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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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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




 


▶T.V까지 궤도를 이탈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요정에 데려가 술판을 벌이는 가 하면 술에 취한 아들에게 여자까지 소개해 준다. 어머니는 딸에게 대학 입학 기념으로 고급 외제 승용차를 선물한다. 요즘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모 방송의 드라마 내용이다. 이 주간극을 보고 있으면 한국 사회가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독선과 허풍이나 떠는 한심한 세대이고, 욕설과 폭력을 일삼아도 청춘은 멋지다는 2分法(분법)부터가 유치하다. 현대판 콩쥐팥쥐 같은 줄거리는 뒷전이고 현란한 의상과 인테리어에 최고급 주택과 매장들로 화면을 채운다. 사실성도 없고 인물들의 성격도 정상이 아닌 건 물론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는 전형적인 소비성 드라마다. 심야의 토크쇼에서는 칵테일 바까지 차려 놓고 술을 권하고, 오락 프로에서 출연자들의 술판까지 보여주는게 요즘 TV의 단면이다. TV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TV 술 광고는 금지하고 있는데 한국 TV에선 가족 매체에까지 술을 끌어들이고 있다. TV가 젊은층을 의식해야 하고 프로그램이 연성화 되어가는 추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중파 방송에서 기존의 윤리나 양속을 헌신짝 취급하고 새로운 경향을 쫓으면 된다는 식의 요즈음의 ‘규정 파괴’는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정치가 흔들리고 경제가 어렵다고 TV까지 덩달아 궤도를 이탈하다 보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다. TV가 10대에게만 영합하면 할수록 기정 세대들은 TV를 경멸하고 TV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을 이제는 방송사들이 깨달아야 한다.


- 조선일보 97. 4. 1 -


▶한국인의 엄청난 술 소비


KBS 2TV ‘밤의 이야기 쇼’를 본 시청자들은 한국인들의 엄청난 술 소비량에 놀랐을 만하다. 제작진은 맥주 年(연)소비량이 34억 병, 소주가 21억 6천 병이라는 통계 수치를 댐放流(방류), 병 길이, 수영장 용량 등으로 환산하여 비유함으로써 ‘술 천국’에 경종을 울렸다.


맥주와 소주의 연간 소비량을 한데 모아 소양댐에 붓고 초당 최대인 5천 5 백t씩 방류하면 4분 36초가 된다는 것. 이 양은 국제 규격의 수영장을 6백 개를 채울 수 있음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또 맥주병의 길이를 늘어놓으면 시속 1백 20km의 새마을열차로 1백 2일 동안 달릴 수 있는 거리라고 말했다.


이날 스튜디오에는 4인 가족이 연간 소비하는 맥주 20박스를 쌓아 놓아 시청자를 질리게 했다. 이런 엄청난 술 소비는 방송 광고가 부채질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현재 국내 TV에서는 매출액 기준으로 약 1%를 주류 광고가 점하고 있는데, 밤 10시 이후 춤, 드라마까지 동원한 맥주 광고가 전장을 방불케 한다.


한국은 알코올 농도 17도 이하인 맥주 청주 등의 광고를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선진국에 비해 농도도 높고, 마시는 장면까지 노출시켜 청소년층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된다. 캐나다는 술 광고를 전면 금하고 있으며, 영국은 2.2도, 노르웨이는 3도, 벨기에는 10도 이하만 허용한다.


클린턴 美대통령이 방송의 술 광고 금지 대책을 지시하는 등 술과의 전쟁에 나선 것도 술 광고가 담배처럼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차제에 우리의 음주 문화와 방송의 술 광고 방법도 재고해야만 한다.


 


▶풍수지리설


풍수지리설에서 吉地(길지)란 뒤쪽에 主山(주산)이 병풍처럼 서있는 가운데 왼쪽산은 靑龍(청룡)처럼 쭉 뻗고 오른쪽 산은 白虎(백호)처럼 웅크리고 있으며 앞에서는 조그마한 산들이 府伏(부복)하고 있는 고을 가리킨다. 여기서 左靑龍(좌청룡)은 宗孫(종손), 右白虎(우백호)는 支孫(지손)의 운세를 상징한다.


