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안에서 이루어진 선교의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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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1883년 4월에는 서울에 주한미국공사관이 개설되었다. 그 후 같은 해 9월에는 민영익을 전권대사로 하는 보빙사절단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하여 미국에 파견되었다. 이 사절단에는 서광범.홍영석.유길준 등 개화인사들이포함되어 있엇다. 이들은 미국에 도착하여 샌프란시스코로부터 워싱턴으로 가던 도중 기차 안에서 당시 볼티모어에서 목회하고 있던가우처 목사를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가우처는 해외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인물로 당시까지는 은둔의 나라였던 한국의 외교관들과의 대화를 통해 한국선교의가능성을 감지하였다. 그는 이 사실을 미감리회 해외선교부에 알렸고 3천 달러를 한국선교 기금으로 기부했으며, 미감리회 기관지<The Christian Advocate>를 통해 한국선교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일본에 나가 있는 선교사 매클레이에게통보해 그로 하여금직접 한국에 가서 선교 가능성을 타진해 보도록권하였다. 이것은 한국선교 착수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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