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양반들에게 있어 목 윗부분은 배꼽의 아랫부분보다 몇갑절 존귀했다.오른손은 왼손보다 몇갑절 존귀하고--. 그래서 관을 쓴다든지, 얼굴을 씻는다든지 존귀한 두상부위 작업에는 존귀한 오른손만으로 작업하는 것이 격식이고, 신발을 신는다든지 오줌을 눈다든지 돈을 주고받을 때는 왼손을 쓰는 것이 격식이다.신채호선생이 만주 망명시절에 왼손을 쓰지 않고 오른손만으로 얼굴을 씻는 바람에 단벌 옷 앞자락을 항상 적셨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이처럼 어느 사회건 어느 신분이나 직위나인격의 권위를 보장하는데는 나름대로의 격식이 따르게 마련이며 그 권위가 크고 높을수록 격식이 까다로워진다.우리 한국 사람은 초면에 만나면 종씨를 따지고 종씨면 항렬을 따지며 동창이면 선후배를 가리고 연령이 비슷하면 띠를 따지러드는 것은 상하 서열이 잡혀야 격식이 따르고 그 격식을 갖추어야 관계가 안정이 되는 서열의식이 별나게 강한 종적사회이기 때문이다.이 왕성한 종적기능 틈에서 능력이니 능률같은 횡적기능이 숨쉴 여백이 없다. 직장의 책상 넓 이나 서랍 수가 직위의 서열에 비례하고 의자의 안락도 굴절도 회전도 팔걸이 수까지 직위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권위를 보장하기 위한 격식 때문이다.직장의 윗사람과 밥집에 갔다 하자. 자리가 지정되어있지 않은데도 서열따라 제자리 찾아가서 앉는데 차질이 생긴다는 법이 없다. 윗사람이 앉아야 따라 앉고 윗사람이 옷을 벗어야 따라 벗으며 윗사람이 설렁탕하면 너도 나도 따라서 설렁탕이다.그것이 윗사람의 권위를 보장해 주는격식이다.선생님이 [알았습니까]고 물으면 모르더라도 일제히 [예!]하고 대답하는 것이 선생에 대한 예의요 격식이듯이--. 격식이 판을치고 우선되는 우리사회인지라 사제나 선후배 그리고 학제간등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토론돼야 하는 세미나같은 학문형태는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다.티베트 라마승들의 교리회의는 승직의 고하나 승력의 장단에 아랑곳없이 평등하게 앉고 구애받지 않고 말하며 경어나 존칭도 쓰지 못하도록 돼있다고 들었다.이처럼 격식은 권위를 부양시키지만 기능이나 능률을 저하시킨다.가격파괴 이래 기업체들은 학벌보다 능력을 사는 학력파괴, 연공서열보다 능력을 사는 인사파괴등 새바람이 일더니 대재벌 LG그룹의 3세 총수가 부임 초두에 기능주의를 내세워 권위주의를 불식시키는 격식파괴를 몸소 실천하고 나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