서울의 좌청룡인 낙산은 북악산 主峰(주봉)으로부터 멀고 나지막하다. 그러나 우백호인 인왕산은 가까이서 위엄을 부리는 형상이다. 그래서 좌청룡의 운세를 보강하기 위해 동대문의 현판은 ‘興仁之門(흥인지문)’이라고 일부러 ‘之’자 하나를 더 넣어 龍처럼 길게 가로로 썼다.


남대문의 현판 ‘崇禮門(숭례문)’을 세로로 쓴 것은 불꽃 모양의 관악산이 내뻗는 火氣(화기)를 그대로 두면 화재가 잦다고 하여 이를 정면으로 막기 위한 처방이었다. 崇禮門앞에 南池(남지)를 팠던 것과 광화문 앞 양쪽에 해태상을 앉힌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興仁之門’은 효험은 없었다. 朝鮮朝(조선조)에서는 長子(장자)가 왕권을 이어 영화를 누린 적이 거의 없다. 지손과 외척이 권력을 찬탈하는 사건으로 점철되었다. 그러한 패턴은 현대에도 이어진 듯 정권을 2인자가 순조롭게 계승하는 일이 없이 언제나 파란이 일어난다.


광복 후 국보와 보물 등을 지정할 때 민족정기를 망각하고 ‘崇禮門’과 ‘興仁之門’을 속칭대로 각각 ‘남대문’과 ‘동대문’으로 했던 것을 본명으로 바로 잡았다. 그러나 제 이름 찾은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풍수지리설에 현혹되어서도 안된다. 옛것을 보존하고 가꾸는 정신이 중요하다.


 


▶4대문(四大門)의 명칭


동양의 합리주의 가운데 하나로 五行說(오행설)을 들 수 있다. 이를테면 東 西 南 北 中央-하는 五方(오방)은 仁 禮 義 智 信-하는 五常(오상)과 횡적으로 상통한다는 논리다. 이 태조가 한양에 천도하여 도성을 쌓고 동 서 남 북 4대문의 이름을 지을 때도 이 오행설을 적용했던 것이다.


동대문은 동방에 해당이 되어 仁자를 넣어서 興仁門(흥인문)이라는 이름을 짓고 남대문은 남방에 해당되는 禮자를 넣어서 崇禮門(숭례문)으로 지었으며 서쪽에 위치하는 서대문은 서방에 해당되는 義자를 넣어서 敦義門(돈의문)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다.


태조 5년 9월 태조 실록에 성문의 이름이 처음 나오는데 성문의 이름이 처음 나오는데 ‘正東(정동)을 흥인문 속칭 동대문이라고 하고 正南(정남)을 숭례문 속칭 남대문이라고 한다’고 명시돼 있다. 곧 정식 이름은 흥인문 숭례문이지만 속칭은 동대문 남대문이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그 후에도 남대문 동대문이라는 말이 수없이 정사에 나온다. 南大門地域(남대문지역)이니 東大門鍾(동대문종)이니 실록에 그 이름이 허다하다. 하물며 야사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조선조 초에 지어진 ‘용재총화’에 보면 도성내의 위치를 말할 때 남대문 밖이니 남대문 안이니 한 것을 보면 이미 그 때부터 남대문으로 불려져 왔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숭례문 현판 내력을 고증한 실학자 李圭景(이규경)도 ‘도성 남대문의 문 이름인 숭례문은 정도전이 지었고 현판 액자는 양녕대군이 썼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떼어 없앤 것을 후에 남문밖 연못 근처서 밤마다 빛이 나곤 하여 캐보니 이 현판이 나왔다’ 했다. 곧 근대까지 남대문이라 불러 왔음을 알 수 있다. 문화재위원회가 남대문과 동대문을 본래 이름인 숭례문과 흥인지문으로 개명하기로 했다던데 이유는 남대문 동대문이라는 말을 일본 제국주의자가 처음 사용한 때문으로 보도되었다. 민족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쓰기 시작한 일제의 반민족 왜색 명칭이라면 진작 개명했어야 했다.


