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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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밀이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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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목욕탕에서 멸망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욕탕에서 skdhkewkgud의 때밀이 판에 눕는다.그럼 노예 소녀들이 때밀이를 하고 여자안마사가 사지오체를 샅샅이 주무른다. 그러는동안 반나의 소녀들이 둘레에 서서 향내나는 나뭇가지를 흔들어 파리를 쫓는다.이 향락자는 누워 마냥 먹고 마신다. 목까지 차서 더 먹을 수 없으면 붉게 물들인 새의 깃으로 목을 간지려 음식을 토해 내고는 또 먹는다. 향락자가 부인일 경우는 안마하는 자가 거세노예로 바뀐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이 화려했던 목욕문화가 유럽에서 단절된 것은 바로 향락을 거부하는 기독교문화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그후 중세에 십자군이터키에서 목욕문화를 묻혀들였고, 이 중세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이 혼탕된 매춘굴로 타락하여 매독과 페스트의 온상이 되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그리하여 16세기 이래 유럽에서 목욕문화가 증발했던 것이다.당시의 엘리자베스 1세도 한달에 한번밖에 목욕을 하지 않았다.18세기 프랑스상류사회의 예절을 가르치는 책에도 매일 얼굴과 손을 씻거나 목욕을 하는 것은 미용과 건강에 좋지 않다고 했다. 곧 서양에 있어 도덕성이라는 정신문화와 목욕이라는 향락문화와는 반비례 관계에 있었음을 알수 있다.동양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목욕을 의미하는 탕자가 방탕할 탕자가 된다는 사실만 미루어 보아도 그렇다. 나라를 기울게한 양귀비의 요염정치도 바로 화청지라는 초호화 욕장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우리나라 전통 가옥에도 욕탕은 없었다.제사 지내기 위해 제주가 구유에 물을 떠다 목욕재계하는 신성목욕 습속이 고작이었다. 예외가없지는 않았다. 단종때 김미라는 이는 1백9칸이나 되는 호화저택 복판에 진루라는 할렘을 짓고 그 양편에 욕장을 두어 첩 기녀들과 방탕을 자행하고 있다. 이렇게 목욕 문화에는 퇴폐가 기생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를것이 없었다.보도된 바로 전신미용이라는 미명의 한국 목욕탕의 때밀이가 일본여성관광객을 유인하는 인기 품목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그상품으로 관광객을 모집하자 순식간에 1천명을 채우고 6백명을 그 자리에서 추가하는 호황이었다고 한다.남자들의 기생파티 관광으로 나라의 체면을 깎더니 이번에는 일본 여자들에게 때를 밀어주고 돈을 번다니 얼굴을 못들 지경이다. 욕탕 향락과 경국과의 함수를 따져서라도 자제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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