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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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여성에 가한 가혹행위가 [위안부]라면 한국 남성에게 가한 가혹행위는 [문어방] 이다.문어는 단지로 가두어 잡는데 일단 단지 속에 갇히면 제 발을 뜯어 먹으며 길게는 반년을 살아낸다. 그래서 제살을 뜯어 먹으며 살지 않을 수 없는 극한상황을 문어방이라고 한다.일제때 북해도로 끌려가 철도공사와 댐공사장의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던 한국인 집단수용소의 별칭이 다코베야-- 곧 문어방이다. 이 문어방에서 죽아간 한국 사람들은 공사장 인근에 개처럼 묻혔고 완전히 죽지못한 이들 원혼이 북해도 이역 중공을 울며 헤맨지 50여년을 넘기고 있다.방학을 맞은 한국학생 30명 재일 한국학생 10명 뜻을 같이 하는 일본학생 20명 도합 60명이 북해도 문어방 희생 한국인의 유골 발굴작업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방학 활동으로 괄목할 만하며 어선 나포 등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는 일본이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는 계기로 뜻을 부여할만하다.일제때 이 문어방 희생자의 장례를 치렀던 후지시마라는 일본인 스님의 회고담을 옮겨 본다. [짚자리에 돌돌 말린 시체옆에 못먹어 얼굴이 부은 그의 아들이 벽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죽은 시체의 머리맡에 빈밀감상자 하나 엎어놓고 <아버지>라고만 써 붙여 놓았다.그 앞에는 쭈그러진 물주전자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문어방의 벽에는 죽기 전의 망인이 쓴듯한 낙서를 읽을 수 있었다.{꿈에 어머니의 행주치마냄새를 맡았다} {고향 정거장을 떠나올때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신 돈5전은 쓰지 않고 죽을때 쥐고 가겠다} 등.문어방 밖에는 동료들이 밤새도록 노래를 불렀는데[밟아도 밟아도 /죽지만 말라 /또다시 꽃피는 /봄이 오리라…} 하는 밟아도 아리랑이었다.고인이 죽으면서 남긴 유언은 이렇다. 내가 죽으면 두홉의 잡곡이 남을테니 우리 문어방의 2백여 동료에게 한톨씩이라도 나누어 주라는--.이 한국 노동자들의 철도공사는 어찌나 난공사였던지 침목 하나에 한국사람 한 명씩 인주로 희생됐다 할 정도다. 그래서 북해도 동포들은 한때 이 철도로 달리는 기차타기를 기피했다 한다.죽기 살기로 탈출 시도도 했지만 붙잡히면 주모자는 공개 박살하고 추종자는 족쇄를 씌워 노동을 시켰다.몸이 아파 1주일 이상 일을 못하면 후송조치하는데 흔적도 없이 증발돼 버렸던 것이다.꽃피는 봄이 돌아온지 반세기를 지나 봉사활동하는학생들 손에 빛을 보게 될 문어방 유골들이 조국을 향해 부르짖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위정자들은 무릎 꿇고 경청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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