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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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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탈무드)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밥상에 닭고기가 올라 왔습니다. 잡수려던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얘야! 이 닭고기 어디에서 났니?>


  아들이 무뚝뚝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것은 묻지 마시고 잡수시기만 하세요.>


  이런 때 탈무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아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




  ▶어떤 아이가 어머니에게 자전거를 사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자전거를 사 줄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고는 그만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이 아이는 자전거를 사 주지 않는 일로 인해서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를 모두 부정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간혹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우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잘못입니다.




  ▶옛말에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어떤 고을에 지혜로운 영감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 아끼며 기르던 말 한 마리가 도망을 갔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와서 위로를 했습니다. 이 영감님이 위로하는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복이 될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복일지, 화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일어난 일을 가지고 너무 쉽게 속단해 버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영감님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도망갔던 말이 다른 말 한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와서 축하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 영감님이 또 지혜 있는 말을 했습니다.


  "그게 오히려 화가 될지도 모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외아들이 새 말을 타가가 그만 떨어져서 자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와서 크게 상심하면서 위로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 영감님이 또 말을 합니다. "이것이 전화위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동네의 청년들이 모두 징발되어서 전쟁에 나갔다가 죽었는데, 이아들은 다리가 부러져서 마을에 남아 죽음을 모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이 말의 뜻은 일이 좀 잘 풀렸다고 우쭐댈 것 없고, 일이 좀 안 풀렸다고 너무 서러워하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미국에서 어떤 분이 자신은 무신론자임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이 지성인의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아주 경건한 청교도 한 분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를 초청해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초대를 받은 이 경건한 청교도는 식사 전에 정중하게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때 이 무신론자가 말합니다. '그것은 18세기 사람들이나 하는 낡은 유물 아닙니까?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이 청교도가 혼자서 기도하고 나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도 당신 같은 식구가 하나 있습니다.' 이 경우 없는 집 주인은 그 말에 반색을 하면서 '누군가요?' 대학에 다니는 당신 아들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집에서 지성인은 대학에 다니는 아들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때 이 청교도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집 돼지입니다.'


  음식 한 그릇을 앞에 놓고서도 감사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입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생활은 여타의 감사 생활로 어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감사의 원리입니다.




  ▶중국의 학자 순자는 천지자 생지본이라고 했습니다. 맑은 땅과 맑은 자연이 삶의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땅을 잘 가꾸고 잘 다스려야 풍성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루소 같은 이는 학예 론을 주장했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땅, 자연 그대로의 세상을 가꾸어야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잘 가꾸고 잘 관리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좋은 열매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번은 사막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가도가도 끝이 없는 모래벌판만 계속되었습니다. 또 태양 볕은 사정없이 내려 쬐고 있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물도 이미 오래 전에 바닥이 났습니다. 두 사람은 지칠 때로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아들은 체념한 듯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힘들게 걸어가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차라리 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달래었습니다. "얘야,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걸어가면 틀림없이 시원한 오아시스가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다시금 앞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걸어갔습니다. 한 동안 걸어가던 그들의 눈앞에 몇 개의 큰 무덤들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아들은 절망한 듯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보세요. 이 사람들도 결국은 죽어서 여기에 묻히고 말았지 않습니까? 우린들 별 수 있겠습니까?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얘야, 이제는 우리가 정말 안심해도 되겠구나! 여기에 무덤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산 사람들이 이들을 여기에 묻지 않았겠느냐? 그러니 틀림없이 이 근처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을 것이다."


  과연 얼마가지 않아서 큰 오아시스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동안 갈했던 목을 시원하게 적실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일화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점이 무엇입니까? 소망의 중요성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소망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석유 왕이었던 쟌 록펠러(John Rockefeller, 1839∼1937)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세 가지의 기적을 일으킨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첫 번째 그는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일당 4센트의 적은 돈을 받고 땡볕에서 하루 종일 감자 캐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자수성가해서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 돈을 남을 위해 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일평생 동안 자선사업에 희사한 돈이 7억 5000만 달러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해도 1조에 가까운 돈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에는 얼마나 큰 금액이었겠습니까? 또 그의 후손들과 자식들이 함께 자선사업에 쾌척한 돈의 액수를 모두 합치면 25억 달러가 넘습니다. 아무튼 그는 세상에서 남을 위해서 가장 많은 돈을 쓴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그 기록을 깬 사람이 없습니다.


  세 번째 그는 한 때 건강이 아주 악화되었습니다. 의사가 얼마 살지 못한다고 진단했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루에 비스킷 한 조각과 우유 한 잔이 다였습니다. 그런 그가 9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살면서도 그의 치아는 하나도 썩지 않았습니다.


  록펠러는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남을 위해서 가장 많은 돈을 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절대로 작은 돈이라고 함부로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단골로 가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자기를 위해서 봉사하는 종업원에게 언제나 15센트의 팁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식사를 하고 나서 팁을 주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더니 5센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업원에게 5센트만 팁을 주었습니다. 평소에도 작은 팁에 불만이 많았던 종업원은 결국 록펠러에게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록펠러씨, 내가 만일 당신 같은 부자라면 그까짓 10센트 때문에 쩨쩨하게 굴지 않겠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록펠러는 종업원을 점잖게 타일렀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업원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네. 부자인 나도 10센트를 아끼는데 어떻게 자네가 10센트를 하찮게 여기는가?"




