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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모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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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모래성)


 


▶‘크로닌’은 그의 ‘성채’라는 저서에서 한 인간이 쌓은 욕망의 성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젊은 의사가 대학을 졸업하고 뜻을 가지고 광산촌으로 들어가 탄광촌의 의사가 됩니다. 가난하고, 낙후하고, 소외된 광부들과 함께 살면서 의술을 베풉니다. 여기까지는 참신한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이 젊은 의사가 돈에 맛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명예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이 의식 있던 젊은 의사는 세속적인 물욕과 욕망의 성체를 쌓기 시작합니다. 돈벌이를 위해서 의술을 사용합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와 명성을 구축해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허황된 모래성은 이렇게 해서 자꾸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옛날로 돌아가 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주사로 고칠 수 있는 병을 수술을 해서 돈을 챙깁니다. 조금 도려내면 될 수술을 크게 째서 큰 수술을 해서 돈을 벌어 들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실수를 해서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그 순간 이 사람이 지금까지 쌓았던 성은 속수 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 사람은 부와 명성과 신뢰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이 사람이 비로소  인간의 욕망의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눈을 뜨고 보니까 지금까지 자기가 한 일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로 돌아갑니다.

  남편이 이같이 돌아온 것이 너무나 기뻤던 아내는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만들기 위해서 시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만 교통 사고로 죽습니다. 모든 것을 졸지에 잃어버린 이 의사는 생전 처음으로 교회를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처절한 눈물의 기도를 올립니다. 이것이 모래성을 쌓은 사람이 후에 가야 하는 길입니다.


 


  ▶어느 랍비가 유대인 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길에서 돈이 가득 들어있는 지갑을 주웠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첫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많고 생활을 가난한데 하나님이 특별히 나에게 주신 선물로 알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랍비가 ‘너는 도둑놈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도둑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나는 즉시 주인을 찾아 돌려주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랍비는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을 나도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나는 나의 약함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있습니다.’ 그때 랍비가 ‘네 말이 맞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디오니게스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어느 소경이 등을 들고 다녔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앞도 보지 못 하면서 왜 등불을 들고 다녀요?’ 소경이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보고 부딪치지 말라고 그러는 것이요.’

  빛은 비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이 세상이 밝도록 빛을 비추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동네들은 산 위에 있습니다. 지중해 바람을 맞아야 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850m 산 위에 세워진 동네입니다. 아직도 산밑에는 집이 한 채도 없습니다. 밑에는 기드론 골짜기, 힌놈의 골짜기, 중앙 계곡입니다. 

  빛은 눈에 뜨이게 둡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은 히말라야 산입니다. 8850 m입니다. 남산의 40배쯤 됩니다. 이 산에 오르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이 산에 도전한 사람은 1924년 6월 8일 영국의 두 사람이었습니다. 죠지 맬러리와 앤드류 어번입니다. 

  이들은 최초로 이 산을 오르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 하고 눈 속에 파묻혀 죽었습니다. 그 후 수많은 이들이 이 산에 오르기를 도전하였습니다. 그 후 1952년 에드먼드 힐러리가 도전하였다가 실패하고 내려왔습니다. 어느 날 힐러리는 에베레스트 산 사진을 붙여 놓고 강연하면서 외쳤습니다.

  ‘에베레스트야! 지난번에는 네가 날 이겼다. 그러나 다음에는 내가 너를 이길 것이다. 이유가 분명하다. 너는 성장을 멈추었다. 그러나 나는 성장하였다. 그리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는 드디어 다음 해 1953년 5월 29일 11시 30분 드디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습니다.


 


  ▶예수님이 빛되라고 하시는 말씀은 열이 있는 사람, 뜨거운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의미입니다. 죽은 사람의 특징은 몸이 찹니다. 섬 짓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36.5 도 적당한 체온을 유지입니다.

  빛은 뜨거움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새로운 무기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하늘에 인공위성으로 거대한 반사경을 띄웁니다. 그리고 그 것을 조정하여 빛을 지치면 그 빛이 닿는 곳은 모두 타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구름에 이 반사경을 비치면 구름이 모두 사라지기에 가뭄이 옵니다. 산에 이 반사경을 비치면 산이 타버립니다.

