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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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병탄조약이 조인되던 날 밤 그 주역을 맡았던 당시 통감인 데라우치는 축배를 들고 즉흥시를 읊었다. [가토와 고니시가 세상에 살아 있다면 /오늘 밤 떠오르는 저 달을 어떻게 보았을꼬.] 가토와 고니시는 임진왜란때 조선 침략의 선봉장들이다. 이에 곁에 있던 이토의 한 심복이 받아 읊었다. [도요토미를 땅 속에서 깨워 보이리라 / 고려산 높이 오르는 일본 국기를.] 조선침략을 둔 일본과 일본인의 본심이 때묻지 않고 순수하게 표출된 즉흥시요 그데라우치가 일본 야스쿠니신사의 윗자리에 모셔져 있다.[한국통사]에 보면 한말 의병봉기때 의병을 숨겨준 동네 사람들을 잡아다반신을 땅에 묻고서 왜병들에게 총검술 훈련을 시켰다 한다. 소에 물을 먹이듯 물을 먹인 다음 배 위에 널빤지를 깔고 그의 아들들로 하여금 널뛰듯 양편에 올려 세워 입으로 물이 뿜어져 나오게 하고 손뼉을 치며 좋아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잔인무도하게 병탄의 전초를 닦은 것이 주둔군 사령관이요 데라우치 이후에 총독으로 군림하는 육군대장 하세가와다. 그 하세가와도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 신사다. 그후 사이토니 미나미 고이소 아베 등 조선 총독들이 앳된 한국 소녀들을 위안부로 끌어가 성적 야수의 굴에 던져 주었던 관동군 사령관 남방군 사령관 그리고 만주의 저항 동포들을 잡아다 세균전 실험용으로쓰고 암매장한 731부대장도 그 곳에 모셔져 있다.일본에는 봉건제도하의 각 번단위로 초혼사라는 신당을 만들어 나랏일보다 죽은 사람의 신주를 모셔왔는데 1879년 명치유신 직후지금 동경의 초혼사를 야스쿠니신사로 이름을 바꾸어 군국주의의 정신적 온상으로 삼은 것이다.그리하여 이 신사에 모셔지면 [야스쿠니의 집]이라하여 그 집 앞을 지날때 고개를 숙이도록 하고 배급을 우선적으로 하며 부역을 시키지 않은 등 혜택과영예를 주어 어릴적부터 군국주의 앞잡이로 나아가 죽는 것을 선망토록 했던사교 사당인 것이다.일본의 총리를 비롯 장관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군국주의에 대한 민간차원의 향수를 국가차원에서 수렴하는. 그래서 그 때문에 역사가 피투성이가 된 주변 국가들에 대해 내심의 칼날을 세우는 행위일 수 밖에 없다.죽은 이웃집 아저씨 성묘하는 기분으로 간 것일뿐 다른 의 미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私人이면 그럴 수 있다. 公人으로서 총리의 자리가 그렇게 한가한 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1996. 8. 3. 이규태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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