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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예화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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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예화모음




 김익두를 변화시킨 성령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전래된 이래 기도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친 목사를 대라면 김익두 목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14살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그가 사는 산골 마음에 미국 선교사들이 와서 부흥회를 하게 되었다. 키가 크고 힘이 쌘 김익두는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날마다 산에서 나무를 하면서 소일했다. 김익두는 부흥회를 방해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루는 부흥회를 하는 교회에 몰래 숨어 들어가 교인들의 신발을 모조리 연못 속에 던져 버렸다. 김익두는 경찰에 붙잡혀가 실컨 매를 맞고 변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나 복음을 전하는 부흥사가 되었다. 

(감사) 

☞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오직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성령 을 받으면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도 변화될 수 있다. 다만 기도하면서 말씀을 듣고 입으로 시인하고 가슴으로 믿기만하면 오늘도 사도행전의 역사는 그의 가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신자는 성령으로

 파블로카잘스는 20세기 최고의 첼로 연주자이며, 작곡가요, 지휘자요, 피아노 연주자이다. 1966년, 그의 90회 생일이 되기 직전에 노만이라는 사람이 위대한 음악가의 노후의 생활을 관찰한 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관절염과 호흡 곤란으로 카잘스의 손은 부어 있었고, 손가락들은 서로 엉켜 있는 듯했다. 저런 손으로 어떻게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카잘스는 고통스러운 발걸음으로 간신히 피아노까지 걸어갔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자 그를 바라보고 있던 노만의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그 손가락들이 마치 태양 빛에 펴지는 꽃봉오리처럼 펴지더니 건반을 만지는 것이 아닌가? 꾸부정했던 그의 허리도 반듯하게 펴졌다. 확실히 숨쉬는 것도 편해 보였다. 그는 바하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연주는 섬세하고 예민했다. 그는 이어서 브람스의 곡을 연주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카잘스는 생기와 영감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주를 다 마친 그가 일어나 걸을 때 그의 몸은 곧바르게 되었고, 키도 더 커진 듯했다. 간신히 침대에서 나와 고통스럽게 옷을 입던 노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위대한 음악인은 음악 안에서 새로워졌다. 우리 크리스천은 어떻게 새로워질까? 성령 안에서 새로워져야한다.


 


성령의 궁전

초대교회의 한 사도는 길을 다닐 때나 집에 있을 때나 무엇을 하더라도 언제나 마치 살얼음판을 걸어가듯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다. 

신자들은 이를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물었다. " 

답답하지도 않으십니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 사도는 웃음을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과 성령을 모신 몸일세. 내 몸은 곧 성전이란 말이네. 그러니 어떻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며 깨끗하게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령충만1

 성경은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 혜의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 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신명기 34:9)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어떻게 가나안으로 들 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여호와의 신을 통해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기에 군중을 인도해 가나안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충만을 받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 은 성령에 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1祺資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 림하시리니](이사야 11:2) 이러므로 성령충만을 받은 성도에게는 영혼과 범사와1 건강에 있어서 뛰어 난 지혜가 주어집니다. 

성령을 통해 지혜를 얻은 스데반은 회당에 서 변론 의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 적을 민간에 행하니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 들이 일어0 스데 

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쌔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사도행전 6:8-10) 

복음을 접한 유럽은 세계의 문명국가가 되었습니다. 

본래 문명의 발 상지는 아시아입니다. 

그러나 유럽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지혜를 얻 어 선 진국으로 도약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과 소망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의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아시고 실제로 그렇게 하셨다. 

그는 40일 동안 광야에 계시며 사탄을 물리치셨다. 그는 천국 복음을 전파 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하셨다. 그는 돌아가신 후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후 세상에 여러날 머무시다가 승천하셨다. 

그는 살아계시며 지금도 일을 하신다. 믿음을 가지고 살면 당신은 적극적인 사람이 되라.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 영접했고 그 와 동행하고 있다면 당신은 절대로 마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주님! 이미 나의 일들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끝까지 나를 인도하소서.감사합니다.'



성령충만

유명한 설교가 D.L.무디 선생은 한 집회에서 물잔을 청중들에게 보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이 잔에서 어떻게 공기를 없앨 수 있겠읍니까?" 그러자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펌푸로 공기를 빨아들이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이 대답에 무디선생은 "그렇다면 그건 진공을 이루어야 하고 잔을 부수게 되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많은 틀린 의견들이 제시되어진 후에 무디는 잔잔히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물주전자를 집어들고 그 잔에 물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자, 이제는 공기가 모두 제거되었읍니다."라고 말하였다. 

