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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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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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왕연은 평생을 돈과는 단절하고 살았다. 따라서 돈을 만진 적도 또 돈이라는 말을 입으로 한 적도 없었다. 주변에서 누군가 돈얘기를하면 집에 돌아와 그 말을 들은 귀를 씻는 세이를 했을 정도다. 어느날부인이 왕연이 자고 있는 침상 둘레에 발디딜 틈없이 돈을 깔아놓고 어떻게 하는가를 지켜 보았다.침상에서 일어난 그는 사람을 부르며 {아도를 치워라!}고 고함쳤다.아도는 [저것] 이라는 당시의 지시대명사로 끝내 돈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해서 아도--하면 돈에 깨끗한 사람을 뜻하게 됐다 한다. 옛날 벼슬을추천할때 {저사람 아도요--} 하고 귀엣말을 하면 최고의 인간 평가였으며 저승에 가도 팔대지옥앞을 흔연히 프리 패스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도인간이다.서울 양천 앞 한강을 투금탄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전통 금전관을 엿보게하는 고사가 깃들어있는 여울이다. 형제가 길을 가던중 아우가 크고작은 금덩이 두어개를 주웠다. 나루를 건너면서 작은 금덩이를 형을 줄까 혼자 갖고 말까--하는 갈등에 시달린 끝에 공것은 사특한 마음을 일으킨다 하여 그 금덩이를 강물에 돌멩이처럼 던져버렸다 해서 투금탄이다.[일사유사]라는 서민들 기록에 보면 나이 어린 형제를 바느질 품삯으로 기르고 있는 가난한 과부가 우연히 처마밑에 노출된 금 은 보화들이가득히 찬 가마솥을 발견한다. 이 과부는 {재는 재다} 하고불로 소득은아이들이 자라는데 해가 된다 하여 땅에 묻고는 이사를 해버린다. 서민들에게 침투된 아도정신의 표출이 아닐 수 없다.한양 거지들 가운데 원심이로 불리는 일단의 거지가 있었다. 논 밭에거름을 친다던가 밭갈이를 하는 등 응분의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밥을 얻는 전통을 지키는 거지이다. 조선조 초의 원심이라는 거지가 불로소득은반드시 화로써 응보받는다는 거지정신을 계승한 거지 유파라는 설이 있다. 이 만한 철학적인 거지까지 있었던 우리 나라다.엊그제 서울 도심 고층 호텔에서 아도정신에 동떨어진 요즘 세태를 풍자하여 돈을 뿌린 사나이가 있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돈을 뿌린 사나이라기보다 뿌렸다는 3백70만원 가운데 회수된 돈이 8만원에 부과했다는사실이다. 회수율이 2%에 불과한 것이다.바로 이 수치에서 우리 공공의식의 지표를 보는 것 같다. 물론 행인들은 횡재했다고 좋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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