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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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과학과의 전쟁은 끝이 없다. 갈릴레오는 그의 지동설이 신의창세작업을 모독했다 해서 생전에 이단자로 몰려 옥살이를 했으며 죽어서는 개처럼 묻혔다. 가족묘지에 묻히는 것에서부터 비석을 하나 세우는 것까지도 허락받지 못했다. 갈릴레오의 복권은 파문당한지 3백39년만인5년전의 일이었다.17세기 파리대학교의 지질학 교수인 드크라브 박사가 진화론에 준한화석이론을 내세우자 신학교수단은 노아의 대홍수 시절에 익사한 동물의 뼈라고 반박하면서 신만이 아는 지층의 비밀을 모독했다 하여 대학교단에서 추방하고 주거제한의 연금상태에서 여생을 살아야 했다.1854년에 발표된 다윈의 진화론도 신의 창세를 부인한다 하여 독신이론이라며 이단시했다. 따라서 기독교 국가들에서는 이 이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1925년 미국 테네시주의 한 고등학교 과학교사 토머스스코프스가 진화론을 가르쳤다고 재판을 받아 유명하다.진화론이 사람의 조상을 원숭이라고 했다 해서 이 재판을 [원숭이재판]이라 불렀다. 그후 1950년 피오 12세가 진화론을 가설로서 인정했고 작년에 요한 바오로 2세가 가설의 영역을 넘어 정식으로 인정했다.다만 {정신은 신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으로서 진화론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을 부연한 인정이었다.성서와 과학과의 대전 4라운드가 시드니 법정에서 있었다. 5년전 호주의 기독교원리주의 교회 장로요 고고학자를 자처하는 앨런 로버츠가이란-터키 국경 아라라트산 중턱에 [노아의 방주] 유해가 발견됐으며그 지층이 생물 기원이라고 유세하고 다니며 그 탐사를 명분으로 모금까지 했다.이미 마르코 폴로의 견문기에 노아의 방주가 머문 곳이 이 산이라는기록이 있고 19세기 이래 수년전까지 탐험가들이 이 산에 가 성서속의배의 유해를 찾아 제나름의 업적을 보고해 왔다. 이 방주를 빙자한 모금행위에 호주의 저명한 지질학자 플리머 박사는 돈을 벌기 위한 과학적 사기극이라며 소비자보호법 위반으로 고발을 한 것이다.창조론과 진화론의 재대결로 세상 이목을 끈 이 재판이 엊그제 진화론자의 패배로 판결났다.아라라트산 지층이 노아의 방주냐 아니냐는법원이 가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개인이 믿는 종교 사상적 소신이나 신념은 보장돼야 하고 발표할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차원에서 창조론이 승리한 것이다.창조론의 승리라기보다 창조론을 부르짖을 수 있는 언론자유의 승리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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