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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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갑자기 폴리오(소아마비)에 걸려 하체를 쓰지 못하게 된 것은 1921년 여행중의 일로 당시 40세였다.1920년의 선거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가 패배의 쓰라림이 채 가시지도 않은 때로 정계 복귀를 노리고 있었는데 절망적인 꼴을 당하고 만 것이다.병신이 된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거나 그 때문에 동정받기 싫은 그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모터보트와 기차편을 이용, 뉴욕의 프레스페리 안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리고 지팡이에 의지하여 겨우 발을 뗄 수 있게 된 것은 입원한지 3년 후의 일이었다.그 동안 그는 그를 보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의 정치 야망과 육체 결손과는 양립할 수 없다고 권고했다.그렇게 갈등을 겪고 있을 때 친지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의 수필 한 편을 읽어보도록 보내 왔다. 그 글에서 헬렌 켈러는 만약 사흘동안만 시한적으로 시력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그 시력을 쓰겠는가고 자문하고 내일이면 시력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대들은 눈을 유효하게 쓸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육체의 결손에 급급하지 말고 결손되지 않은 잔여 육체를 최대로 활용한다는 사고의 전환과 도마뱀의 꼬리가 돋아나듯이 육체의 결손이 생기면 헬렌 켈러처럼 탁월한 다른 능력으로 보상됐듯이 지체 결손은 자신의 정치역량을 조장시키는 신의 배려로 감사하기에 이른 것이다.이를테면 헬렌 켈러는 아직 잎이 돋아나지도 않았는데 가지의 냄새를 맡고 무슨 나무인가를 알아맞히고 거리를 걷다가 골목을 돌면 교회가 나온다는 것을 후각으로 알아맞혔는데, 그것이 가톨릭인지 프로테스탄트인지까지 식별할 정도였다.세계의 고전 [좌전]은 좌구명이 장님이 아니었던들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요[사기]는 사마천이 거세당하지 않았던들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역사의 상식이다.한비자에게 그토록 냉철한 인간 관찰을 가능하게 했던 것도, 서머셋 몸이 그토록 흉금을 울리는 문장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벙어리에 가까운 혹심한 말더듬이었기 때문이다.그러하듯이 루스벨트가 미국의 대불황을 극복하고 뉴딜정책등 개혁을 추진하며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의지와 통치능력은 휠체어를 타야 했던 것과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는 것이다.장애자 복지향상을 위해 제정된 루스벨트 국제장애자상을 탄 것은 복지를 잘 했다고 준 것이 아니라 루스벨트로 구현된 정신력을 장애자에게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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