  ▶미국의 어느 주일학교 교사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교회를 가는데 골목길에서 코흘리개 아이들 네 명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잘 설득해서 교회로 전도했습니다. 사랑을 다해서 매 주일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에게 심겨진 믿음은 겨자씨 한 알만큼 미미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삼십 수년이 흘렀습니다. 그는 생일을 맞아 네 통의 축하 전보를 받았습니다. 삼십 수년 전의 코흘리개 어린 아이들이 모두 장성해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선생님의 생일을 기억하면서 축하 전보를 보내온 것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선교사가 되어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미국 연방 은행의 총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바로 백악관의 주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의 31대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클라크 후버(Herbert Clark Hoover, 1874∼1964) 대통령으로 우리에게 후버 땜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 가운데 어거스터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바로 어거스터스였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 한 신비한 노인이 밤중에 산모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내가 꼭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어거스터스의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살게 해 주십시오."


  그의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는 자라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선생님의 사랑도 받고, 친구의 사랑도 받고, 이웃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사랑만 받고 베풀지 못하니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거스터스는 노인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외롭고 비참한 삶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신비한 노인이 또 나타났습니다. 노인은 어거스터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삶에 만족합니까?" 어거스터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도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겠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시골에 어떤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밭에 수박을 잔뜩 심었습니다. 땀 흘리면서 열심히 정성을 다해서 잘 가꾸었습니다. 그 덕분에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고민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아무리 수박밭을 잘 지키려고 해도 언제 도적이 들어오는지 아침이 되면 꼭 몇 통씩 밤사이에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적을 물리칠 수 있을까?"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멋진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주사기에 농약을 넣어서 수박 한 통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는 경고문을 붙였습니다.


  "이 수박밭의 수박 한 통에는 농약이 들어 있음. 먹다가 죽어도 책임 안질 것임. 주인백."


  그로부터 한 주일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주인이 써놓은 경고문 옆에 또 다른 경고문이 붙었습니다. 도적이 써놓은 것이었습니다. 내용인즉 이러합니다.


  "이 수박밭에 있는 수박들 가운데 두 통에 농약이 들었음. 그 가운데 한 통은 주인이 알고, 또 한 통은 도적이 앎. 도적 백."


  악으로는 악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악을 이기는 방법은 선입니다. 예컨대 내가 고함을 지르면 다른 사람도 고함을 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를 낮추어야 됩니다. 그것이 이기는 방법입니다.




  ▶아동문학가로 잘 알려진 소파 방정환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밤 이 분 댁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잠자던 식구들을 모두 깨웠습니다. 강도는 칼을 들이대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방정환 선생은 있는 돈을 찾아 강도에게 주었습니다. 강도는 돈을 챙겨 들더니 주머니에 집어넣고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소파 선생이 점잖게 한 마디 나무랐습니다.


  "이 사람아, 돈을 받았으면 고맙다는 말 한 마디라도 하고 가야지, 그냥 가면 어떻게 하나?"


  강도는 별 싱거운 사람을 다 보겠다는 듯이 ‘고맙네.’라고 한 마디 던지고서는 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강도가 얼마 안가서 순찰을 도는 경찰에게 붙들렸습니다. 경찰이 강도의 몸을 수색해 보니까 주머니에서 칼과 꽤 많은 돈이 나왔습니다. 경찰은 틀림없이 그가 어디에선가 강도짓을 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경찰은 강도를 추궁한 끝에 그를 끌고서 소파 선생의 집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방정환 선생이 경찰과 함께 온 그를 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강도가 아닙니다. 사정이 딱한 것 같아서 내가 돈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내가 준 돈을 받고서 고맙다는 말까지 하고 갔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강도입니까?"


  경찰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강도를 풀어주고 갔습니다. 그제야 강도는 무릎을 꿇고서 소파 선생 앞에 백배 사죄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고 바르게 살겠습니다."


  오갈 데 없는 강도를 소파 선생은 한 동안 자신의 집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선으로 감동시켜야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밀림의 성자였던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훌륭한 오르간 연주자였습니다. 철학 박사였습니다. 신학 박사였습니다. 의학 박사였습니다. 박사 학위를 세 개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말씀 가운데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았습니다.


  "이 시대의 부자는 누구인가? 이 시대의 거지 나사로는 누구인가?"


  부자는 바로 자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거지 나사로는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에게 깨달음이 왔습니다.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불쌍한 흑인들이다. 만일 내가 그들을 도와주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예수님의 말씀 속에 나오는 부자처럼 이것은 나 스스로를 죽이는 길이요, 내 가족을 죽이는 길이라."


  그는 즉시 결단했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프리카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밀림 속에 있는 불쌍한 흑인들을 돌보면서 자기의 여생을 다 바쳤습니다. 하루는 흑인 여인 한 사람을 치료하고 있는데 그 여인이 궁금하다는 듯 슈바이처 박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박사 학위를 세 개나 가지고 있는 위대한 학자이자 천재적인 음악가이십니다. 그런 선생님이 어떻게 이 오지에 오셔서 고생하며 사십니까?"


  그 때 슈바이처 박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제게는 말로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재주가 없답니다.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글로서, 말로서 표현하려고 해 보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별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의 삶으로 그 사랑을 내게 보여주신 것처럼 나도 그 본을 따라서 내 행동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뿐입니다. 그런데 비록 작은 사랑이지만 이 사랑을 실천하는 동안에 하나님은 오히려 내게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나에게 이와 같이 건강을 주셨고, 마음의 행복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누룩으로서 가루 서 말인 이 세상 속으로 자신을 던지신 것처럼, 슈바이처 박사도 한 줌의 누룩이 되어서 아프리카 밀림 속으로 자신을 던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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