물잔에서 공기를 억지로 빼려고 하면 잔은 깨어지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에서 죄를 강제로 추방시키고자 하거나 우리의 마음을 억지로 깨끗하게 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있게 된다. 즉 구원의 기쁨보다는 죄의식에 빠져 헤어날 수 없게 된다. 우리의 삶 속에서, 마음 속에서 죄를 없이 하려면 무엇인가 다른 것이 우리를 채워 

주어야만 한다.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이다. 성령이 우리들 속에 충만하게 될 때 우리들 속에 있던 더러운 내용물과 침전물들은 자연히 쫓겨나게 된다.


 


기도를 도와주시는 성령님

본문: 유다서 1장 20-21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유 1:20)


기도의 신비! 온 우주에 기도처럼 신비한 것은 없습니다. 

지극히 높은 존재와 지극히 낮은 존재 사이에 완전한 연합! 

기도는 우리가 우리의 발 밑을 기어다니는 곤충 및 새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훨씬 놀라운 신비이며 창조자와 창조물 사이의 놀라운 간격을 이어주고, 무한하신 하나님과 가장 어리고 무식한 아이 사이의 엄청난 간격을 이어주는 위대한 끈입니다. 

구체적으로 성령께서 기도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하십니까?


1. 성령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필요를 알려주십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필요를 의식하는 것! 

그것은 기도에 있어서 첫 번째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령님은 기도할 필요를 의식하게 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요청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대단히 중요합니다. 

필요해야 구하고, 아픔을 느껴야 병원에 갈 것이 아닙니까?


2. 성령님은 하나님의 주시고자 하는 축복에 대해 

우리의 영혼에 거룩한 욕망을 일깨우십니다. 

저는 가끔 하나님께서 왜 욕망을 주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을 내렸습니다. 

육신적 욕망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그것이 제 질서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삶의 좋은 연료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욕망은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 

이 구절에서 '구한다'라고 하는 것은 '거룩한 욕망을 가진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깊은 곳에 있는 영적인 욕망들은 토양으로부터 영양분은 흡수하는 식물의 뿌리털과 같은 것이고 영양분과 음식물을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는 인간의 내장기관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욕망은 우리의 기도에 힘과 생명력을 주고, 우리의 마음을 축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만듭니다.


3. 성령님은 사람의 심령에 임재하셔서 

그에게 기도에 대한 특별한 부담을 주십니다. 

사람에게 특별한 부담을 주시지만 사실상 그 부담은 고스란히 주님의 부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부담의 의미를 잘 나타내는 구절이 로마서 8장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러한 주님의 부담으로 인해서 어떤 경우에는 기도하는 사람 자신도 무슨 기도를 하는지 정확히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항상 잘 알 필요가 없듯이, 우리의 기도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완전히 알면서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아주 분명하고 의식적인 기도일지라도 성령님만 해석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분의 무한한 지혜와 사랑으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분야까지 채워 주실 것입니다. 비로 이러한 원리가 로마서 8장 27절에 나오는 원리입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거칠고 잘못 투성이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의 진실된 보호자요 훈계자로 생각하시며 우리들의 말이 아닌 성령님의 탄원에 따라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민감한 영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에 매우 전향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이 가라앉는 단순한 느낌이 생기면 즉시 그 상황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슨 할 말씀이 있거나 다른 것이 있다는 암시로 받아들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보다 자세히 상황을 주시해 보면 

우리의 삶의 어떤 순간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없거나 

하나님의 인도가 펼쳐지지 않는 순간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물며 우리의 기도하는 순간이 의미 없는 순간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기도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해도 한 가지 아는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하는 어느 한 순간도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4. 성령님은 기도를 도와주시면서


우리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은혜를 알려주심으로 우리를 격려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진지한 깨달음! 

하나님의 은혜라는 무한한 원천에 대한 드넓은 시각! 

아버지 집에 있는 풍성한 보화를 보는 영적 눈! 이것이 믿음의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응답되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 항상 믿음을 가지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믿음이 없으면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믿고 행동하십시오. 

"믿으라!"는 말은 결국 "믿고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5. 성령님은 우리가 잠깐 기도를 멈추고 

우리의 탄원을 감사로 바꾸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는 우리를 찾아오고 있는 응답을 맞이하기 위해서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법도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님이 감동 주시는 대로 감사하며 순종하십시오. 

응답 주실 것을 믿고 미리 앞당겨서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순종의 자리로 나가보십시오. 

기도응답의 놀라운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려면?.


1. 마음을 비워야 한다

죄악을 제거해 버리고 모든 쓰레기같은 잡된 것을 토해 내고 탐심 욕심을 회개하고 비워야 한다. 빈 그릇을 준비해야 음식을 담을 수 있듯이 빈 마음을 가질 때 성령을 받게 된다.


2. 사모해야 한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 갈망하고 사모하듯이 갈급한 심정으로 성령을 사모해야 성령을 받게 된다.


