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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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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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상담 학교에 나가 공부하고 있는 아내가 어느 날 공부를 마치고돌아오더니 숨을 가다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있잖아요.나… 오늘에야 비로소 ○○님을 네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용서해 드렸어요."제가 휘둥그래진 눈으로 "우와- 정말 거 정말 잘 되었네. 감사하여라"며기쁨의 화답을 하였습니다. "그래요. 그 동안 내가 그런 마음 품으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내 맘대로 조절이 안되더라구요. 얼마나 힘들었다구. 그런데 오늘 공부중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고쳐 주셨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예요."한 때 저희 부부는 ○○님을 향해 굉장한 분노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너무나 개인적이고도 인간적인 욕심을 이루기 위해 철저히 저희가정을 이용했다는 결론을 얻었을 때 였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저희를 향한 그분의 태도와 이중적인 면으로 인해 저희는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니, 적어도 저희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최소한 3~4개월 동안 저희 내외는 너무나 분한 마음에 그분을 생각할 때마다 혈압을 올리곤 했습니다.그러나 얼마 후 제 자신은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분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저는 주님의 가르침을 좇아 그분을 다시 예전처럼 따뜻이친절함으로 대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침내 해 내었습니다. 아내도 잘 해 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그분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쁜 마음먹으면 안 된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그게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되는 걸 어떡해요"라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설령 그분이 우리를 이용한 게사실이더라도, 그리고 우리가 그분으로 인해 큰 고통을 당한 게 사실이더라도... 우리가 너그러움으로 용서해 드리자구. 우리는 다 연약한 존재들이잖아!" 하고 남편인 저는 아내를 다독거리곤 했습니다. 그게 벌써 1년 훨씬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1년도 더 지난 오늘, 아내가 자신의 마음속의 그 감정 문제까지 해결을 본 것입니다.지금까지 그분을 향해 겉으로 내 보였던 저의 태도는 참으로 그럴듯한것이었습니다. 다소 과장시키자면 마치 성자처럼 보일 정도 아닌가요 분노의 대상을 향한 미소와 친절, 평안한 표정.....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말입니다. (이건 알게 모르게 제 마음 한 쪽에 자리잡고 있던 되먹지 못한 자부심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의 허물을 깨끗이 용서했다. 나는 그분을 악으로대하지 않고 선으로 대하겠다. 나는 그분을 친절로 대하고 있다. 그러므로우리와 그분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나의 이런 자세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은연중의 저의 생각이었습니다.그러나, 아내가 상담학교에서 돌아와 자신의 문제를 고백하였던 그날 밤,하나님께선 저에게 충격적인 한 가지 사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 ○○님과의 관계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던 그 동안의 저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것이었는가를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실제로는 제가 ○○님을 진정으로 용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제 안에 계신 주님의 음성을저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용덕아, 너는 결코 ○○님을 용서한 적이 애초부터 없었단다. 그저 어떤 의지력을 가지고 네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고 또 억눌러 왔을 뿐, 네 안에 있는 분노의 뿌리까지 도려내진못했던 것이야.'저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그분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니! 아니,애초부터 용서한 적이 없었다니! 그럼 제가 그분을 향해 그동안 친절을 보이고 웃음으로 맞이한 그것은 무엇이었단 말입니까 그것이야말로 제가 그분을 진정으로 용서했다는 증거가 아닌가요그런데 성령께선 '아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선 그날 밤,두 가지 사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첫째는, 진정한 용서의 개념과 범위에 대해서였습니다. '진정한 용서'란단지 지식적으로나 의지적으로 "그래, 난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에 순종하겠어. 