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주일학교교사들을 위한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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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주일학교교사들을 위한 예화
퇴임후 더욱 빛나는 이름 지미 카터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미국 대통령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는 카터 전 대통령이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민주주의 고양,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시에는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그렇게 빛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대통령을 그만두고 나서 오히려 그 이름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이 대통령이 된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퇴임후에 자신을 더 크게 쓰시기위함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정말 그는 퇴임후에 더 크게 쓰임받고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퇴임 후에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해결과 경제, 사회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무주택서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Habitat) 운동을 전세계적인 자원봉사활동으로 확산시켰고 작년에는 우리 나라의 해비타트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퇴임 후 그는 애틀랜타에 카터센터를 설립하여 냉전 후 지구상에서 야기되는 중대사건의 분쟁해결사로서의 조정 역할에 진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와 깊은 연관은 1994년 6월에 개인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갖고 한반도 사태의 긴장을 고조시켰던 교착상태에 있던 핵 문제의 실마리를 푼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알려진 대로 오래 전부터 애틀랜타의 한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일은 그가 대통령 재임 시절을 빼고 거의 계속하고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런 그의 퇴임 후의 평화적 행보는 가장 무능한 대통령에서 가장 훌륭한 전직 대통령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저도 평신도 생활을 하면서 남전도회장을 두번 했는데 그 때마다 남전도회장을 마치고 더욱 더 열심히 남전도회 활동을 도왔습니다. 교회에서 보면 많은 성도들이 회장이나 어떤 중책을 맡았을 때는 그 일을 열심히 하는데 막상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아예 그 모임에 참석도 잘 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방꾼이 되고 걸림돌이 되는 때가 많은데 이런 일은 결코 없어야 할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우리의 사명을 마치고 퇴임하게 됩니다. 퇴임후 더욱 아름답고 그 이름이 빛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일학교 교사 1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가 대통령으로부터 장관직을 제의받았습니다. "당신의 탁월한 경영솜씨를 발휘해 체신부장관직을 맡아주시오" 워너메이커는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나는 교회학교 교사라는 일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가합니다. 만약 장관을 맡아서 내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것은 정말 큰 일입니다."
대통령은 교회학교 교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스빈다. 그때서야 그는 장관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이며 비행기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 어린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한번은 기자들이 뭐너메이커에게 장관직이 교회학교 교사직만도 못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직은 내가 평생동안 해야할 본업입니다. 그러나 장관직은 한두해 하다가 말 부업이지요"
명성을 얻으려고 달려가는 사람은 그것을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나 소신과 사명감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부와 명성을 얻을 기회가 자연스럽게 주어진다
주일학교 교사 2
국민일보에 보니까, 30년간 주일학교 교사하는 성현장로교회 윤영숙권사 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19살에 예수님을 영접하고서부터, 33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직 봉사를 하루도 쉬지 않았답니다. 충주여고를 졸업하고 숙명여대를 다닐 때부터 IVF활동에 참여하고 주일학교 교사를 했는데 한해도 쉬지 않고 봉사했다고 합니다. 중학교 선생을 하면서도 8년동안 가르쳤고, 27살에 결혼한 남편 이종창 장로의 직장관계로 국민은행 싱가폴과 아르헨티나 지점개설 때 온가족이 10년간 국외에서 생활하게 됐을때도 싱가폴 한인교회에 다니며 주일학교만은 꼭 맡아서 부흥시켰다고 합니다.
백화점의 왕으로 이름을 날린 존 와너 메이커는 대통령으로부터 상공장관직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그는 주일학교 임무에 지장이 된다고 장관직을 거부했습니다. 미국의 장관보다 주일학교 교사 직분을 더 귀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다시 연락을 했습니다. 주일학교의 일은 계속하면서 장관 일을 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전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은 "죽을 때까지 주일학교 교사로 충성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도한 세 명의 아이
미국의 오하이오주의 어떤 교회에 평생 주일학교 교사로 수고한 니믹스라는 노교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이곳으로 이사왔을 때, 한 교회에 나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로부터 지금은 맡길 반이 없으니 스스로 전도해서 반을 만들어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마침 그는 주일 아침에 길에서 놀고 있는 세 명의 아이를 발견하고 다가가, 주일학교에 출석하여 내 반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들은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평생 주일학교 교사생활을 지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 아이들이 모두 다 성인이 된 후에도 교사의 생일이 되면 생일축하편지를 보내왔다고 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인도 선교사로 일하는 챨스 콘웨이이고, 또 한 사람은 미국의 제29대 대통령인 하딩(W.G. Harding)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대통령의 비서관이 되었다고 합니다.
복음의 바톤을 전달합시다.
제2차 대전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어린 영국 군인이 적군의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군목은 군인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유언을 물었습니다.
"제 어머니에게 전해주십시오. 아들은 고통 없이 기쁘게 죽었다구요"
어린 군인은 짤막하게 말했습니다. 잠시 후, 어린 군인은 무슨 중요한 것이 생각난 듯
숨을 헐떡이면서 간곡하게 말했다. "목사님,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학교 선생님께 이 말을 전해주십시오.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구요. 그리스도인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게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한다고 전해주세요"
군목은 어린 군인의 유언에 따라 교회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마지막 유언을 들려주었습니다.
여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지금 교회학교 교사가 아닙니다. 교회학교 교사라는 직분이 대단치 않게 생각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제자의 유언을 들으며 결심했어요. 다음 주일부터 다시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에게 맡겨진 소중한 일들을 망각합니다. 우리의 작은 가르침이 때로는 한 인간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오늘도 수천 년을 이어 와,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 온 이 복음의 바톤을 그 누구에겐가 전달하는 일에 우리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설리번 선생님..에게 배우다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를 읽고 ..
설리번 선생과 헬렌 켈러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헬렌은 듣지 못하고,보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말하자면 짐승 같은 인간이었다.
헬렌 켈러를 가르치기 위하여 왔던 선생들은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는 그의 상태를 보고서는 다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설리번 선생은, 헬렌의 집에 처음 도착하던 날, 그 짐승 같은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그 이후 설리번 선생은 지성을 다한 노력으로 헬렌 켈러에게 수화와 단어를 가르칠 수 있었다.
어느 날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우게 되었을 때, 설리번 선생이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헬렌은 "선생님이 오시던 날 나를 꼭 안아 주신 것" 이라고 대답했다.
설리번 선생이 꼭 안아 주던 그 첫날부터 짐승처럼 거칠던
헬렌의 마음이 녹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설리번 선생은 어떻게 남들이 손잡기도 꺼려하던 그 짐승같은 아이를 사랑으로 껴안아
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설리번 선생 자신이 심각한 망막 질환으로, 실명 직전까지 갈 정도로 큰 아픔과 고통의 과정을 겪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었기에 그 같은 고통속에 빠져 있는 불쌍한 헬렌을 진심으로 사랑을 다해 안하 줄 수 있었다. 그 사랑이 헬렌을 살려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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