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강력한 절대 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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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1337-1453) 이래 프랑스에서는 중앙집권화의 경향이 강해지기 시작했는데 16세기 말에는 부르봉왕조가 성립되고 18세기 중엽 루이 14세가 즉위함에 이르러 국왕의 절대 전제적 권력은 그 절정에 달했다. 곧 재상 마자랑은 귀족의 왕권에 대한 반항이었던 프롱드의 난을 진압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독일의 내전 30년 전쟁에 교묘하게 간섭해서 유럽의 지도권을 장악했다. 한편 재무총감 콜베르는 중상주의 정책으로 국부를 축적했다. 이리하여 프랑스는 유럽 제일의 강국이 되고 국왕 루이 14세의 위세는 천하를 눌렀다. 루이 14세 자신도 자기의 권위를 십이분 의식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전행을 다하였다. 국무를 처리할 때 왕의 전단을 국가의 이름으로 간하는 자가 있었을 때 왕은 대답했다. “국가라니 그것은 나다.”이러한 강력한 절대 왕제는 중세 이래의 귀족계급과 르네상스 이후의 신흥 시민 계급과의 균형 위에서 유지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고 그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이론적 무기로서 제왕 시권설이라는 것이 안출되었다. 루이 14세 치하에서 프랑스가 미증유의 번영을 이룩하여 문화면에서는 코르테이유 라신몰리에르 같은 고전파 예술의 꽃을 피우게 하였고 후세에 그가 ‘태양왕’이라는 빛나는 이름을 받은 것도 마땅한 노릇이기는 했지만 이 태양은 이내 프랑스 왕권의 낙양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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