3.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편견 억측 지성 교만등의 담을 헐어 버리고 있는 것으로 막혀지고 닫혀진 마음의 문이 열려져야 한다.


4.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 

믿고 구하기만 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주실 줄을 믿고 집중적으로 열심히 쉬지 않고 기도를 계속할 때 성령을 받게 된다.


5. 늘 기대해야 한다. 

신부가 결혼한 남편을 기대하며 행복을 찾아야 하듯이 예수님과 혼인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기대해야 한다. 결혼 반지 낀 신부처럼 신랑을 기다릴 때 성령을 받게 된다.


6. 나누어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은혜를 나누어 주고 봉사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성령이 임한다. 성령은 이기적인 마음을 가질 때에는 받지 못하며 섬기려 하고 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다. 

포도주가 바닥이 난 혼인 잔치집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빈 항아리를 채워 나눠 주려고 할 때 맹물이 맛있는 포도주로 변화됨으로 잔치집은 더욱 환하고 풍성케 되었다. 모든 이웃에게 나누어주려고 할 때 성령을 받게 된다.


 


성령에 맡겨라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때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케네디대통령,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를 쥐고 있다. 당신 손에 있는 권세로 세계의 역사와 운명이 좌우된다. 당신은 노련한 전문가인 수많은 보좌관을 데리고 있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그 많은 보좌관이 제각기 자기의 전문적인 지식을 당신에게 말할 것이고, 당신은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다 귀를 기울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된다. 당신은 당신을 

보좌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모두 다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나님 앞에 묵상하고 가슴속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을 들어라." 우리의 마음은 보좌관입니다. 마음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수학적이고 논리 정연하고 사회학적이며 통계적인 것들을 내 놓습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릴 때는 영이 해야 합니다. 묵상하고 기도하는 중에 우리의 영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판단을 얻어서 행하게 되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길을 걸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영으로 사는 사람이며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 받은 사람의 17가지 변화

1. 나쁜 버릇이 고쳐집니다. 

2. 자기를 조정할 줄 압니다. 

3. 창조적 생각을 갖습니다. 

4. 영적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5. 화평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6. 문제를 해답으로 바꾸는 사람이 됩니다. 

7. 영적 설득력이 생깁니다. 

8. 반대 의견도 수용할 수 있습니다. 

9. 믿음의 삶에 동반자들이 생깁니다. 

10. 하나님이 섭리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합니다. 

11. 주위 사람들에게 평안을 줍니다. 

12. 이웃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갖게 됩니다. 

13. 자기의 모든 재능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사용됩니다. 

14. 강력한 끈기가 생깁니다. 

15. 마음에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16. 모든 면에 믿음을 근거로 한 낙관주의자가 됩니다. 

17. 남을 위하여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성령을 신뢰하라

나는 미국의 큰교회에서 이틀동안 일곱번의 강연을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게 너무나 힘겨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침마다 작은 응접실에 앉아 성경강연 할 내용을 외웠던 것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러나 나는 즉시 이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나를 준비하기보다도 성령과 그분의 은혜로우신 도움을 받으려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기도하면서 전도설교를 준비할 때의 그런 기도는 아니었고 성령께 그냥 달려드는 외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외적인 보조물에 잘못이 있을 때는 내 사역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게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첫 주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나는 두번의 예배에서 계속 단지 인사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 동안 나는 점점 더 용기를 잃어갔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나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 강단에 서야 했을 때,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도움을 주시려고 거기 계셨으며 또한 내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나 스스로는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목사님께서 “당신이 그처럼 말씀하셨다니 정막 넋이 나갈 정도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오늘날도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면. 우리 가운데서 큰 일을 행하시려고 하십니다. 미국에서 쌓은 여러 경험으로 인하여 나 개인은 큰 은혜를 받았고, “너는 무엇을 신뢰하느냐, 너 자신이냐 아니면 성령이냐”는 질문을 계속하여 자신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가진 것은 없을지라도 그분을 신뢰하면. 그분은 오늘날도 분명히 충만한 도움을 가지고 임하십니다. 특히 성령이 우리를 당신의 사역을 하도록 부르실 때 말입니다.