그 사람을 용서하고 선하게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 여하튼 다시마주치더라도 친절히 대하도록 노력ㅎ해야지"라며 다짐하는 정도가 아니라,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감정적 앙금까지도 송두리째 도려내어 그 사람과문제가 있기 전 상태로까지 회복시키는 단계에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오, 그렇습니다. 저는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히고 철저히 우리를 이용했다고 결론을 얻었던 그분에 대해 첫 단계에까진 그런 대로 잘 했습니다. 한때는 노골적인 분노를 일시적으로 겉으로드러내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분을 비난하기도 했지만, 곧 우리는 우리의 그런 태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혼과 육체적인 건강 가지도 피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 격려하며 그런분노의 마음을 없애기 위해 무척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간혹 마주치거나한 자리에 함께 앉게 되었을 때 저희는 예전처럼 그분을 따뜻이 대하고 웃음과 친절로 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그러나 저희의 '감정적인 부분'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 앞에서는애써 웃음을 보였지만 그분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 그만 옛 일들이 생각나 다시 분노의 마음이 솟구치고 마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그처럼 큰 아픔을 끼쳐 놓고도 전혀 그런 사실을 인정치 않는 듯 보이거나, 오히려 우리외에도 또 다른 순진한 사람들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듯 보이는 소식들을 전해 들을 때면 그만 저희 내외는 억장이 무너지고 뱃속에서 시커먼 것이 솟구쳐 올라 와 혈압을 높이기 일쑤였습니다.물론 이전과 달리 저희는 그런 분노의 마음을 빨리 잊었습니다. 다른 일들에 정신을 쏟다 보면 이내 그런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저희는 다시일상의 평안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잊었던 것뿐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저희 영혼 깊숙한 곳 다른 덤불 밑에 똬리를 틀고 숨어 있다가 그것을 자극하는 조그만 충격만 와도 금새 덤불을 뚫고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습니다.저희의 의지적인 태도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을 만큼 회복되었지만 저희의감정은 결코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은 채 뒤틀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어쩌다 지나는 길에 저희에게 들리거나 불가피하게 마주치게 되면 그저 덤덤하게 예전처럼 대하기는 하지만 그 만남이 결코 기다려지거나 유쾌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나아가 저희가 먼저 기꺼운 마음으로 그분과 그의가족들을 찾아가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어찌하였든 그분하시는 일들이 부디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축복의 마음은 털끝만큼도 생겨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을 통해 상처 입고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난 때마다 '그것 봐라. 그럴 줄 알았다'라는 마음만 자꾸 증폭될 뿐이었습니다.제가 그분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그것들만으로도 충분하였습니다. 용서는커녕 용서의 흉내만 내고 있었을 따름이란 것이 명백해 졌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고도 그동안 '주기도문'을그토록 잘도 암송하고 있었다니.....두번째로 제 가슴속에 일깨워진 깨우침은 저에게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가져다주었습니다. 이 두 번째 내용은 앞에서의 첫 번째 내용조차도 뒤엎는것이었습니다. 이 두 번째의 내용은, 저희의 입에서 그 누구를 용서하느니못하느니 따위의 말을 꺼내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습니다.가장 먼저는,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상대성(相對性)에 관한 것이었습니다.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물론 우리와 관계되어지는 사람 가운데 제일 처음부터 아예 우리를 철저히 이용하여마침내는 송두리째 파멸시키려는 목적으로 접근하는, 참으로 사악하고 악마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그렇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설령 어떤 상처를 입었다고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치밀한 사전 각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격적, 인격적, 기질적인 약점이나 한계 때문에빚어지는 것들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그 사람은 나름대로 노력을 하지만 하루아침에 고쳐지기 힘든 성격이나기질 때문에 순간적으로 엉뚱한 판단을 내리거나 감정을 폭발시켜 우리로하여금 충격을 받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때론 그 