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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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낙오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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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이지만 뇌성마비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모임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뇌성마비 외아들을 둔 모 기업체의 회장님이 비행기를 전세내서 뇌성마비 청소년들에게 제주도 여행을 시켜주는 행사에,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무언가 "근사한 이야기"를 해줄 사람으로 따라나선 거였다.육신이 멀쩡한 사람들 중에도 너희들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다거나 마음먹기에 달렸지, 세상은 그런대로 살만한 장소라거나. 하여간 나는 그런 식의 말을 해주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찌그러진 얼굴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지가 뒤틀어진 그 아이들을 막상 직접 대하고 보니까 그런 말들 따위는 말짱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나는 그들에게 알량한 거짓말을 바치는 건 큰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연장에서 내 차례가 코앞에 닥쳤을 때 나는 주최자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미안하지만 내 순서는 빼달라고.그리곤 참담한 심정으로 그 자리에서 도망쳐나왔다. 그것이 소위 최소한의 내 양심이었다.며칠 전, 그 참혹한 병인 뇌성마비를 극복하고 고려대 수학과 교수직에 오른 황윤성 박사가 첫 강의를 하는 사진은 내게 찡한 감동을 주었다. 황 교수가 수강생들에게 요구한 "성실하게" 수업에 임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당부까지가 그랬다.바야흐로 입학식과 결혼식의 계절이다. 대학 입시에서 처진 청소년들, 그리고 사랑에 상처받은 연인들에게는 아주 견디기 힘든 계절일 것이다.지난 일요일에는 시내 연강홀에서 "3분의2에게 희망을"이라는 표어를 내건 독특한 행사가 있었다.대학에 입성하지 못한 3분의2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취지의 이벤트였다. 한편으로는 모든 선택받지 못한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과연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어려운 자리이기도 했다(선택받은 이들을 위한 파티는 쉽고 즐겁고 풍성하다).이 자리에 나온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선택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전용차선제같은것이 우리사회에 필요하다는 말씀을 주셨다. 3분의2에 해당하는 당사자들에게는 극복이 가능한 실패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도 하셨다.하지만 패자부활전이 잘 허용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하셨다.희망보다는 절망쪽에 더 가까이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부모들에게는 부모의 사랑이란 솜이불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점도 상기시켜 주셨다. 아이들이 자다가 더우면 발로 찰 수도 있고 추우면 끌어당겨 덮는 솜이불말이다.우리가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하고 위한다는 건, 그들 자신이 무엇을 원해야하는지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바를도와주는데에있다는뜻인가 보았다.장애인을 위한 주차공간조차 따로 마련해주지 않은 우리사회에서 황윤성교수가 뇌성마비라는 무서운 병을 딛고 서기란 아주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황 교수는 첫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말했다."모든 문제의 원인은 자기자신인 것을 깨닫자".만약 인생이라는게 트랙에서의 달리기 경주같은 거라면, 이땅에는 결국 한명의 승자와 4천만의 패자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트랙에 갇혀 있지 않다우리에게는 각자가 뛰어가고 싶은 결승점이 있다. 낙오자란 자신이 어디로 뛰어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이다. 우리가 행복한지의 여부는 우리들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삶을 향해서 얼마나 성실하게, 얼마나 당당하게 다가가고 있는지에 달렸다. 그 채점 또한 저마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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