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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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수년전 노벨상 수상작가인 펄벅 여사가 경주여행을 하고 있을때 일이다. 마침 늦가을인지라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등짐을 진 농부가 차창밖을 지나가고 있었다. 펄벅의 파란 눈길은 소달구지에 얹어 가도 될 짐을 굳이자기 등짐으로 나누어 지고가는 농부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것이다. 펄벅은 혼잣말을 했다.[저것이 휴멀리즘이다. 내가 한국에서 볼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다]고--. 휴멀리즘이란 말은 사전에 없다. 펄벅 여사가 그의 에세이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말이다. 바로 인간애를 뜻하는 휴머니즘의 Hum과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의 mal을 합성해 휴멀리즘이 되었다. 짐승에 투사되는 인간애가 곧 휴멀리즘인 것이다.여사는 물었다. 감나무 높은 가지끝에 따지 않고 남겨둔 감 몇 개를 보고는 너무 높아서 따기를 포기한 것이냐고--. 까치밥으로 불리는 역시 한국인의 휴멀리즘임을 알고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이었다.가족을 식구라고 하는데 한솥 밥을 먹는 사이라는 뜻이다. 식구와 대비되는 생구라는 말도 있는데 종이나 하인 식객 과객 등으로 같은 피가 섞이지 않은 인간군이다. 이 인간군인 생구의 범주에 유일하게 끼이는 짐승이 소라는 것이다. 곧 소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반인간이었다.밭을 갈고 있는 소 두마리를 보고서 어느 소가 더 잘 가느냐고 귀엣말로 물었다는 황희 정승의 고사는 유명하다. 우리 한국인의 유전 자질인 휴멀리즘 아니고서는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일들이다.오늘 11일이 정초 첫 소띠날인 상축일이요 휴멀리즘의 축제일이다. 소를 부리기 위해 소의 코를 꿰어놓은 코뚜레를 이 날만은 풀어준다. 외양간에는 검불을 갈아 넣어주고 쇠죽을 끓일때 여물을 줄이고 대신 콩을 넣는 성찬으로 대접한다. 이 날은 고기 다지는 것이 연상되는 도마질은 일체 삼간다.소가 들으면 얼마나 상심할까 하는 소의 심정까지도 배려하는 상축일이다. 그리하여 이 날만은 무김치도 썰지 못해서 손으로 무질러 먹어야만했다. 여느 상축일에도 이 만한 휴멀리즘이라면 소띠해의 상축일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축년 축일에는 헌두루마기를 걸치고 헌갓을 쇠뿔에 씌우기까지 했다.암내를 내는 소가 있으면 골라다가 암소에는 홍실 수소에는 청실을 목에다 걸어 주고는 한외양간에 합방을 시켰다. 지금 휴전선 비무장지대 복판의 무인도에 황소 한마리가 표착하여 굶주리고 있다 하던데 이 휴멀리즘의 천국에서 그 소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축일이 안타깝기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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