한 것이었다.개화기에 한성 정동에 서양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조선 아이들을 납치해다가 솥에 삶아서 말린 다음 가루내어 사진약으로 쓴다는 유언이 나돌았었다. 양인을 싫어하는 보수세력이 퍼트린 말일 것이나 사진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 대중에게는 고스란이 먹혀들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들이를 못하게 했고 부모가 업고 나가더라도 순검이 서서 정동에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초기 한성주재 외국공관들에서 조정에 부친가장 잦은 문서는 이 유언에 대한 항의였음으로 미루어 심각한 사회문제였었음을 짐작케 한다.일제때도 부모들은 어린이 유괴의 공포에서 해방되진 못했다. 한센씨병을 나수는데는 인육이나 사람 내장밖에 없다는 것이 상식이 돼있었고이에서 비롯된 유괴사건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괴의 목적은 다양했지만 나리양의 비극처럼 부모의 애정을 담보로 일확 천금하려는 질악한 유괴는 서양에서 배운 국제화시대의 독버섯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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