 


성령의 은사

하루에 세 번씩 반성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필요한 말입니다. 인간의 교양과 수양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자기를 반성하는 것은 겸허하게 만들고 그 사람을 내적으로 깊게 만들며, 또 맑게 만들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인격의 수양을 위해서는 내성하는 것이나 또는 내관하는 일이나 반성하는일이나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반성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것이 아닙니다. 속을 자꾸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인간에게 보이는 것은 짐승 같은 자아뿐입니다.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구원이 어디에서 옵니까? 주님에게서 옵니다. 자기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 닦고 닦는다고 옥이 될줄 압니까?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의 생각 이것이 자유 종교입니다. 인간의 종교입니다. 이것이 도덕적 방법입니다.정신적 방법입니다.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방법은 절대 타자와 절대 타율과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내게는 없은 것입니다. 내게 없는 의를 주님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불입니다.물입니다.바람입니다.비둘기 같은 성령은 없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죽은 것을 살리십니다. 병든 것을 고치십니다. 자연법, 자연 은사,인간의 잠재력,가능성,정신력 을 포함해서, 신념을 포함해서, 심리학적 법칙을 포함해서, 적극적 사고 방식을 포함해서, 인간능력의 전 한계를 포함해서 절대로 안 되는 것을,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는 것을 성령께서 특별하게 은혜로 믿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너무 합리적 생각을 하다가보면 기도할 것이 하나도 없어집니다. 믿을 것이 하나도 없어집니다.주님은 사랑으로 조건없이 특별히 주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초자연을 믿고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특별 법칙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과 나 사이는 특별 관계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장 22-23)


 



성령 충만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하듯 그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된다. 한번 소제했다고 언제까지나 방안이 깨끗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도 한번 반성하고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 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먹은 뜻을 오늘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우리를 떠나고 만다.


 



성령이 거하는 전

언젠가 우리 졸업생 중 한 명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한 일주일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아내가 그 남편이 가방을 꺼내러 들어간 사이 나를 황급히 구석으로 데려가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헨드릭스 교수님, 당신이라면 제 남편을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언제나 너무 활동적이에요, 전혀 쉬지도 않고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요. 저는 그가 쓰러지지나 않을까 하여 겁이 나요. 잠도 평균 너댓 시간 밖에 자지 않아요." 

며칠이 지난 후에 우리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내가 말했습니다. "왜 담배를 피우지 않지?" "제가 담배 피우지 않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글쎄, 내가 일주일 내내 여기 머물면서 자네가 담배불 붙이는 

것을 한 번도 못봤기 때문이지." "헨드릭스 교수님, 제 몸은 성령이 거하는 전입니다." "그래, 그거 굉장하군. 무척 좋은 생각이지.


하지만 그것이 자네가 매일 너댓 시간만 잠을 자서 자네 몸을 혹사시키는 이유도 되는가 보지?" 우리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구멍 투성이의 생각인가? 우리는 흡연에 관해서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습 

니다. "내 몸은 성령님이 거하는 전이야. 왜 내가 다 때가 되기도 전에 무덤에 들어가야 하지?" 하지만 마찬가지 논리로 사람들은 도처에서 정력과 돈을 낭비함으로써 아직 다 때가 되기도 전에 무덤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성령은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최선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영이다. 성령은 인간 예수 안에 거하여 전적으로 역사하 던 하나님의 영이요,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 터 모든 믿는 자에게 허락해 주신 그리스도의 영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화하여 그리스도와 같게 하시는 영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리스도는 특히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로 하여금 또한 저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되게 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부터 난 영은 특히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다. 

즉 성령은 우리의 안에 와서 내재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나타내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 부르게 하시는 영이다.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종교적 감정의 열이 생기며, 기사 이적을 행하며, 신비경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을 경험하여 

기독교 진리를 깨닫게 된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속죄를 경험하게 되며 자기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며 그리스도가 확실히 지금 나와 같이 계심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나라를 가지고 사는 신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역할이다.


 



성령을 믿사오며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서 한 교사가 반의 학생들에게 사도신경을 한 귀절씩 외워오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교사의 인도에 따라 학생 각자는 자신이 외운 사도신경의 한 귀절씩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 학생이 일어나 "전능하 신 천지를 만드시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를 외우자 두 번째 학생 이 일어나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했고, 또 다른 학 생이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끊어지고 말았 다. 교사가 다음 번 계속하라고 하자 한 학생이 "선생님, 다음의 '성령을 믿사오며'를 외울 학생이 결석했습니다."라고 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이와 같이 '성령을 믿사오며'하는 대목에서 빠지곤 한다.성령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아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

시카고의 어느 상점이 화재가 나서 다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그 상점이 이제는 폐업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아침에 잿더미가 된 상점 앞에 간판이 나붙었는데,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집의 모든 것은 다 타 버렸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와 자식들과 희망은 타지 않았습니다.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영업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모든 사람이 실망하고 슬퍼할 때에도 성령의 사람들은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언제나 새로운 소망을 주시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믿음을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선물

