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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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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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발표된 가구 표본조사에서 15세 이상의 우리 한국 여자 가운데 8명에 한 사람 꼴이 짝을 잃은 과부라는 사실이 드러났다.옛날 같으면 짝을 잃고 수절을 하는 과부가 많은 마을은 정문촌이라고 하여 선비들도 먼발치에서 읍을 하고 지나가곤 했었다. 가문을 자랑할 때에도 3대 과부니 5대 과부를 배출했다면 듣는 이가 머리를 조아려 존경의 뜻을 표했던 것이다. 이렇게 정문을 세워 존경을 받고 명륜록에 올리며 부역과 세금을 면해주는 과부우대 시절에도 8명에 한 사람꼴이라는 확률로 과부가 양산됐던 시절은 없었다.진나라 때에는 자식이 있으면서 개가하는 것을 부덕으로 여겼을 뿐으로 과부의 개가는 자연스러웠었다. 당나라 때에는 남편이 죽은후 탈상을 하지 않은 동안의 개가만을 불법으로 삼았으며 송나라에서는 과부의 수절을 미덕시했었다. 그것을 가장 열렬히 주장했던 정이천의 조카 딸, 조카 며느리는 수절을 안하고 개가한 것으로 미루어 봐서 이론과 실제는 동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명나라 때에는 30세 미만에 홀로되어 50세까지 수절하면 정문을 세워주고 그 집의 부역을 면제해 주었을뿐 개가를 불법 악덕시까지는 안했다.과부가 인간적으로 가장 학대받은 문화권이 유교 덕목의 실천이 가장 철저하고 저변화했던 우리 나라였다. 수절 과부는 가문의 명예요 그 덕분으로 과거나 벼슬에 프리미엄이 붙었으며 병역-부역-조세를 면제받는 경제적 혜택이 수반되기에 잔인한 과부 제조 문화까지 정착하기도 했 다. 처녀 과부의 양산도 그것이다. 혼담이 있어 사주 단자를 주고 받은 후에 예비신랑이 죽거나 아버지끼리 나이 어린 아들 딸의 가약을 약속하고서 아들이 죽으면 영혼과 명혼을 올리고 과부로서 들여 앉혔었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약혼을 뜻하는 사진을 둘이서 찍은 경우는 결혼식 이 전에 남자가 죽었을 때 과부로 들어앉는 경우가 신문에 종종 보도되었었다.과부라는 형태로 삼강오륜의 감옥에서 고통받아온 휴머니즘을 구제한 것이 이상재, 김윤식 등 한말의 선각자들로 겨우 1백여년 전의 일이다. 한데, 지금은 윤리 감옥대신 이상과는 다른 결혼을 감옥으로 여기는 경향이 팽배해가고 있는 것 같다.미국에서 결혼한 두쌍 가운데 한쌍 꼴로 이혼한다는 것은 70년대의 일이다. 지난주 영국정부가 발표한 이혼율은 41%로 [독신귀족]이라는 미명의 과부 홀아비가 680만명이며 2000년까지 8백만명이 될 것이라 했다.일본의 최근 발표에도 독신 귀족이 10년 동안 배로 늘었다 했다. 선진국형 독신 귀족이 예고되는 한국의 과부사태다.- 1996. 7. 28. 이규태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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