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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술과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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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무속이나 점술, 풍수관념이 매우 깊게 자리잡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무속이나 점술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풍수설까지 가세하여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 연말이나 연초, 입시철이나 선거철이 되면 예언의 힘을 빌리고자하는 무속이나 점술가들의 집은 북적거린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이러한 현상이 최근들어 부쩍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가 근대화를 기치로 내건 이후 무속이나 점술은 전근대적 미신으로비판받아 왔기 때문에 근대화가 상당히 진행된 지금에 당연히 미미한지위에 놓였어야 할 텐테 예상과는 상반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그러한 원인을 어떤 관점에서 분석하든지 예언에 대한 의존심리가커져가는 사회는 분명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건강하고 성숙된 사회를 만들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불교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예언의 유행과 범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어떤 사람은 점술이나 예언이 불교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속인들이나 점성술가들이 대부분 불상이나 사주풀이나 풍수설로 신도들의 문제를 상담해 주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불교계 현실과 불교사상을 구별할 필요가있다. 불교계 현실에 비추어 볼 때에는 일반인들의 그러한 인식이 전혀 부당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측면이 있는 반면 불교사상에 비추어볼 때에는 그것은 오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불교는 종교 전파역사에 있어서 유일하게 종교전쟁을 일으키지 않은종교이다. 불교가 지닌 포용과 정신 때문이다. 자신의 교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종교나 사상을 이단시하여 배척하지 않는 것이 불교이기 때문이다. 무속신앙이 지니는 나름대로 지위를 인정해 주면서그보다 더 차원높은 것이 불교라는 점을 일깨워주려 했다. 그리하여무속을 궁극적으로 불교의 차원으로 이끌어 들이려 했다.점술이나 풍수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판과 배척보다는 일단 그들의 자리를 인정해 준후 불교의 가르침에 비추어 자신의 한계를 깨달아 장하게 하는 것이 불교의 태도이다.현재 무속의 무속인들이나 점술가들이 한결같이 부처님을 최고로 인정하여 불상이나 불화를 모시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배경에서 이해할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일반인들의 인식을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나무랄 수만은 없다.불교의 가르침에서 볼 때 무속이나 점술에 의한 예언 행위는 명백한어리석음의 소산이다. 부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점술과 같은 것을예언하지 말라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진리답지 못한 행위라는 것이다.불교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진행을 인과법에 의해 설명한다.과거에 마음과 몸과 말로 짓는 업이 원인이 되어 미래의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인과 법칙에 의해 정교하게 진행되는 것인데 매우 복잡하게 얽혀 진행되는 인과 관계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로서는 그 인과 관계의 시종을 이해하기 어렵다.이러한 불교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무속이나 점술에 의한 예언이어리석음의 소산일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예언이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가 자신들의 현재 마음과 몸과 말로 짓는 행위와 상관없이 펼쳐진다는 생각을 지니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행위와 노력에 입각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고 그 미래를예언에 의해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어리석으며 진리답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지금 우리 사회는 합리적인 예측을 포기하게 하는 분위기이다. 어떤신통이나 비술에 의해 미래를 알고자 하는 경향이 증대되는 상태이다. 인과법에 의한 합리적 예측은 설하는 불교의 가르침과도 어긋나는 현상이다. 무속이나 점술의 예언에 현혹되지 말자. 그것은 불교의가르침에 어긋나는 진리답지 못한 행위이다. 미래가 궁금하면 지금자신이 어떤 업을 짓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것이 불교다운 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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