모든 사람은 내가 주는 선물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각 개인에게 달려 있다. 내가 인도하는 대로 사용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선물은 개인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만을 위하여 써서는 안 된다. 성령으로 난 것은 곧 나의 것이고, 그 영광과 영예도 나의 것이다. 그 선물들을 이 땅 위에 이끌어내기 위해 쓰임을 받는 사람들은 한갖 도구일 뿐이니, 도구는 도구로 머물러야 한다.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라. 거침없이 그리고 아무런 제한도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너를 쓸 수 있게 하라. 아무것도 막지 말고,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받으라. 항상 그렇게 있으라. 모든 문이 활짝 열려 있게 하라. 순수한 기쁨에 차서 보다 높은 영역으로 올라가라. 아무것도 숨기지 말라. 진리의 빛이 빛나게 하라. 나와 손잡고 함께 걸을 때 숨길 것이 없다. 어둠은 절대 진리의 빛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빛이 비치는 곳에 어둠이 있을 수 없다. 너희 모두에게 다시 말하건대, 네가 가야 할 참된 길을 찾아 조용하고 평안하게 그 길을 가라. 나의 평화와 사랑이 너를 감싸고 채우게 하고, 찬양과 감사로 가득찬 삶을 살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국이 낳은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 목사님이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 목사님께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뵙고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얼마쯤 가다가 목사님이 되돌아오기에 왜 오셨냐고 묻는 옥사장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이 나라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 목사님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때 옥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목사님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언제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까 목사님의 마음에 비쳐오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 결코 내 고집이나 방법대로 생활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생활하십시오. 양심에 비쳐오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심에 비쳐오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행동하십시오.


 



성령에 맡겨라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때 프랑스의 드골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 취 임을축하하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케네디대통령,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를 쥐고 있다. 당신 손에 있는 권세로 세계의 역사와 운명이 좌우된다. 당신은 노련한 전 문가인 수많은 보좌관을 데리고 있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그 많은 보좌관이 제각기 자기의 전문적인 지식을 당신에게 말할 것이고, 당신 은 이 사람 저 사람 의 말에 다 귀를 기울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된다. 당신은 당신을 보좌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모두 다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나님 앞에 묵상하고 가슴 속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을 들어라] 우리의 마음은 보좌관입니다. 마음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수학적이고 논리정연하고 사회학적이며 통계적인 것들을 내놓습 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릴 때는 영이 해야 합니다. 묵상하고 기도하는 중 에 우리의 영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판단 을 얻어서 행하게 되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영으로 사는 사람이며 그 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식을


 


성령의 거처

주일학교에서 한 성생이 같은 모양의 두 개의 작은 상자를 들고와서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여러분, 이 상자안에 돌이 가득 들어 있다면 이것은 무슨 상자지요?"하고 물었다. 이때 한 어린 학생이 "그건 돌상자입니다" 했다. 선생은 맞다고 하며 또 다른 상자를 들어보이고는 "이 상자안에는 썩은 뱀이 들어 있어요. 그러면 이 상자는 무슨 상자지요"하고도 물었다. 그러자 "물론 썩은 뱀 상자입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계시는 거록한 성전이예요.우리가 우리자신을 이렇게 거룩한 존재로 여길 때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도 기뻐하실 거예요.


 


신자는 성령으로

파블로카잘스는 20세기 최고의 첼로 연주자이며, 작곡가요, 지휘자요, 피아노 연주자이다. 1966년, 그의 90회 생일이 되기 직전에 노만이라는 사람이 위대한 음악가의 노후의 생활을 관찰한 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관절염과 호흡 곤란으로 카잘스의 손은 부어 있었고, 손가락들은 서로 엉켜 있는 듯했다. 저런 손으로 어떻게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카잘스는 고통스러운 발걸음으로 간신히 피아노까지 걸어갔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자 그를 바라보고 있던 노만의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그 손가락들이 마치 태양 빛에 펴지는 꽃봉오리처럼 펴지더니 건반을 만지는 것이 아닌가? 꾸부정했던 그의 허리도 반듯하게 펴졌다. 확실히 숨쉬는 것도 편해 보였다. 그는 바하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연주는 섬세하고 예민했다. 그는 이어서 브람스의 곡을 연주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카잘스는 생기와 영감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주를 다 마친 그가 일어나 걸을 때 그의 몸은 곧바르게 되었고, 키도 더 커진 듯했다. 간신히 침대에서 나와 고통스럽게 옷을 입던 노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위대한 음악인은 음악 안에서 새로워졌다. 우리 크리스천은 어떻게 새로워질까? 성령 안에서 새로워져야한다.



