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화(전화위복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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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전화위복 외)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나쁜 것은 복으로 바꿔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다윗은 13년 동안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면서 별의 별 곤경은 다 꺾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전무후반 통치권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게 버린바 되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요셉은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 곤경은 하나님이 돌이켜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의 아버지와 집 나간 탕자의 말씀은 너무나 위대하여 그 말씀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한 부잣집의 작은아들이 때도 안 되었는데, 아버지께 떼를 써서 자기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받아 가지고 먼 타국 땅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그 재산을 창기와 함께 다 탕진해 버리고 살길이 없게 되자 돼지치기가 되었습니다. 돼지의 밥을 먹으며 돼지와 함께 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돼지의 밥도 풍족하지 못하여 늘 배가 고팠습니다.
귀한 집의 도련님이 돼지치기 신세가 된 것은 아버지를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중에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한편 아버지는 큰 부자이기 때문에 사람을 파송해서 아들의 처지와 정보를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주석학자들은 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이 창기와 함께 허랑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재산을 날린 것도 보고 받았고, 돼지치기가 된 것도 보고 받았지만, 아들을 데리고 오면 그 아들이 언제 또 집을 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아들이 회개하고 스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부름하는 사람이 달려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주인님, 도련님께서 오고 있습니다.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멀리서도 그 아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달려간 아버지가 돼지 냄새가 나는 더러운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했습니다.
"너는 잃었다가 찾은 아들이요, 죽었다가 산아들이라." 그리고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새 신을 신기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오늘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자. 죽었던 내 아들을 찾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인내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 보기에는,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릴 가치가 없는 아들입니다. 그의 형이 보기에도 그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창기와 함께 재산을 날려버린 동생이니 형도 그를 미워했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의 친형도 그를 쓰레기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그를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며 기다렸다가 돌아오니 안아 주고 용서해 주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눈에는 쓰레기 같고, 방탕하게 막 사는 그들이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아 마땅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눈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만 명이나 모이는 큰 교회가 되었는데, 그 큰 교회의 목사님이 불행하다고 하셨습니다. 교회 밖에 구원받을 백성이 그렇게 많은데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말 마음 아프고, 그들을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답니다.
저는 너무 행복하고 즐겁게 목회를 해 왔는데,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저는 영혼 구원의 열정이 부족하다는 느꼈습니다.
큰아들이 보기에 작은아들은 쓰레기이고,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 작은아들은 아버지의 귀한 재산을 말아먹은 망나니, 벌을 받아 마땅할 인간이지만, 아버지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방탕하게 막 살아도 그들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에스겔 18장 23절에 말씀하십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무슨 말씀인가? '내가 어찌 악인이 그 악 가운데서 죽는 것을 원하겠느냐? 내가 어찌 악인이 돌아와 회개하고 살기를 기뻐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입니다.
또 22절에도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천하 만민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까지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효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한 선교사님이 교인 집에 심방을 가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빨간 고추장이 잼인 줄 알고 발라먹었습니다. 여러분은 고추를 고추장에도 찍어 먹지만, 서양 선교사님이 고추장을 먹었으니 얼마나 매웠겠습니까?
또 깡패들이 코쟁이라고 돌을 던지며 놀리기도 했습니다.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심지어 교인들에게도 멸시를 당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설교를 하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선교사님은 할머니가 은혜를 받고 그렇게 우는 줄 알았습니다. 예배 후에 선교사님이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무슨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은혜는 무슨 은혜. 선교사님의 눈을 보니 죽은 우리 집 염소의 눈이 생각나 울었어요." 선교사님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때 그분들이 힘들다고 우리나라를 그냥 떠났다면 우리는 어찌 되었겠습니까? 여러 어려움이 많았지만, 선교사님들이 그냥 돌아가지 않고 참고, 참고 오래 참아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분들이 교회를 세우고 대학교를 세우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
고 있지 않습니까? 그 고마움을 알아야 합니다.
▶멕시코의 37세 된 여성 칼베스가 이번에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고학생이었습니다. 방을 구하지 못해 복도에서 자고, 배가 너무 고파 구걸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열심히 공부하여 큰 회사의 사장이 되고, 장관이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자녀 교육을 가장 잘 하는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은 인내하며 삽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갑니다. 다른 곳에 가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 가고 싶어도,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도 자녀를 위해 집으로 갑니다.
이스라엘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여자들은 군인 출신이어서 억셉니다. 그러나
남편과 싸울 일이 있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습니다. 인내합니다.
감정이 폭발할 듯이 화가 나도 '아이들이 잠든 뒤에 공원에 나가서 싸우자'하며 참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잠든 후에 부부가 공원에 나가면 싸울 마음이 나겠습니까? 대부분의 부부는 그 좋은 분위기에 마음이 변해 정답게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답니다.
