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의 스타킹
본문
두겹 세겹으로 여덟 군데나 기워 신었던 누더기 스타킹이 광고 도안이 돼나와 이목을 끌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나일론 스타킹인 것이다. 그것은 스타킹이 아니라 한 줄기 어둠을 꿰뚫은 정신적인 섬광이다. 기워 신은 스타킹뿐 만이 아니다. 영부인의 투피스도 꼭 한 벌이었다.40년간 오로지 그 한 벌만으로 입어내렸기에 하늘색이 회색이 되고 솔기와 소매끝이 닳아 속감이 드러나 보였다.갈색 구두는 뒤창을 여덟 번 갈았다던가. 손자 속옷들도 서너군데씩 기워 입혔다. 여사의 유품 중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이 여사가 두 손자에게 손수 깎아 주었던 몽당 연필들이다. 스무남은개의 이 연필들은 깍지를 끼우고도 새끼 손가락 보다 짧았다.우리 옛 서당들에서도 지절묵이라 하여 새끼 손가락 만큼 닳도록 먹을 쓰고 보다 짧아지면 묵투갑이라는 깍지를 끼워 쓰다 끝내는 쇄묵이라 하여 먹을 바수어 썼던 것이다. 부녀자의 삼베나 명베옷도 기운데 다시 깁는 재결 삼결이 부덕의 시작으로 쳤다.프란체스카 여사의 고국에 이같은 절검전통이 있었는지, 한국의 절검 전통을 영향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루스벨트 전 대통령 영부인인 안나 엘레노어가 언젠가 은행에 갔었을 때의 일이다.15분동안이나 허리를 굽혀 바닥을 살핀 끝에 탁자 밑에 엎드리고 들어가 무엇인가를 찾아 냈다. 그녀가 들고 나온 것은 다름아닌 1센트짜리 동전이었다. 전 영국 총리 대처 여사는 바쁜 국정에 틈을 내어 딸네 집에 가 의자 위에 올라 서서 얼룩이 진 천장 도배를 해주고 있다.재는 재라는 인식은 동서가 다르지 않으며 그 진리를 곁에서 일깨워준 부인들 이야기는 비일비재하다.초나라 악정에 저항하여 미친척하고 숨어 살던 접여의 문전에 수레 자국이 깊이 나있는 것을 접여의 아내가 보고물었다. 임금이 회남땅을 다스리라고 말과 돈을 실어보낸 수레 자국이라 하니 아내는 말했다.{임금이 시키는데 따르지 않음은 불충이요, 따르자니 불의이니 이곳을 떠나는 길밖에 없다} 하고 남편은 솥과 시루를, 아내는 베틀을 지고 이고 떠나갔는데 그 간 곳을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이 이야기는 덕종비인 소혜왕후가 지어 우리 나라 비빈의 교과서가 돼내린 [내훈]에 수록된 이야기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