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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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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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의 집인 구중궁궐에 사는 궁녀들간의 동성애를 대식이라 했다.대식 관계가 이루어지면 마치 신랑 신부가 혼례를 올리듯 대식례를 올려 동성 부부간이 된다. 그렇게 백년 해로하는 쌍도 있고 도중에 출궁하거나 사별하거나 또 임금님의 사랑을 입으면 대식과부가 되어 수절하기도 한다. 대식말고 상면이란 풍습도 있었다. 마음 맞은사람끼리 의젓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애를 밴다는 플라토닉 러브의 동양적 표현이다. 궁녀나 처녀과부가 불의의 애를 뱄을때 상면해서 애를뱄다고 변명했고 그것이 통하던 시절도 있었다. 은행의 암수나무가서로 맞바라보기만 하고 열매를 맺듯 백로도 암수가 서로 눈을 맞추고 교감시키면 새끼가 배는 것으로 알았다. 바로 이 백로의 플라토닉러브에서 상면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우리 조상들은 그만큼 백로를 결백하게 보고싶었고 오염시키는데저항이 남달리 컸다. 고대 중국의 조류 백과 [금경]에 보면 백로는청빈하고 결백한 벼슬아치나 세속에서 초연한 선비의 기상이요, 백로가 날개치는 작태는 티끌 하나 묻지않은 깨끗한 마음과 덕으로 포용하는 리더십이다. 위정자가 백로의 깃털로 만든 관인 도가머리를 썼던 것도 그 때문이다. 새 수령이 부임해오면 백성들이 백로의 깃털로만든 부채를 선사한 것도 마음을 비운 깨끗한 다스림을 바라서였다.게르만 민족의 임금들도 왕관에 백로의 깃을 꽂는 관습이 있었다던데결백때문인지 날카로운 부리로 땅속 깊이 헤쳐 먹이를 찾아내듯 전지전능을 과시하려는건지 알수 없다.그래서 백로의 죽음은 한마리 새의 죽음으로 의미를 다하지 않는다는데 세상이 공통되고있다. 이집트에서 백로가 죽으면 남부여대 유랑의 길 떠날 차비를 한다고 한다. 백로는 나일강 유역의 풍흉을 점지해주는 신의 사자이기 때문이다. 한말 대원군 집정시절 팔도에서 백로가 떼죽음한 것을 두고 미구에 국망의 난리가 난다하여 민심이흉흉했었다. 대원군이 서양 화륜선의 대포를 맞아도 부서지지 않게끔 백로 두루미등의 깃으로 우선을 만들도록 하명했기에 백로 대학살이 감행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대원군 백로 대학살 이래의 대규모 학살이 거제도에서 벌어진 것이다. 백로에 얽힌 전통 인식에서 떼죽음 이상의 불길한 예감이 드는 환경사건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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