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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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고흐는 왼쪽 귀가 없다.화가 고갱과 언쟁끝에 화를 가누지못하여 그 자리에서 잘라버렸던 것이다. 이 세기적 두 화가가 남프랑스 아르르에 [노란 집]을 마련, 의기투합하여 그림을 그리다가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남프랑스 아르르에 집한채 마련하여 집안팎을 노란칠을 했을 만큼 이 두 화가가 노란색에 미쳐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 즈음에 그린 것으로 보이는 고갱의 노란 배경의 [두 자매]의 원화는 2차대전중 전화로 사라진것으로 알려져 왔다.한데 근간에 러시아 군대가 독일로부터약 탈해간 소위 전리품으로 러시아 미술관에 보관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 밖에 고흐 드가 르누아 르렘브란트 고야 등 러시아가 독일에서 약탈한 세계적 명화 3백64점을 원소유주인 독일에 반환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유명한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이 발굴한 터키 트로이 유적의 보물들도 2차대전 직후 러시아가 전리품으로 약탈해갔음이 겨우 2년전에야 밝혀졌으며 이에 대한 반환도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이집트하면 피라미드 앞에 앉아있는 인면수신의 스핑크스를 연상할 것이다.원래 그 스핑크스의 턱에는 우람한 수염이 붙어있었던 것을 영국지배시대에 떼어다가 대영박물관에 보관해왔던 것이다. 이집트정부의 꾸준한 노력으로 1백수년만에 그 수염을 다시 찾아 붙이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개인간의 약탈행위는 천인공노할 범죄로 분노하면서, 국가간의 약탈은 순리로 정당화돼온 것이다. 금세기안에 청산하고 넘어가야 할제국주의의 마지막 잔재가 바로 이분야가 아닐 수 없다.약탈문화재의 피해국인 우리나라도 할일이 많아졌다.프랑스군이강탈해간 외규장각 고문서의 반환이 그것이다. 당시 약탈해간 것이 고문서만은 아니다. 50만프랑의 거대한 은괴를 비롯, 옥새 9개를 비롯한 전각 도장들, 다수의 도자기 제기등이 당시 나폴레옹 3세에게 헌상됐던 것이다.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약탈해간 문화재 반환도 다시 제기돼야 한다.모르게 훔쳐간 것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국보의차원을 넘어 세계적 보물로 지정될 것이 확실시되는 석굴암 십일면관음 보살상앞에 뭣인가 놓였을 것으로 보이는 대석이 있다.바로 한국 통감이던 소네노자가 고스란히 약탈해간 오중석탑이 놓였던 대석인 것이다.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는 우리 국보급 문화재만을 훔쳐가 자기집에 장물박물관을 차렸을 정도다. 러시아의 약탈명화 반환은 우리에게 무언가 부산히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해주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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