하지만 남대문 동대문은 일제 때 씌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건조 직후부터 백성이 친숙하게 불러 내린 이름이요 그렇다 해서 흥인문 숭례문이라는 본명이 말살되거나 없어진 것도 아니다. 두 성문의 현판은 동대문 남대문 아닌 흥인지문 숭례문으로 되어 있어 본명은 엄연히 살아 있는 것이다.


교과서나 공식 기록해 속칭을 본명으로 소정 한다면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 성문의 두 호칭이기에 개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요 일제가 처음 쓴 명칭도 아니요 개명 이유에 납득이 가지 않고 따라서 역사 바로 세우기가 왜 되는지 그 더욱 알 수 없게 된다.


 


▶잊혀져 가는 놀이들


우리 민족 전통 놀이 문화는 여러 사람이 여흥을 즐기며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집단 놀이 문화였다. 급격한 사회 환경 변화와 외래 문화의 도입으로 우리의 놀이 문화가 설자리를 잃고 있다. 특히 왜색 문화를 넘어선 일본 문화는 우리 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어 청소년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노래방, 비디오방, 소주방, 전화방, 수면방 등은 요지경 속의 ‘방문화’를 탄생시켰다. ‘우리 나라 고스톱 인구가 1천만 명을 훨씬 넘어섰다’는 통계는 놀이 문화의 빈약성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놀 곳이 없고 제대로 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연히 ‘방’이나 ‘화투’를 즐기게 된다. 메말라가는 현대인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전통 놀이의 생활화는 건전한 놀이 문화 형성의 지름길이다. 갈곳 없는 한국인의 놀이 문화 현주소를 짚어 본다.


사회 환경 변화로 우리 사회의 놀이 문화도 급격하게 변화했다. 아파트 숲은 모든 놀이의 공간이었던 ‘땅’을 없애 버렸고 외래문화의 범람 속에 우리의 민속놀이는 점차 설자리를 잃어 갔다. 지난 반세기의 우리의 놀이 변천사를 알아본다.


산과 들을 쏘다니며 개구리 잡기, 산딸기 따먹기 등으로 시간가는 줄 몰랐던 시절, 곳곳의 빈터가 놀이터고 손에 잡히는 것이 놀이 도구였다. 자치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땅따먹기, 공기놀이, 비석치기, 제기차기, 고누, 숨바꼭질, 고무줄놀이, 줄넘기, 딱지치기, 말타기 등...


술래잡기의 일종인 집 뺏기 놀이나 주로 여자아이들이 땅에 금을 긋고 발로 돌을 차며 놀던 돌 차기,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라는 주문을 외우며 흙으로 집 쌓기 놀이를 하던 ‘두꺼비집놀이’ 숨바꼭질의 일종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등.


이 밖에도 윷놀이, 널뛰기, 그네뛰기, 닭쌈, 줄다리기 등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함께 즐긴 놀이였다. 오징어포, 말뚝박기, 시계불알, 다방구 등도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전자 오락과 최근 등장한 컴퓨터 게임 등에 밀려나 아련한 추억 거리로 남게 됐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어린이 놀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80%의 어린이가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를 모르거나 놀아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60년대 들어 만화방은 70년대 말까지 어린이에게 빼놓을 수 없는 놀이 공간이었다. 만화는 물론 텔레비젼을 통해 중계되는 프로레슬링과 권투, 축구 경기에 열광했다. 70년대까지는 농촌에서 재미로 참외 등을 몰래 훔쳐먹는 ‘서리’가 성행했고 들키더라도 동네마다 인정이 많아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요즘은 ‘도둑질’로 변했다. 80년대 이후 본격 등장한 방송국과 운동 경기장의 오빠 부대, 청소년들의 본드, 부탄가스 흡입 등은 80년대 입시 위주의 교육에 억눌려 건전한 놀이 문화를 갖지 못한 청소년들의 뒤틀린 욕구 분출로 지적되고 있다.


90년대 놀이의 특징은 노래방 문화를 꼽을 수 있다. 노래방에 찾아가는 일이 세대와 계층을 막론하고 일상사로 되어 버렸으며 ‘전국민 가수화’란 현상을 가져왔다.


