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쓴 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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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헬레나에 유배중이던 나폴레옹이 한국의 갓을 쓰고 장죽을물고 유유자적하고 싶어했다면 곧이 듣기지 않을 것이다. 조선조 순조16년(1816) 한반도의 해안을 측량했던 영국의 알세스트호는 돌아가는 길에 세인트 헬레나에 들러 나폴레옹의 유배소를 방문했던 것 같다.그는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 섬에 유배되어 있었다.그 자리에서 맥스웰 선장은 한국 방문기간중에 그린 풍물들을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 갓 쓰고 장죽을 물고 있는 한국노인 그림을 보고는'이테가 큰 모자를 쓰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다.유유자적하는 그 모습이 평생 싸움만 하다가 죽음을 앞둔 그의 심정에 강하게 와닿는 것이 있었음직 하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던들갓쓴 나폴레옹을 볼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 갓과 나폴레옹의만남은 한-영관계사에서 떨어진 한낱 이삭이라 할 수 있겠다.한국과 영국의 첫 만남은 그런 일이 있은지 19년 전이요, 올해로2백년전인 정조 21년(1797)의 일이다. 해도측량을 하던 영국배 프로비던스호가 물과 식량을 구하러 동래만에 닻을 내리고 브로튼 선장일행이 관-민의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를 만남의 시작으로 잡고한-영교류자료전 등 2백년 기념행사가 시작됐다. 이 영국배의 기항을가늠할 수 있는 왕조실록 기록은 이렇다.임금이 대신들을 향해 동래에 표류해온 사람들이 아란타인듯 하다던데 아란타란 아느 지방 오랑캐인가 하고 물었다. 이서구가 이르기를 효종때 아란타 배가 표류한 적이 있으며 서남지방 오랑캐로 [명사]에는 하란이라 했으니 대만이 바로 그곳입니다고 했다. 아마도 영국과 화란을 구별못했던 것 같다.한데 영국에 대한 최초의 견문은 그보다 다시 2백여년이 소급된다.선조때 문신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보면 영결리국은 서양 바다 끝에있어 배를 집을 삼고 사는데 배꼬리에서 돌개바람을일으켜 나가므로파도가 두렵지 않다 했다.근간에는 남해 흥양만 지경까지 출몰했었는데 아군이 감히 무찌를수 없었으며 유유히 빠져나갔다 했다. 후에 일본 사신을 통해 들은바로는 그 배가 바로 영결리국 배였다는 것이다. 만약 이 이양선이영국배로 확인되면 한-미 접촉은 이수광이 살았던 선조 광해군 연대까지 소급되므로 4백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영국 함대가 성경을 뿌리고 감자 씨앗을 묻어주고 간 일들 영국탐험가 이사벨라 비숍 여사가 금강산 가는 길에 있었던 일들 영국 함대가 거문도 주둔때 있었던 일 등 2백년 동안 한-미 인간교류 문화교류의 집대성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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