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위해 받는 세례?
본문
특별히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첫번째 사건, 여기서 거론하는 주제는 사실 난해한 구절이다... 단순히 단어를 번역한다거나 문장만 가지고는 알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본문에 있는 말씀을 잘 들어보라. 이런 것이다.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29절)" -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니, 이게 지금 무슨 말씀인가... 세례라는 것은 아시는대로 누구든지 자기가 세례를 받는 것이다. 자기가 신앙고백 하고 자기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받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 된 증거를 얻고, 이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해나가는 게 아닌가 그건 분명하다. 그러면 어디까지나 이 세례는 개인적인 것이다. 물론 부모님이 신앙을 대신 고백했고, 나중에 큰 다음에 입교라는 게 있다. 그 때에는 세례식만 하지 않을뿐 신앙고백은 똑같이 다시 한다. 그러니까 미리 세례를 받아가지고 그 신앙 안에서 키우는 것이지, 유아 세례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교인이 다 되어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어째든 세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이건 대신 받는 게 못된다. 신앙고백은 절대로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나를 위하여 주께서 죽으시고 나를 위해서 부활하셨다고 하는 믿음을 받아들일 때에야 세례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은 자들을 위하여"하는 말은 잘못 들으면 예수 안믿고 죽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지금 대신 세례받는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이것 또한 말이 안된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는 분명히, 죽은 자를 위하여 받는 세례라고 말씀하고 있다.여기서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될 문제가 있다. 어쨌든 이것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산 자가 대신 세례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세례는 개인적인 것이다, 하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해할 것이 있다. 세례는 종말론적 의미를 가진다. 지금 땅에서 세례 받지만, 여기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름을 얻게 되지만 그런 의미만이 아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생각하면 이건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시간이다. 아주 귀중한 종말론적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문자대로 원리적으로 말하자면 세례 받고 죽으면 천당가는 것이다. 세례 못받고 죽으면 못간다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다...이런 종말론적 의미를 생각하면서 세례를 이해하면 본문의 뜻은 쉽게 풀어나갈 수가 있다. 조금 더 성서학적으로 보면 여기 '휴페르 톤 네크론'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톤 네크론'이라는 말은 '죽은 자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치사 '휴페르'이다. 성경에는 '위하여'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좀더 파고들어가서 생각 해보면 공간적으로, 어떤 장소를 말할 때에 '휴페르'가 앞에 있으면 '그 위에'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문자대로 해석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라는 것은 "죽은 자들 위에서 세례 받는 자들"이라는 말이다...세례라는 것은 옛사람이 완전히 죽는다는 뜻이다. 완전히 죽고 새 사람으로 산다는 뜻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 위에서' 세례를 받는다, 한다.그리고 '휴페르'를 사람에 대해서 쓸 때에는 'instead of' 또는 'on behalf of'라는 말이 된다. '대신해서' 혹은 '대표해서'라는 말이다. 본문에는 '위하여'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가 된다. 이것도 당시로 돌아가서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면 이렇다. 여기 지금 예수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옛날, 이천년 전 초대교회 시절에는 세례받기가 아주 힘들었다. 한 사람이 세례를 받고 굳건한 믿음으로 살다가 순교당한다. 교회는 허전해졌다. 우리는 세례 못받았는데 그 분은 세례받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저렇게 세상을 떠난 참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다른 청년이 나타난다. "내가 대신 세례받겠습니다. 그분 대신 내가 세례 받겠습니다. 내가 세례받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다, 하고 그에게 세례를 준다. "이로 인하여 너는 핍박을 받고 순교를 해도 끝까지 예수의 이름을 부인하지 말고 증거하다 갈 것이다. 그러겠는가" "예! 순교하겠습니다. 죽은 사람과 같이 나도 순교하겠습니다." 맹세하면서 세례를 받는다. 이 얼마나 깊고 오묘한 종말론적 의미가 있는가, 이 세례라는 것이. 이야말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하는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하여'는 '이미 순교한 자를 대신하여'가 된다. 순교 당한, 죽은 자를 생각하며, 그 성도를 사랑하며, 그와 내가 일체감을 가지면서, 그와 나를 영적으로 동일시하면서 세례를 받는다, 부활신앙이 없고,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바로 이런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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