레저 활동에서는 장기를 누르고 바둑 인구가 많이 늘었으며 당구, 골프, 수영, 볼링, 스키 등의 인기가 부쩍 높아졌다.


 


▶아모스 시대의 사회상


아모스가 북부 지방에 나타났을 때 나라 안은 교만(6:13,14)과 풍요와 사치로 가득 차 있었고 도시들은 우아하고 궁궐은 막강했다. 부자들은 비싼 상아로 장식한 여름 별장과 겨울 별장을 갖고 있었고(3:15), 비단 베개가 있는 화려한 침대 위에서(3:12) 음탕한 향연을 벌였다. 그들은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고 값진 향유를 몸에 발랐다(6:4-6;5:11). 아모스가 바산의 소들이라고 부른 여자들은 술에 취해 있었다(4:11). 동시에 나라 안에는 정의를 찾아 볼 수 없었다(3:10). 가난한 자들은 시달림을 당하고 착취를 당하고 그러다가 마침내 종으로 팔려 갔다(2:6-8;5:11). 그리고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엉터리없는 판결을 내렸다(5:12).


 


▶상아(象牙) 젓가락


중국 은(殷)나라의 주왕은 상아(象牙)로 젓가락을 썼는데, 이를 본 기자(箕子)라는 신하가 머지 않아 화를 입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젓가락 하나로 천하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도무지 미덥지 않은 얘기지만, 그러나 그 예언은 불행하게도 적중하여 은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춘추시대의 한비자(韓非子)는 기자가 젓가락을 보고 내일을 예견한 것은 다음 이유에 있다고 했다.  


상아 젓가락을 만들면


음식을 담는 그릇도 옥석(玉石)으로 만들어야 하고,


옥으로 만든 그릇과 상아의 젓가락을 사용하면


음식도 고급스러워야 하므로


코끼리의 고기, 표범의 창자 등 진미의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먹는 것이 이처럼 호사스러우면


입는 옷도


사는 집도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만족할 수 없다.


비단 옷을 걸치고


더 큰 궁궐에 살지 않으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


상아 젓가락 하나로 인해


천하는 온통 사치와 낭비의 바다가 되는 셈이다. 


한비자는 “성인(聖人)은 티끌을 보고 낡은 것을 알게 되고,


작은 시작을 보면 그 종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상아 젓가락의 고사는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공감케 하는 바가 있다.


국가나 기업은 경쟁력을 외치고 있지만, 사치품의 수입량은 나날이 늘어 무역 적자폭을 키우고 있다.


어떤 분은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몇 년 안에 국가 경제가 파멸할 것이라고 극언하기도 한다.


경기 침체 원인을 사치와 낭비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외채(外債)의 일부는 ‘사치와 낭비의 바다’에 있는 분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근면은 부자의 오른손이며, 절약은 그의 왼손이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지금이야말로 근검절약의 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닐는지?


 


▶난세의 증세


백화점이 요란하고 퇴폐적인 사치품으로 여성들을 유혹할 때, 젊은이들(남자)이 여자처럼 화장하고, 팔찌며 반지를 끼고 거리를 다닐 때, 호모가 나타나고, 외설 문화가 가정 안까지 침입할 때가 난세이다.


허영


가장 어려운 싸움 


도박욕


가능한 싸움 


육욕


대단히 어려운 싸움 


허영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


-톨스토이-


▶사치성 소비재 수입 50%증가


모피 의류, 화장품, 위스키, 승용차 등 20대 주요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이 20억 9천만 달러를 돌파, 95년 대비 48.8%나 증가했다.


이 같은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 증가율은 지난해 전체 수입 증가율 11.3%와 전체 소비재 수입 증가율 19.4%를 크게 웃돌았으며, 전체 소비재 수입액의 23.7%를 차지했다.


관세청이 밝힌 사치성 소비재 수입 상황을 품목별로 보면 구두는 3천 7백만 달러로 1백 31%의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으며, 모피 의류는 1억 1천만 달러로 1백 27%, 핸드백은 2백60만 달러로 32%늘어났다.


화장품은 3억 1천 7백만 달러로 53% 증가했으며,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향수가 2천 5백만 달러로 1백 3%나 급증했다.