성령 충만한 자의 고백

본 문 : 사도행전 7:54∼60 

감리교 창시자이기도 한 요한 웨슬레 목사님께서 어느 날 깊은 명상과 함께 주님을 생각하며 깊은 교제를 나누며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환상 중에서 천국 문에 들어서게 되었었다고 합니다.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베드로 사도께서 그를 맞이하게 됩니다. 요한 웨슬레 선생님은 천국에 들어서지를 않고 문간에서 베드로 선생님께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감리교를 위하여 전심전력을 했는데 자기가 전도하고 자기와 같이 하던 사람들 가운데서 이미 죽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 분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이렇게 물어보았다는 거 아닙니까. "나와 함께 영광스러운 Methodist, 즉 감리교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천국에 얼마나 들어왔는지 그것이 좀 궁금합니다" 라고 물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께서는 어떤 명부를 한참 뒤적거리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요한 웨슬레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 그렇다면 나의 신앙은 잘못된 모양이군요. 그러면 한가지 더 묻겠습니다. 영광스러운 칼빈의 5대 교리를 강조하는 장로교인들은 몇 사람이나 들어왔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한참 살펴보고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때에 그는 더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겸손히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종교개혁운동은 대단한 실수를 범하고 있는 거 같군요. 한가지 더 물읍시다. 그럼 천주교인은 얼마나 들어왔습니까?" 베드로 선생님은 한참 있다 대답하기를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 때에 요한 웨슬레 선생은 깜짝 놀라서 "그러면 도대체 누가 이 천국에 들어오는 겁니까?" 베드로 사도께서는 빙그레 웃으면서 요한 웨슬레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나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오는 곳이죠. 다시 말해서 감리교인이냐 장로교인이냐 천주교인이냐 그게 문제가 아니죠. 누구든 예수 믿으면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이 천국에 들어오는 것이요" 라고 말씀을 해주어서 요한 웨슬레가 깊이 깨달은 바가 있다고 합니다.


 



거듭날때 성령이 들어옵니다

한 젊은이가 어머니의 마음을 찢어놓고 아내의 생활을 망쳐놓곤 했습니다.직장을 얻었다가는 술과 도박으로 도로 잃곤 했습니다.가족들이 아무리 도우려고 해도 안되었습니다. 

그는 어느날 예수 믿는 친구에게 『나는 남미로 가서 생활을 새로 시작해 볼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네가 그 곳에 가도 네 옛사람 그대로 가지고,옛 사람의 습관과 죄를 짓게 되면 아무 소용없어.외부적인 조건이나 새로운 환경이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해.자네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 한가지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거야.그러면 분명히 다시 태어나게 될거야』라고 했습니다. 

이 때 이 말이 화살처럼 그 젊은이의 가슴을 꿰뚫었습니다.그는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죄를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중생만이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중생하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요한일서 5장4절).


 


성령은 승리자이다

이태리의 프란체스코의 수녀이며 신비 사상가인 안제라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성령이 어떤 사람의 영혼에 부어지면 성령은 그 사람의 외양도 완전히 정숙하게 한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일 뿐이다." 오늘날 성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들의 태도도 이 말로써 측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맺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일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과 은혜의 성장은 성령으로 인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지 못하면 우리는 불가불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교회에서는 무익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오스틴 오말리는 "반쯤 익은 설교는 영적인 소화불량을 일으킨다"고 말했습니다. "반쯤 익은 설교란 성령이 충만하지 못한 상태의 설교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데 그런 사람 중에는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뜻과는 상관없이 성령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연애하던 기간

1987년 저는 선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저녁 무렵, 난생 처음으로 탄 비행기에서 서울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불빛 속에 얼마나 많은 다툼, 고민, 슬픔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높이 올라와 보니 그것도 아름답게 보이는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아름다운 삶으로 승화시키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미국 유학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주말에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는 것만으로는 신학교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쮸쮸바 공장에서 일도 했었고, 잔디깎기, 제초작업, 그리고 세탁공장에서 와이셔츠를 다리기도 했었습니다. 와이셔츠 한벌 다리는데 0.5달러를 받았는데, 돈을 더 벌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와이셔츠를 다릴 때에는 하루에 200벌까지 다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면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어려움은 그리움과 외로움이었습니다. 미국생활 초창기 1년 동안, 저는 정말 외로움을 많이 탔습니다. 그때 제가 전도사로 있었던 교회는 뉴욕의 플러싱 지역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가까운 곳에 공항이 있어서 비행기가 자주 다녔습니다. 주일 오후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공부하는 신학교로 돌아가면서 하늘의 비행기만 보면 우리 나라에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저 비행기만 타면 16시간이면 한국에 돌아갈 수 있는데...." 하늘의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가끔 저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도 아닌데, 정말 외로움을 심하게 탔습니다. 

왜 그렇게 외로움을 심하게 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저를 찾고 계셨던 것을 미국생활에 차츰 적응하던 시절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성령님과 연애하던 기간이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적으로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했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항상 계신 성령님은 우리가 외로울 때마다 그분의 존재를 더욱 뚜렷이 나타내시며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 주십니다.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

성령은 전폭적으로 삶을 맡긴 그리스도인 안에 살아계신다. 그리고 인생에게 성렬함과 평강, 목적과 능력을 아울러 주신다


1. 아어받게 하심(행26:28).