또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남편의 의자에는 절대로 앉지 않는답니다. 남편이 3개월간 출장을 가도 그 의자에는 아무도 앉지 못하게 한답니다.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그 의자에 올라가면 매로 때린답니다. 그 정도로 남편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존경할 점이 없고 능력이 없는 남편이라도 자녀 교육을 위해 남편을 왕처럼 받드니,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어떻게 안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자녀 교육도 인내해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자동차로 저를 태워주신 한 장로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 친구는 서울 상대를 졸업한 사람인데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이민 생활 19년 동안에 교회를 스물 세 번이나 옮겼습니다. 그렇게 까다로운 친구라 천국에 갈지 모르지만, 아마 천국에 가도 맞지 않을 겁니다."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하나님, 제 영이 살기 위해 교회를 옮깁니다."하고 10년, 20년 만에 교회를 한 번 옮기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1년에 한두 번씩 어떻게 옮겨다닌단 말입니까?
그런 사람은 어느 교회에 간들 맞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아시고, 서머나 교회를 아시고 빌라델비아 교회를 그대로 다 아십니다.
계2:1-2절에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충성하고 계시는 여러분을 아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주님께서 "얘야, 어디서 어떻게 하다 왔냐?"하시면 "예, ○○교회를 섬기다 왔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스물 서너 곳을 옮겨 다녔다면 그때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교회 생활이나 가정 생활이나 직장 생활이나 인내가 없으면 온전하게 되지 않습니다.
▶한 착실한 집사님은 아주 좋은 직장에 근무하는데 목사님과 상단하는 자리에서 '목사님, 우리 사무실의 직원들이 저를 싫어합니다. 회식하는 자리에도 가지 않지요, 단합대회에도 가지 않지요, 술도 마시지 않지요, 그러니까 저를 자꾸 소외시킵니다. 저 때문에 사무실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 두려고 합니다.'
'집사님, 그것은 집사님의 오판입니다. 그들이 집사님을 소외시켜서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집사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집사님과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집사님이 너무 귀하게 사니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 소리하지 말고 그대로 직장을 다니세요.'
'정말 그럴까요?' '그렇고 말고요.'
몇 달 뒤에 그 집사님이 승진했습니다. 또 얼마 후에 승진했습니다. 지금 그 직장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간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때 그 집사님이 인내하지 못하고 직장을 옮겼으면 지금처럼 어려운 이 시기에 무엇을 하고 있겠습니까? 인내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인내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매사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억울하다고 자살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다윗이 골리앗 죽이고 전쟁에 나가 공을 세웠는데 역적의 누명을 쓰고 10년 간 고생하며 살때 자살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야곱이 20년 간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열심히 일했는데도 집 한 채도 얻지 못했다고 낙심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내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꽃 피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하나님을 닮아 인내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장하는 것, 자라는 것은 흥미로운 일, 신바람 나는 일, 그리고 기쁜 일입니다. 제가 18년 전에 일본을 돌아볼 때는 일본이 굉장히 앞서가는 나라 같았습니다. 일본을 돌아보면서 여러 가지 충격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보니, 18년 전이나 별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의 전 지역이 예전보다 더 우중충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일본의 전역에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졌습니다. 호텔마다 백화점마다 식당마다 '고
요한 밤 거룩한 밤'하는 찬송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성탄절 트리도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모릅니다.
사람들을 들뜨게 해서 매상을 올리려고 성탄절 캐럴을 들려주고, 트리로 장식한 것뿐입니다. 일본은 영적으로 은혜가 없는 불쌍한 나라입니다. 저뿐 아니라 함께 가셨던 모든 목사님들이 일본은 참 공허한 나라라며 탄식하셨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발전한 모습이 눈에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우리 한국은 어떻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발전한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일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이스라엘 사람이 복 있다고 했습니다. 로마 사람, 영국 사람, 독일 사람, 미국 사람이 복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대한민국 사람이 복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미국 사람들은 테러 때문에 편지 봉투도 마음대로 뜯어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마음대로 뜯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 민족을 크게 쓰실 줄로 믿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사람들이 기뻐합니다. 하지만 백일이 되고 첫돌이 되었는데도 태어났을 때의 핏덩이 모습 그대로, 3.5kg의 몸무게 그대로 있으면 그 아이는 근심 덩어리가 됩니다. 태어났을 때는 핏덩이 같지만 백일이 되면 까르르 웃으니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좋아하며 축하하는 것입니다. 첫돌이 되면 서는 것을 보고 축하하는 것입니다. 나이에 맞게 자라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스물 살이 되어도 여전히 3kg밖에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정상적으로 자라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한 거지가, 병들어 움직일 힘이 없어 얻어먹지 못하는 동료 거지들을 바라보다가 "내 동료들은 병이 들어 걷지 못해서 얻어먹지도 못하는데, 나는 이렇게 걸어다닐 건강이 있으니 감사하구나."라고 감사했답니다. 그 거지가 감사하다가 나중에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우리 생활 속에 감사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저도 성장해야 됩니다. 제 5년 전의 믿음, 5년 전의 경건이 지금도 그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제가 쑥쑥쑥 커나가야 됩니다. 장로님들도 안수 받을 때의 영적인 상태 그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쑥쑥쑥 커나가야 됩니다.