양주는 2억 2천 2백만 달러 어치(53% 증가)가 수입됐으며, 이중 위스키 수입액이 1억 8천 6백만 달러(54% 증가)에 달해 대부분을 차지했다.


승용차는 4억 1천 3백만 달러 어치(68% 증가)수입했고, 장롱과 침대도 수입량이 각각 50%, 17%씩 늘어났다.


레저와 스포츠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골프와 스키 용품도 각각 1억 6백만 달러와 3천 4백만 달러 어치가 수입돼 각각 85%, 36% 씩의 증가율을 보였다.


외국산 식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바닷가재의 수입액은 1천 2백만 달러(1백 2억 원)로 1백 4%나 급증했다.


 


▶수도자가 미워해야 할 두 가지


빠스똘 교부가 말하였다.


“만약 수도자가 두 가지 것을 미워한다면,


그는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게 무엇인데요?”


라고 한 수사가 묻자, 그는 대답했다.


“안락과 허영심이야”


-사막교부들의 금언집-


 


▶옷과 음식은 어느 정도?


옷은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정도의 두께가 적당하고,


음식은 허기에 지치지 않을 정도의 양이면 적당하다.


적당한 정도를 넘으면 모두 자기 자신에게 해가 될 뿐이다.


-여씨춘추(맹춘기)-


 


▶허영과 부패의 결과


우리 나라에 대한 IMF 구제 금융 지원이 확정된 1997.12.3을 사실상 국가의 부도를 의미하는 ‘국치일’이라고 MBC의 한 앵커는 비탄했다. 그러면 그처럼 국가경제를 파탄으로까지 몰고 온 그 주범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치 호화성 수입품의 증가(96년 50%), 기업의 부실 경영(문어발식 경영과 자기 자본의 부족), 그리고 정치적 리더쉽의 부재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치와 허영, 정치의 무능이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정치 리더쉽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위기를 예견하는 통찰력, 그것을 뛰어넘을 국가 대 전략(national grand strategy)의 수립,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국민적 합의와 에너지를 동원할 수 있는 기획력, 설득력, 추진력이다. 그러나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지도자의 지적(知的)-문화적 자질, 사심(私心)과 패거리 이익에 얽매이지 않는 공공(公共)정신, 그리고 정직과 신의가 전제돼야 한다. 지도자가 24시간을 어떻게 하면 미운 사람 골탕먹이고, 내 권좌나 강화하고, 내 ‘식구’들 요직에 갖다 앉히고, 내 이름이 신문에 크게 나고, 샅바 싸움에서 어떻게 기발하게 기선을 제압하느냐 에만 온통 신경을 곤두세운다면 그것은 나라 망쳐 먹기 딱 좋은 상황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허영의 시장”이 나온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묘사한 것 같다.


황야 밖으로 나왔을 때 두 사람 앞에는 ‘허영’이라는 도시가 나타났다. 또 이 도시에는 ‘허영의 시장’이라는 이름의 시장이 서 있었다. 그 시장은 연중 서 있었다. ‘허영의 시장’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이유는 그 시장이 서 있는 거리가 헛된 것보다도 더 가볍기 때문이며, 거기서 팔리고 있거나 또는 거기로 모여드는 모든 것이 허영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그 시장이라는 곳은 온갖 종류의 허영이 팔리고 있는 고장이다. 이를테면 집이라든가 토지, 지위라든가 명예, 승서(陞敍-벼슬을 올림), 나라라든가 왕국, 색욕 이라든지 환락, 또는 여러 종류의 쾌락, 이를테면 창녀라든가 뚜쟁이, 아내와 남편이나 아이들이라든지, 주인, 머슴, 생명이나 피, 육체와 영혼, 금은에 진주나 보석 등등 별의별 것이 다 있다. 더불어 이 시장에는 언제 어느 때라도 요술이나 사기, 승부내기, 도박, 광대, 흉내쟁이, 악한이나 깡패, 망나니 등등 온갖 것이 눈에 띈다. 또한 여기서는 낭자한 꼴의 절도나 살인, 간통이나 위증(僞證)등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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