(1) 기업, 곧 새로 태어나는 것은 성령 충만케 하기 위해서 그에 적합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 신다.


(2)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벧전3:15). 아울러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롬6:13).


(3) 성령은 성도가 전적을 맡길 때 성결케 하신다(롬15:16), 뿐만 아니라 영과 혼과 몸을 깨끗케 하시며 거룩하게 하시고 지키시게 하신다(살전5:23).


2. 거하심(요14:16).


(1) 성령은 그리스도인에게 내주하신 보혜사이시다. 그는 내가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고 약속하셨다(요14:18,16:22). 우리가 사는 세계는 필사적으로 재산을 끌어 모으고 쾌락을 즐기거나 권력을 잡음으로써 안전과 평정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실상은 그럴수록 더욱 분열과 쟁투만 더할 뿐이다(히13:5)


(2)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안전과 평정의 근원이 되신다. 따라서 문제 많은 세상에서 조차도 성령이 함께 계셔 안전함과 확신을 주신다(향28:3-6).


3. 가르치심(요14:26).


(1) 많은 사람들의 삶은 좌절과 혼란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조언을 받으며 겨우 삶을 연명해 나간다(행2:37). 영이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성령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요3:8).


(2) 성령은 전적으로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일하고 말하고 사랑을 나타내신다. 그리고 성령의 가르치심을 복종함으로써 기쁨을 느낀다(요16:13).


4. 참여하게 하심(행1:8).


(1)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바쁘고 더러는 수줍어하며 더러는 영적으로 나태하여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계2:3-4). 영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는다. 그들은 방황하는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며, 자신의 손익을 따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서 도우며 구원의 손길을 뻗힐 능력이 있다(행8:26-39).


(2) 위의 모든 일을 감당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들의 영원한 상급, 곧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것과 같다(마6:20).


(3) 그리고 성령께서 시키시는 일은 하지 않을 수 없다(렘20:9, 단4:2, 요1:9).



성령으로 마음을 채우며

1971년 부흥회 인도를 위해 워싱턴 주의 시애틀로 갈 때의 일이었습니다. 착륙 준비를 하던 기장이 문제가 발생했다는 방송을 했습니다. 

비행기의 앞바퀴가 제자리에 정착이 되면 불이 들어와야 되는데 불이 들어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조종사들은 앞바퀴가 잘나와 있는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장은 연료가 거의 떨어질 때까지 상공을 돌다가 비상착륙을 시도하겠다고 방송을 했습니다. 창 밖으로는 구급차들이 줄을 지어 서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고 승객들은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기장의 마지막 점검을 들었습니다. 만일 승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인생의 가장 절박한 심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승객들은 그 절박한 순간들을 견디기 위해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으로 마음을 채우며 그 시간을 보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그의 영향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우리의 생각, 동기, 인간 관계, 우리의 꿈까지도 간섭하시기를 간구하여야 합니다.


 


성령을 구한 기도

세계적인 부흥사인 무디는 학교교육이라곤 보잘것이 없었으나 그는 강한 성령의 능력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가 처음 성력의 불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 가 있다. 보통 목사들은 자신의 설교가 끝나고 난 뒤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무디가 설교를 마치고 나면 꼭 몇 사람 이 그에게로 와서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만 했다. 나중 에 화가 난 무디가 왜 그렇게 말하는가하고 물으니 그들은 "목사님의 설교 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했다. 

그말에 자 극을 받은 무디는 그날부터 성령강림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했다. "성령의불을 내려 주시옵소서"하며 오랜기간 기도에 힘쓴 그가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기도가 하고 싶어져서 급하게 근처의 친구집을 찾아가 방을 빌려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의 문이 터지더니 마침내 그에게 강한 불이 임하는 것을 느꼈다. 그 불이 너무나 뜨거워 그만 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하듯 그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된다.


 


성령 충만

면 안된다. 한번 소제했다고 언제까지나 방안이 깨끗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도 한번 반성하고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 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먹은 뜻을 오늘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우리를 떠나고 만다. 

마르틴 루터


 


당신은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다

홉킨스씨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이었는데, 그는 1945년의 얄타 회담에 참석했던 사람이다. 얄타 회담에는 당시 세계의 지도자들인 처칠, 스탈린, 루즈벨트가 함께 모여서 회의를 한 것이다. 

홉키스 씨는 자기 아들에게 기념으로 주기 위하여 소련의 화페인 1루불 짜리 지폐에다 세 지도자의 싸인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 1루불은 미국 돈으로 약 10달러의 가치였다. 