  빛은 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그 일을 해냅니다.


 


  ▶죤 헨리 뉴먼의 아버지는 그를 영국의 유명한 법률가로 기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사가 되어 오직 복음을 이 땅 구석구석에 전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간절한 권유를 뿌리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열심히 일하다가 병이 들어 버렸습니다. 

  그는 목회를 포기하고 요양차 시실리 섬으로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명의 빛으로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이런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 데 빛 되신 주/저 본향 집을 향해 가는 길 비추소서/내 가는 길 다 알지 못 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찬송가 379장)


 


  ▶여 운학 장로님이 쓴 <이슬비 장로의 전도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존 퍼킨즈’라는 흑인이 미국 동부 미시시피에 살고 있었습니다. 백인들이 어떻게 흑인들을 미워하면서 혹사시키며 인종을 차별하는 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오고 말았습니다. 다행스럽게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없었습니다. 인생에 처음으로 맛보는 행복감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진작 올 것을 그랬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빛이 첫 날부터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엄청난 사랑이었음이 뜨겁게 가슴속에 와 닿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사랑하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퍼킨즈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직장을 포기하였습니다. 살기 좋은 캘리포니아를 포기하고 흑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미시시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백인은 우리를 미워하여도 예수님은 언제나 사랑하고 계심을 뜨겁게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5년 간 하나님의 사랑인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가장 가난한 동네에 빛 되신 예수님이 스미기 시작하였습니다. 흑인들은 오직 빛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평안한 삶을 살시 시작하였습니다.


 


  ▶대조적인 두 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스’입니다. 그의 만년에 어느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장군님의 나이는 82세입니다. 이 때까지 오직 그리스도의 종으로 변함 없이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은 부스가 대답하였습니다. ‘비결은 없습니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오니 오늘도 마음대로 써주옵소서’

  이렇게 조용히 되풀이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바울 처럼 날마다 죽으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평생 예수님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온 영국이 떠들썩하였습니다. 장례 행렬은 이 끝에서 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그 유명한 ‘모짜르트’입니다. 모짜르트가 음악의 천재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8살에 왕 앞에서 연주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음악이든지 한 번만 들으면 악보로 그려낼 정도였습니다.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할 때 사람들은 환호하였습니다. 교황에게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35세에 요절하였습니다. 그 날은 진눈깨비가 내리는 나쁜 날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족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묘지에서 일하는 인부 한 명이 귀찮은 표정으로 시신을 혼자 묻었을 뿐입니다. 명성은 얻었으나 존경을 얻지 는 못 하였습니다. 도도하게 자기만을 위하여 거만하게 살아간 그를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종이라는 말은 주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주인이라고 할 때 헬라어로는 ‘큐리오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큐리오스’라는 말은 ‘왕초, 두목’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목이 무슨 말을 하든지 종은 꼼짝 못 해야 합니다. 그것이 종입니다. 나를 얽어매고 있는 주인이 있는 사람이 종입니다. 자유인은 결코 종이 아닙니다. 


 


  ▶종은 섬길 자가 있기에 종입니다. 부산에 살던 부잣집 이야기입니다. 그 집에서는 영리한 개가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바구니를 개입에 물려주고 고기 한 근 값을 넣어 줍니다. 그러면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사오곤 하였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살코기만 사오라고 요청하면 살로만 사왔습니다. 정확하게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서울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온 집에서 가까운 곳에도 정육점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부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고기를 사오라고 장바구니를 개입에 물려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 찾아보았습니다.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3일이 지났습니다. 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에는 개 도둑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개를 잡아갔을 것으로 여기고 개 찾기를 포기하였습니다.

  3일이 지난 후 저녁 주인 아주머니가 시장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에 개가 입에 바구니를 물고 절뚝거리며 힘없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개에게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반가워서 개를 끼어 안으며 말했습니다.

  ‘그 동안 어디 갔었니?’ 그 개는 주인을 본 후 그 자리에 푹 쓰러지더니 죽어 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부산까지 가서 고기를 사 가지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 개는 지쳐서 쓰러져 죽은 것입니다. 바구니 안에는 다 썩은 고기 한 근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것이 종의 자세입니다. 종은 주인이 있습니다. 개는 충성스러운 종노릇을 톡톡히 한 것입니다.

