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모 박사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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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에 경기중학교 수석 입학하고,15세에 경기고등학교 수석 입학.그리고, 고교 입학 4개월만에 대입 검정 고시 전국 수석.16세에 서울대학교 문리대 차석 입학하고,21세에 미국 미시간 주립대 박사 과정 수석 합격했으며,24세에 박사 학위 취득.24세에 미국 사우드 플로리다 대학 조교수가 되고,27세에 MIT 원자력 공학과 연구원.28세에 뉴욕 공대 전기물리학과 부교수가 되었으며,43세에는 한국전력 사 장,그리고 51세에 과학기술처 장관지금까지 열거한 이력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기술처 장관이었던 정근모 박사의 이력입니다. 이 정도의 실력과 재능이라면,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대 과학의 일인자라 할 수 있는 정박사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냥 점잖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그의 글을 읽어보면, '마치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기도한 것처럼, 밤새도록 주님께 기도했다'고 기록했습니다.그의 아들이 만성신장염을 앓게 되자, 그는 그의 콩팥 하나를 아들에게 떼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술이 잘못되어, 황달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황달은 흑달이 되어, 아들은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그래서 그들 부부는 교회에 나가서, 그 아들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달렸음을 깨달으며, 밤새도록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과학과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그러나 그 아들은, 심한 좌절감과 우울증으로 염세적인 사람이 되었고, 급기야는 두 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박사 부부는 그 아들을 끌어안고 울면서, 아들을 치유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정 박사는, 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정말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는 순간들이었다. 이건 나의 전공인 과학의 힘으로도, 인간의 의지나 설득으로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관계로도 해결할 수 없는 한계 상황이었다. 나는 인간의 창조주요 절대자인 하나님 앞에, 한없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모태 신앙인이었던 정 박사는, 그동안 교회 생활에는 불충실하고 세상일에만 전념했던, 지난날의 생활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롱아일랜드 중앙감리교회>를 교포들과 함께 개척하기도 하면서, 신앙 생활에 열심을 다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세상적으로 보면, 부족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정근모 박사. 그러나 그도, 이 험한 세상을 홀로 살아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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