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이 지구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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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티베트 고원지방에 라다크란 곳이 있다. 인구 13만의 이 오랜 도시는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뉴욕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다. 라다크 사람들은 혹독한 고산기후와 빈약한 자원, 원시적인 연장밖에 없지만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산다. 1년에 4달만 일하고 긴 겨울을 각종 잔치와 행사로 보낸다. 물자도 부족하고 육체노동의 연속이지만 웃음과 노래가 끊이지 않는다. 낭비와 오염은 없다. 사람이 먹고 난 것은 짐승에게 먹이고, 그 나머지는 연료나 거름이 된다. 집에서 만든 옷을 더 기울 수가 없을 때까지 입은 뒤에는 수로바닥에 깔아 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데 쓴다. 대가족의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하다.라다크는 <오래된 미래>(녹색평론사)라는 책으로 유명해져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 `라다크로부터 배우자'는 유행어를 낳았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별로 새로울 게 없다. 고도성장 이전 우리의 전 통사회가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대는 옛 공동체 사회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가난했어도 건강했던 전통사회의 경험은 오늘 귀중한 자산이다.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너도나도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해외여행과 외제 사치품 구입을 삼가는 것은 물론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오고, 심지어 승용차 운행을 줄여 도저히 해결이 안될 것 같던 도심 교통난이 해소됐을 정도다. 이 런 삶의 변화를 고통으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경제가 좋아진다면 또다시 원없이 소비의 기쁨을 누릴 것인가.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을 압축 고도성장 기간 동안 정치와 경제에 똬리튼 왜곡과 부패에서만 찾는 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경제불황이 아니더라도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위기를 느꼈다. 인간소외와 공동체 파괴 그리고 지구환경에 해로운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다. 이제 우리도 그런 위기의 본질을 곰곰이 생각할 때가 아닐까.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에는 요즘 `검소한 삶' 또는 `자발적 소박함'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현대판 히피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각종 문명이기와 숨가쁜 경쟁, 지나친 소비를 버리 고 마음의 행복, 가족·친구·이웃과의 강한 유대, 환경보호를 자 발적으로 택한다. 이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만도 수백개에 이른다. 이들은 인터넷(예를 들어 www.igc.org/frugal/)을 통해 가장 돈을 적게 들이면서도 환경을 보호하고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요리 법, 물건 만들기, 쇼핑 요령 등의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학계에 서는 이런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젊은이가 베이비붐 세대의 4%인 400만명에 이르며 앞으로 10년간 가장 중요한 사회경제적 현상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사실 절약은 생태계의 기본 원리 중 하나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이도원 교수는 최근 낸 책 <떠도는 생태학>(범양사출판부)에서 “숲 1㎡에 떨어지는 낙엽의 에너지는 성인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열량과 맞먹는다”고 밝혔다. 이런 아까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척박하고 메마른 산 능선에 있는 참나무는 바람이 센 겨울 동안 낙엽을 떨구지 않다가 이른 봄 일시에 떨어뜨려 양분으로 삼는 지혜를 발휘한다고 한다.이런 생태계의 원리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제도에도 적용돼야 한다. 예를 들어 서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디밭을 채소밭으 로' 운동을 눈여겨볼 만하다. 서울만 해도 3만명이 도시농업을 할 수 있는 노는 땅이 있다. 이곳을 도시텃밭으로 만들면 야채 공급은 물론 휴식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공간으로도 효과가 클 것이다.최근 우리나라에도 자연형 하천 만들기 등 도시에 생태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바로 생태도시 만들기의 시작이다. 그러나 생태도시는 몇가지 생태학적 공법이나 공간을 마련한다 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물과 에너지 순환이 최대한 환경친화적으로 이뤄지고, 무엇보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 생태 학적으로 건전해야 한다. 인구가 적고 땅이 넓은 소도시에서 시도 해볼 만하다.에너지 분야도 마찬가지다. 김종달 경북대 교수가 계산한 바로는 효율 높은 전기기기로 교체하는 등 에너지 수요관리를 통해 모두 19조원이 필요한 대형 원자력발전소 14기를 건설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생활이 어려워지면 당연히 몸이 고단해진다. 그렇지만 적게 쓰고 많이 움직이는 생활이야말로 생태계 원리에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IMF 역경은 우리의 삶과 지구를 구할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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