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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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만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문안에 들어서면 자작나무로 잘 가꾸어진 기하학적 구도의 녹지가 나오고 보도에는 눈부실 정도로 하얀 백사가 깔려 있었다.그 한복판의 못에는 백조가 유유히 노닐고 있었는데 그 마릿수는 홀수이게 마련이었다. 편벽이 심한 히틀러가 짝수를 싫어했기 때문이다.그 못가에 수용소장실이 있었는데 항상 모차르트의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인류사상 최악의 인간악이 저질러진 현장이 이토록 목가적이었던 것이다.붉은 벽돌 건물인 수용소 가운데 가장 악명높은 곳이 제11블록이다.한번에 2천명씩을 한데 몰아넣고 독살시키는 처형실이 그 지하에 있기 때문이다. 티크론 B라는 가스가 분사되면 비명을 지르며 철창과 벽에 좌충우돌, 가슴을 피가 나도록 헤집으며 죽어갔던 것이다. 이 수용소가소련군들에 의해 해방된 것이 1945년 1월 27일,오늘로써 꼭 50년이 된다.소련 병사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못다죽인 6천명과 처절한 처형 현장만이 남아 있었다.로프 원료로서의 인간 두발과 블록 원료로서의 인간 골분 그리고 의치와 안경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인간의 살갗으로 만든 전등갓이며 인간 기름으로 만든 빨랫비누도 수거되었던 것이다.안네 프랑크가 네덜란드 수용소에서 가축열차에 실려 이 아우슈비츠에 온것은 1944년 9월의 일이다. 이 소녀는 벽돌 벽틈에 돋아난 작디작은 노란꽃 하나 꺾어다 놓고 하루종일 들여다 보았다고 한 생존자가 회고하고 있다.[이루어질 티끌만한 가망이 없는데도 바보스럽게 희망이 저버려지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는 안네의 일기 대목이 이 아우슈비츠의 노란꽃과 연계되어 여운을 끈다.한 감방에 같이 있다가 조금전 호명되어 나간 자들이 독살되어 화장되고 있는 굴뚝 연기를 살아남은 자들이 창변에 모여 바라보고 있었다.누군가가 노을진 하늘로 시선을 옮기더니 석양이 아름답다고 혼잣말을 했다. 이어 누군가가 속삭였다.[세상이란 왜 이다지 아름다운지]하고. 불려나갈 날이 내일로 다가와 있는 자의 속삭임이었다. 이 광경을 생존자인 빅토르 프랑클이 전하자 그 석양판이 전망되는 아우슈비츠의 창변이 이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창으로 관광대상이 되고있다 한다.지금 아우슈비츠에서는 50주년 행사가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다던데 그중 감동적인 것은 유태인들이 당시 줄무늬 수의를 입고 줄지어 서서 제 11블록 지하실 바닥을 치며 통곡하는 광경이라 한다.유태인에게 예루살렘 [통곡의 벽] 그 하나만으로는 한을 풀기에 모자랐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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