신앙이 자라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보채기만 하고, "옷 사주세요. 양말 사주세요. 장난감 사주세요. 등록금 주세요."하며 돈만 씁니다. 그러나 장성하면 효도하고 가정을 일으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구역장도, 교사도, 성가대원도, 안내위원도, 헌금위원도 못합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교회 신세만 지게 됩니다. 신앙이 자라야 주님을 위해 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 청년이 고갯길을 걸어가는데 산 속에서 예쁜 아가씨가 나타나 유혹했습니다. 입에서 아름다운 구슬을 꺼내더니 말했습니다.
"이 달콤한 구슬을 가지고 놀이를 합시다. 내가 이 구슬을 입에 넣어 빨고 나서 당신의 입에 넣어 주면 당신이 또 이 구슬을 빤 다음에 제 입에 넣어 주세요. 그러면 당신은 아주 행복해질 거예요."
예쁜 아가씨가 주는 아름다운 구슬이라 청년은 그것을 입에 넣어 굴려 보았습니다. 얼마나 달콤한지…. 또 얼마나 기쁘고 신바람이 나는지, 청년은 계속해서 그 예쁜 아가씨를 만나러 가서 구슬을 주거니 받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지혜로운 한 어른이 그 청년의 얼굴에 핏기가 자꾸 없어지고 몸에 힘이 자꾸 없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네, 어디 아픈가?"
"아니예요."
"바른 대로 말해 봐."
"사실은 저 산에 예쁜 아가씨가 있는데 아름다운 구슬을 갖고 와서 …."
"그 아가씨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된 암 여우야. 자네 피를 빨아먹기 위해 여우가 아가씨로 둔갑해서 나타난 거야. 이번에 만나도 구슬을 주거든 그 구슬을 멀리 집어 던져 버리게. 절대로 다시 그 여우의 입에 넣어 주어서는 안 되네."
"아니예요. 정말 예쁜 아가씨예요. 천사 같은 아가씨예요."
"아니야. 그건 여우야. 명심해."
청년이 아가씨를 만나러 산으로 갔습니다. 아가씨가 또 나타나서 청년의 입에 구슬을 넣어 주었습니다. 청년이 구슬을 입에서 꺼내어 멀리 던져버리는 순간, 아가씨가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뒹굴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땅바닥에는 예쁜 아가씨가 아닌 삼백 년 된 여우가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그 아가씨의 구슬이 달콤하고 맛이 있지만 그 구슬이 결국 피를 다 빼앗아 가 죽게 되는 것처럼, 이것은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어느 곳에 가면 믿음이 자꾸 떨어지고 기도가 떨어지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떨어지고 충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 곳이 있습니다. 그런 곳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안젤무스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딱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새를 잡아서 실로 매어 돌에 묶어 놓았는데, 그 새가 날아가려다가 주저앉고 다시 날아가려다가 주저앉곤 했습니다 그것을 본 안젤무스가 말했습니다.
"저 새의 모습이 우리 영혼과 같구나. 저 새가 저 작은 돌에 묶여 있는 저 줄만 끊으면 창공을 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죄의 줄만 끊으면 창공을 날 텐데…. "
우리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서 푼 어치도 안 되는 그것, 그것만 자르면 믿음이 쑥쑥 자랄 텐데, 그것을 자르지 못해서 목사님의 아들이, 장로님의 아들이, 집사님이 평생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 성령의 가위에 의해 잘라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유신 장군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결단력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주 가는 색시 집이 있었는데, '내가 이렇게 색시를 좋아했다가는 인생을 망치겠구나. 다시는 이 곳에 오지 않아야겠다.'라고 결단하고 색시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김유신 장군이 말을 타고 졸다가 눈을 떠보니 말이 색시 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색시가 말을 보고 "서방님!"하며 뛰어나왔습니다.
색시를 보는 순간 김유신 장군의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칼을 뽑아 자신이 사랑하는 말의 목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 곳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김유신 장군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때 그가 그 색시 집에 들어갔으면 역사에 이름이 남는 김유신 장군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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