그런데 1981년에 이 1루불 짜리 액면의 지폐가. 미네소타 주에 있는 어떤 사람에 의하여 5천 달러에 팔려갔다. 그것은 불과 미국 돈으로 10달러의 가치밖에 없는 돈이었으나, 세계의 지도자 세 사람의 싸인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무려 500배 이상으로 뛰어버린 것이다. 

당신에게는 어떤 인간의 싸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부, 성자, 성령의 도장이 꽉 찍혀 있다는 사실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라.


 



성령의 인도

영국의 허드슨테일러 선교사가 중국 내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중에 극도로 피곤하고 번민하여 좌절에 빠진 때가 있었습니다. 거룩해지려고 노력할수록 그 반대의 행동이 나오고, 믿어야 될 줄 알면서도 자꾸 의심이 생기고, 열매를 맺으려고 해도 열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실망과 좌절에 빠졌을 때, 그의 누이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오빠는 포도나무 가지에 불과하니까 그분에게 맡기고 의지하면서 쉬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포도나무가지는 영양분을 끌어 올리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꽃을 피우려고, 열매를 맺으려고 힘쓸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원줄기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으면 저절로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테일러는 자신의 인간적인 노력을 포기하고 완전히 주님께 맡기고 쉴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는 주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많은 열매를 거두고,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케직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패배를 당했고 그래서 승리를 간구했으나 승리는 도무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는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승리는 왔습니다."라고, 내가 내 힘으로 노력해서 성취하려고 헛수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성취해 놓으신 것을, 믿음과 기도로 내 것을 만들고 내 힘을 빼고 주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모두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중국의 진시황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이며 절대권력을 자랑했던 군주입니다. 만대에 그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육적인 기쁨은 잠깐입니다. 진시황은 세상에 좋다는 인삼과 산삼을 먹고 천하의 명의들을 수천 명 두었으나 49세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나라는 오래갈 줄 알았지만 4년 만에 산산조각 났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식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권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물질주의와 지식만능주의와 세속화는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차갑게 하는지 모릅니다. 세속문화가 우리에게 수많은 프로그램으로 다가오고, TV마다 많은 것을 보여 주어도 우리에게 참 만족은 없습니다. 

어느 시대보다도 이 시대는 성령의 충만함이 간절히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이 나라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단비와 같이, 소나기와 같이, 장마비와 같이 임할 때에 우리를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하는 설교

스코틀랜드의 R.프르스라는 유명한 설교학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날 설교시간이 되었는데 목사님이 안나오셔서 교회 비서가 찾아가서 밖에서 들어보니 말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누구와 대화중인가 보다, 대화가 길어지는구나'하고 생각하고는 조심스러워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가보니 또 대화를 하고 있어서 가만히 엿들어 보았다. "당신이 안가시면 나도 안갑니다"하며 누군가에게 사정하는 얘기였다. 

그래서 하도 궁금하여 문을 살며시 열고 보았다. 그랬더니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제가 준비는 다했지만 성령님께서 저와 함께 가시지 않으시면 저 혼자 갈 수 없습니다"하면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바랬다는 일화가 있다. 

이처럼 `성령님께서 가셔야 내가 이 시간에 가서 설교하겠다'는 이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도 말씀과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거기서 부딪혀서 강한 역사가 일어나는 데 쓰임받는 설교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맺자


갈 5:22~26/찬송 169장 

그리스도인의 좋은 행실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특히 25절에서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성령이 제시하는 삶을 살 것을 교훈하는 말이다. 우리는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는 말씀처럼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의 삶을 맡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령의 9가지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일을 행함으로 성령의 사람, 성령의 좋은 나무라고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덕목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할 규범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었는가 살펴보고 앞으로 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열심히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분명히 성령이셨나요

어느 날 예배가 끝나자 어떤 사람이 브라우튼 박사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박사님이 설교하시는 중에 성령께서 제게 '너에게 꼭 필요한 50달러를 박사님께 달라고 하면 주실 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브라우튼 박사가 이렇게 응수했다. "거참, 이상한 일이군요. 내게 50달러가 없다는 것을 성령께서는 잘 아실 텐데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지요? 그분이 분명히 성령이셨나요?" 

참조: 요일4:1, 마12:32, 눅12:10


 



내 안에 계신 성령을 따를 뿐

어떤 부흥사의 설교를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듣고 난 한 여자가 도전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이 시대의 정신을 따르지 않는군요. 너무 시대에 뒤쳐져 있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그러자 부흥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나는 이 시대의 정신을 따르지 않습니다. 나는 이 시대 속에서 활동하시며 또 내 안에도 계신 성령을 따를 뿐입니다." 

참조: 롬12:2, 살전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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