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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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이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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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금화예배당에서 미국인 선교사 신랑과이화전문 출신의 신부가 결혼식을 올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있었다. 피터스 선교사와 한홍복이 그 주인공이었는데, 신문은 그들의 로맨스를 '국제가화'(국제가화),'호화의 국제연애'라고 표현하면서 호의적으로 실었다.피터스 목사는 그때 한국에 온지 10여 년 되는 선교사로서 진정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농민 속에 뛰어들어 기거동작을 함께하면서 이들을 잘 지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부터 '조선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품었다. 그는 우리말을 잘 했고,양복을 벗어버리고 한복에 버선에 고무신을 신고 살았다. 그는 영어로 이름이 쓰인 편지는 제쳐놓고 한글이나 한자로 쓰인 편지를먼저 반겨 보는가 하면 "조선사람이되려면 조선가정을 이루고 조선생활을 하고 조선인 자녀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조선여자와결혼하는 것이 소원이었다.피터스 목사의 철저한 '조선인화주의'는 선교사들 사이에는이질적으로 취급되었다. 이화전문의 선교사들조차도 피터스 목사를 만나면 곧잘 이렇게 말한곤 했다. "우리 이서방이 기다리는데 왜 안놀러옵니까" 이서방은 선교사들이 데리고 있는 상용인을 말하는것으로 이 말엔 멸시하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그리고 한홍복은 개성 출신으로 부친인 한도수목사는 미국에 머물러 있었다. 재학새절에 연극과 운동에 재주를 보인 한홍복은 졸업 후 농촌사업에 투신하여 강원도 철원에서 봉사하고 있었다.철원에서 멀지 않은 금화에 피터슨 목사가 시무하고 있었으므로자연히 가까워지게 되어 결혼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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