  종에게는 주인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묻습니다. 돈이 여러분의 주인은 아닙니까? 명예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을 따라 다니나요? 당신은 무엇의 종인가요?


 


  ▶어떤 선교사가 자기가 선교할 선교지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여자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어떤 남자가 노예 시장에서 종을 사서 데리고 가려는 중이었습니다. 그 종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주인님! 나 아들과 떨어져 살 수 없습니다. 나도 같이 사주세요. 아들과 같이 살게 하여 주세요. 주인님에게 충성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종으로 산 주인은 냉정하였습니다.

  ‘넌 필요 없어.’ 그러나 어머니는 생명을 걸고 애원하였습니다. 어머니도 울고, 아들도 울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선교사는 돈을 모두 모아 보니 두 종을 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모자는 선교사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선교사가 풀밭에서 비명을 지르고 넘어졌습니다. 독사가 와서 선교사 발 뒤꿈치를 물었던 것입니다. 

  기절하고 쓰러졌던 선교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습니다. 선교사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종이 뱀에 물린 자기 발에 입을 대고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뱀에 물린 자리를 입으로 계속 빨아 독을 제거시키고 죽은 것입니다.

  자기를 살려준 주인을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한 종의 모습니다. 종에게는 주인이 있어야 종입니다. 내게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종이 바로 우리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맹종만 있을 뿐입니다. 순종과 복종과 맹종이 있습니다. 순종은 기쁨으로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복종은 하기 싫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맹종은 무조건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조금 안 좋은 말이니 용서하고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남자들이 여자들 옷 벗기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순종적인 방법과 복종적인 방법과 맹종 적인 방법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는 기뻐하며 옷을 벗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의사에게 병을 치료하러 갔는데 의사가 말합니다. ‘옷을 벗어야 치료하겠네요.’ 그러면 남의 남자 앞이지만 병 치료를 위하여 억지로 옷을 벗습니다.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하는 것은 복종입니다. 그러나 강도가 총을 들이 대로 외칩니다.

  ‘옷을 안 벗으면 죽인다.’ 그러면 옷을 벗습니다. 맹종입니다. 무조건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맹종하는 것입니다.


 


  ▶무디 설교 집에 이런 감명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3 층에서 설교하던 무디는 갑자기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지금 당장 3층에서 뛰어 내리라고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 내릴 것입니다.’ 이것이 맹종이요, 이것이 종입니다.


 


  ▶한 젊은이가 지혜롭다고 소문난 왕을 찾아 와서는 물었습니다.

  ‘왕이시여!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왕은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건방진 놈! 감히 내게 와서 그런 질문을 하냐? 너는 사형이다.’

  젊은이는 겁에 질려서 왕에게 빌었습니다. ‘왕이시여! 저의 무례함을 한번만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 때 왕이 말했습니다. ‘너를 살려주는 데 한가지 조건이 있다.’ 그리고 컵에 물을 가득 따라 부었습니다. 한 방울도 더 들어 갈 수 없도록 부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잔을 들고 마을 한 바퀴를 돌아오너라. 네 뒤에는 내 신하가 칼을 들고 따라갈 것입니다. 만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너는 그 자리에서 목이 사라질 것이다.’

  젊은이는 벌벌 떨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찰랑이는 컵을 쳐들고 마을을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젊은이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동네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돌아 왔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그래 동네 우물가에서 여자들 몇 명이 빨래를 하더냐?’ 

  ‘모릅니다.’ ‘술집에는 술 마시는 이들이 얼마나 되더냐?’ ‘모릅니다.’ ‘나무 그늘에서는 노인들이 무엇을 하더냐?’ ‘모릅니다.’ ‘이 놈아! 안 다녀왔구나!’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왜 모르느냐?’ 

  ‘왕이시여! 내 생명은 물 한 방울에 달려 있었기에 물 컵만 보았나이다.’ 이런 말을 듣고 왕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비결이다. 네가 오직 물 컵만 보고 동네를 돈 것처럼 오직 진리만 보거라. 다른 것은 일체 보지 말거라. 이것이 세상 유혹을 이기는 비결이다.’

  우리는 이 것 저 것 볼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주인만 바라보고 맹종하면 종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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