충격이 우리에겐 너무나 크고 깊어 우리를 휘청거리게 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의 보다 근원적인 많은 장점들을 기억할 분 아니라 그의 연약함에 대해서도 이해하려고만 한다면 의외로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상 저희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 분'은근본적으로 악한 분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성실히, 그리고겸허하게 사시려고 무척 애쓰시는 분이었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보건대, 그분이 성장하신 배경이나 주위의 전반적인 사역 환경으로 인해성격적 약점 혹은 너무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몸에 깊이 배어 있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분은 주위에서 아무리 건설적인 제안을 하여도 당신의 생각과 틀리면 결코 수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제안 자체를당신께 대한 정면 도전으로 생각하셔서 아주 노발대발하셨습니다. 그분은절대적 순종과 복종을 강요하셨습니다.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선 다소의구성원들의 희생과 낙오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굳은 가치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그런 태도는 많은 동역자들로 하여금 '사람보다 일 중심적인 지도자'라는 인식을 갖게 하였습니다. 당신의 지시나 명령에 대해 조금만 다른 견해를 보여도 너무나 흥분하시며 싫어하셨기 때문에 동역자들은그분의 그런 태도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어떤 '일'을 성취해 내기 위한 '소모품'으로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을 늘 가지게 되었습니다.그러나 그런 것은 '그 분'이 가지고 계신 극소수의 약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장점과 훌륭하신 인품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도 그분의 그런 점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그분의 한두 가지 성격적 약점으로 인해 빚어진일들만을 가지고 마치 그 분 자체가 악하여서 우리를 유린한 것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감정적 상처만을 가지고 그 분 전체를 미워하고 싫어하여 온 것입니다.그리고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는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는가만히 서 있는데 갑자기 그가 나에게 달려들어 내 코뼈를 부러뜨려 놓았다'는 식의 경우는 정말 드문 일입니다. 그런 짓은 정신병자이거나 악한 영에 사로잡힌 깡패 같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보편적인 인간관계에선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에는분명히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물론 내가 누군가에게 맞아서 코피가 터지고 코뼈가 내려앉았다면 그것은 내게 있어 분명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대단한 상처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핏대를 올리며 노발대발하여 소리칩니다. "그녀석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어! 나쁜 자식! 그놈은 깡패야! 폭력배라구!" 그러면 많은 사람들은 그저 겉으로드러난 상처만 가지고 양쪽을 평가해 버립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주먹을휘두르기 직전까지 내쪽에서 그에게 행한, 눈에 보이지 않는 '짓'은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의 옆구리를 계속 쥐어박았거나 그에게 "야, 머저리!사생아! 절름발이 병신!"이라고 약을 올린 것 같은 짓들 말입니다. 주먹을휘두른 그 사람이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차단된 상태에서 겉으로 상처를입은 우리의 주장만이 모든 사건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게다가 우리에겐 우리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그런 태도는 무의식적으로 가동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우리 자신이 그에게 행한 실수나 잘못은 전혀 인정치 않고, 아니 대부분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오직 상대방이 내게 행한 실수나 잘못만을 큰 소리로 떠드는 것입니다. 그것도 몇 배나 부풀려서 말입니다. "그녀석이 가만히있는 나에게 덤벼들어 내 얼굴에 주먹을 날렸어!"오, 저희가 그랬습니다. 지금까지 저희의 의식 속에는 이 사실이 꽉 차있었습니다. '그 분'은 악하고 나쁜 '가해자(加害者)' 우리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선량한 '피해자(被害者)'라는 식의 의식 말입니다. 이것은 정말무서운 생각입니다. 저희 내외의 말만 들으면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그 사람이 갑자기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는 말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정말 그랬던가요 정말 저희는 완전한 선한 쪽이고 그분은 완전한 악한 쪽이었던가요 주님께선 이 부분을 심각하게 점검케 하셨습니다.