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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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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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연인 안토니오는 투구만한 크기의 금잔을 두손아귀에 감싸들고 술을 마셨다.바로 클레오파트라의 유방을 틀로 하여 만든 유방잔이다. 두 손으로 들어야만 하는 투구만한 크기였다면 클레오파트라는 날씬과 거리가 먼 비만미인이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서양이 클레오파트라 라면 동양은 양귀비다.[구당서] 열전에 보면 양귀비 용모를 두고 [자질풍염] 하다 했다. 날씬한 미인에게 풍염하다는표현은 할 수 없고 보면 양귀비도 비만 미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대 문헌인 [매비전]에 매비가 양귀비더러 {비비} 곧 살찐 종년이라고 매도 하는 대목이 나온다. 꽤나 육중한 체구였던 것 같다.인물을 아름답게 보는 미의 기준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이를테면 5세기경의 화가들이 그린 마리아상은 풍만한데 중세 비잔틴시대 마리아상들은 날씬하다 못해 길쭉하기까지 하다. 다시 르네 상스시대에는 살이 붙기 시작하고--.그러하듯이 우리 나라에서는 60년대까지만 해도 풍만미가 수척미를 웃돌고 있었다.[아랫배 천석] 이라는 말도 있듯이 부귀는 풍만한 복부와 등식을 이루고 있었다. 배가 나오면 돈이 붙느니 사장 배니 하는 것도 이 등식에서 비롯된 것이다.우리 옛 문헌들에 적힌 소외받았던 여인상은 이렇다.①허리가 가는 여인 ②몸이 가벼운 여인 ③등뼈가 드러난 여인 ④복부가 좁고 꺼진 여인⑤허리가 가는 여인 ⑥둔부가 작은 여인 ⑦살갗이 얇은 여인 ⑧사타구니에 살이 붙지 않은 여인⑨주발 젖통인 여인등이다.큰 유방을 사발 젖통이라 하고 상대적으로 작은 것을 주발 젖통이라 했다. 곧 비만 여인 지향임을 알 수 있다. 살이 쩌야 아들 딸 잘낳고 복을 부르고 후덕할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전쟁 후유증에서 되살아 나기 시작한 60년대 후반부터 구미문화의 영향때문인지 날씬 인식이 반등하기 시작, 지금 풍만은 추악(추태)의 대명사요 수명을 단축하는 생명의 적으로까지 타락하고 말았다. 부귀의 상징이던 그 뱃가죽을 잡아보고 주간지만한 두께면 조심을 하고 월간지만한두께면 입원 치료를 해야하며 백과사전 두께만 하면 생명보험사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처량한 꼴이 되고 말았다.한데 유럽에서 적지 않이 4백20만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추적조사에서 50세 이후에 키에 대한 체중비율이 높은 뚱보일수록 병을 앓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결과를 얻었다는 보도가 있었다.구박받아온 비만자들에게는 아랫배 천석이라는 우리 속담이 다시 발효하기 시작하는 전환기의 나팔소리와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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