저는 특별히 개인적으로 지난 수 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그 분'과의 인간관계 전체를 조용히 더듬어 보았습니다. 저는 그분에게서 많은 도움을 입었습니다. 많은 배려와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성격적 약점이 있으신 분이지만 근원적으로 악한 분은 결코 아니셨습니다. 저희와의일들만 하여도, 결과론 적으로 저희가 극심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은쪽으로 보여지긴 하여도, 애초부터 그런 결과를 노린 것이 아니라 그분 나름대로 잘 하려고 하는 가운데서 빚어진 [시행착오]였음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사실 그분도 겉으로는 다혈질적이시지만 속마음은 얼마나 여린 분이신가요그분과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언제나 저희 내외가 옳은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선 저희가 그분께 행했던 무례와 실수들에 대해 조목조목 보여 주셨습니다. 저희 내외에게도 역시 크나큰 성격적 기질적 결함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저 대범하게 '그러려니....'하고 넘길 수도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저희는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였고, 지나치게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겐 선배에게 따귀 한 대 맞은 것이 사나이들의 세계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수롭잖은' 일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꼭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증오감과 앙심을 선배를 향해 품기도 하는 것입니다.저희는 후자(後者)와 같은 스타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희의그런 과잉 반응 또한 미성숙한 인격적 성격적 기질적 약점으로 말미암은것입니다. 누가 더 나쁘고 덜 나쁘고 따질 수 없는 상황들이었다는 것입니다.무엇보다 저희는 인격적으로 옹졸하고 미성숙했습니다. 이미 '그분'의 성격적 약점(하루아침에 고쳐질 수 없는)을 사전에 충분히 알고 있었으면서도그 점을 늘 염두에 두어 그분을 배려해 드리는데 소홀히 했습니다. 그분의불같은 감정적 폭발(그분은 거의 자제력을 잃을 만큼 순간적으로 폭발하고는 후에는 또 그 일로 고민하시는 분이었습니다.)을 일으키는 뇌관을 직접건드리지 않아야 했는데 때로는 같은 다혈질적 성격 때문에 꼭 그 부분을직접적으로 건드리곤 했던 것입니다. 저희의 다른 견해를 보다 신중하게 다른 방법으로 그분께 전하는 방법을 연구할 수도 있었는데 저희는 미처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분의 성격적 약점을 이해하려고 애썼어야했는데 저희는 그런 노력을 소홀히 했습니다. 오, 상대방에 대한 이해야말로 인간관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요순간적으로 저희를 향해 그분이 터뜨린 엄청난 정신적인 '어퍼컷'에 다운이 된 저희는 곧장 그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꼭 같은 수준과 방법(너무나충동적이고 즉각적인)으로 그분께 '라이트 훅'을 휘둘렀습니다. 인간관계의'단절'을 선언하고 교제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퉁퉁 부은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돌아다니면서 마치 '나는 착하게 가만있는데 그가 나에게 주먹을 휘둘러 나를 병신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식으로 떠들고 다닌 것입니다."나는 그분을 용서하겠습니다"라구요 아니, 저희가 지금 '용서'라는 말을썼습니까 정말 이것은 어처구니없는 언행입니다. '용서'라는 말은 [피해자]자 [가해자]를 향해서만 할 수 있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저희가"그분을 진정으로 영서..."어쩌고 저쩌고 떠들고 다니는 것은 순전히 저희와그분을 흑백 논리로 '선과 악' 혹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누고 있다는 말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그분을 향해 '용서'운운하는 자체가 이미 '우리는 일방적으로 당한 선량한 피해자'라는 뜻인 것입니다.저희의 그런 태도는 참으로 시건방지고 교만한 태도입니다. 인간관계에있어서의 '상대성'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감히 '용서'따위의 말은 입밖에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 가요 만약 최소한 '그분도 잘못했지만 우리도 그분 못지 않게 잘못했다' 정도의 생각만 가졌더라도 그분을 향해 그처럼 크고 깊은 분노의 감정을 오랫동안 지니고 있을 순없었을 것입니다.저는 주님 앞에서 수치로 달아오른 얼굴을 숙이고 무릎을 꿇은 채 오랫동안 침묵하며 엎드려 있었습니다.주님께선 마침내 저를 마지막 단계의 자리에까지 이끌고 가셨습니다. 그분과의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제가 지난 평생 동안 맺어 왔던 수많은 다른인간관계들도 하나씩 더듬게 하셔서, 그 속에 나타난 제 자신의 참모습을발견케 하신 것입니다. 아, 놀랍게도 그 속에는 '피해자'로서의 제가 아니라'명백한 가해자'로서의 저의 생생한 모습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나타나자 주님께선 저에게 [마태복음 18장]의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 관한 주님의말씀을 다시 생각나게 하셨습니다.오, 이 성경내용은 저에게 결정적인 '이단 옆차기'를 먹였습니다. 이 내용이 어떤 것입니까<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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