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화(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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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부인 이름은 크산티페입니다. 이 여인은 철학자인 남편에 비해서 상당히 고상하지 못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 여인은 수다스러웠다고 합니다. 수다를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게 그 수다를 어떻게 다 들어주느냐고 물으니까 대답하기를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도 귀에 익으면 들을 만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또 이 여인은 마음도 고약했다고 합니다. 수다를 떨 때 남편이 대꾸를 하지 않으면 나가서 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와서 머리에 퍼부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참느냐고 물으면 말하기를 "천둥친 다음에는 비가 오는 법"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부인을 악처라고 불렀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런 악처 덕분에 소크라테스가 철학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강릉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의 학생 하나가 전교에서 항상 1등만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학생은 확실하게 서울의 일류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으로 자타가 공인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그 학생이 언제나 1등만을 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도 아들이 1등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생각하였고 학생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학생은 한동안 공부하는 기계 노릇을 충실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입시 한 달 전에 이 학생이 편지 한 장을 써 놓고 잠적해 버렸습니다. 편지에 '나는 누구입니까? 나도 2등을 할 수 있고 3등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써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도 인간인데 왜 나를 공부하는 도구로만 알고 있습니까?"라는 항변입니다. 그 학생은 참 인간다운 학생입니다. 대다수 학생들은 그런 생각도 못하고 그냥 공부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밖에서 흰 눈이 내리면 환호하고 기뻐하고 뛰어보고 싶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아이들도 그렇지만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밖에 비가 오면 여느 때와는 감정과 느낌이 달라지고 뭔가 분위기에 젖어 보고 싶어져야 합니다. 누가 슬픈 일을 당하게 되면 울고 싶고 눈물을 흘리며 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감각이 없습니다. 눈물이 없습니다. 가슴이 따뜻하지 않습니다. 우애와 우정과 인정은 자꾸만 메말라 가고 있고,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으로만 길들여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장수촌을 찾아가서 그곳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왜 그렇게 오래 장수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장수한 사람 50명의 생활 습관을 면밀히 살펴보았더니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중 한 사람은 예의가 아주 바르더랍니다. 서로 인사를 할 때는 노인들이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더랍니다. 그러니까 인사하려고 엎드릴 때 몸에 있는 모든 힘은 복부로 모이는데 그것이 몸의 균형을 잘 이루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장수하는 비결이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뻣뻣이 서 있는 때는 배에서 힘이 다 빠지고 힘을 잃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많이 엎드리는 생활을 하십시오.
또 물건을 건넬 때는 한 손이 아니고 두 손으로 건네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물건을 상대방에게 줄 때 한 손으로 주면 몸의 균형이 깨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손으로 주면 몸에 균형이 생기고 배에 힘이 모아져서 사람이 건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손을 드어 보십시오. 배에 힘이 모아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 손을 함께 들으면 배에 힘이 모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말을 하는데 친구 사이에도 서로 존댓말을 하더랍니다. 사람이 반말을 사용하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속에서 객기가 발동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나도 모르는 나쁜 마음이 서려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서로가 존댓말을 사용하게 되면 스스로가 기쁨을 느끼게 되고 마음이 차분하게 되고 만족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몇 가지 이유로 장수촌의 사람들이 장수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IQ가 높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라, 거기에 EQ라고 하는 인성, 인정, 감정, 따뜻한 마음이 플러스되어야 비로소 사람답게 된다고 합니다.
▶혹시 TV에서 ‘진품명품’이라는 프로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프로에 보면 출연자는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진귀한 물건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나름대로 생각한 가격을 적어 냅니다. 그러면 전문가들은 그것을 자세하게 감정해서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가름합니다. 그리고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매긴 가격을 알려줍니다.
재미있는 것은 출연자들의 표정입니다. 희비가 완전히 엇갈립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을 한 점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는 여태까지 그 그림이 진짜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귀중하게 보관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가격도 당당하게 오천만 원이라고 적어 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자세하게 감정을 하고 난 뒤에 이러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그림은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가짜입니다. 값도 기껏해야 이십만 원에 지나지 않는 모조품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면 그 그림의 주인은 완전히 실망한 표정을 짓습니다. 정 반대의 결과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한 폭의 그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오래된 것 같긴 하지만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감정을 받고 싶어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가격을 매길 때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 삼십만 원 정도라고 적어 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감정을 하고 난 뒤에 뜻밖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진짜입니다. 보기 드문 보물입니다. 부르는 것이 값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적어도 일억은 넘어갈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너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예컨대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만일 두 사람만 천국에 간다면, 한 사람은 서기관일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바리새인일 것이다."
그만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잘 믿는다고 소문이 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평가하셨습니까? 마5:20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분명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믿음으로는 천국의 백성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불꽃같은 눈초리로 살피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의 믿음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눅18장에 나오는 세리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가슴을 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 당시 세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세리가 오히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세리의 믿음이 진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돈의 초청을 받고 오래간만에 출가한 딸네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딸은 모처럼 친정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래서 온갖 솜씨로 진수성찬을 마련해서 아버지에게 대접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녁을 마친 후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묻습니다.
"여보, 모처럼 딸네 집에 갔는데 대접을 잘 받고 돌아오셨겠지요?" 그런데 남편에게서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다시 묻습니다.
"아니, 딸이 모처럼 친정아버지를 뵈었는데도 대접을 시원치 못하게 했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그는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식을 잔뜩 차려놓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달걀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두부도 없던걸. 이가 시원치 않은데 그 질긴 음식들을 도대체 날더러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음식을 잔뜩 차려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드려야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음식을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 못하는 것은 고문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면서 잘 믿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지 해야 하는 법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40일 금식기도를 시키시면서 613가지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중에 248가지는 해야 할 율법입니다. 365가지는 하지 말아야 할 율법입니다.
▶사람마다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의 지계 표를 옮기지 말아야 합니다. 사명이 무엇입니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사명입니다.
1. 나는 이것 때문에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
2. 나는 이것 때문에 산다.
3. 나는 이것 때문에 죽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사명입니다.
▶남북전쟁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미국의 어느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남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던 한 병사가 포로가 되어 북군의 포로수용소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포로가 된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떨어지는 법입니다. 그는 포로가 된 사람이나 포로를 억누르고 있는 상대방을 위하여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깨달았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계속 전도만 하였습니다. 거칠고 불안한 그 곳에서 전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전도하였습니다. 한 편 북군에서는 그의 석방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습니다. 세 번이나 석방의 기회가 있었지만 3번 다 거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기를 향한 뜻은 이곳을 향한 영혼구원의 선교사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제로 끌어내려고 하자 그는 오히려 석방을 시켜 말아 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을 베풀어도 그 곳은 무감각이었습니다. 죽음의 그늘이 있는 불안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돌보아 주고 있던 한 병자 포로가 어느 날 말했습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소. 나는 하나님도 믿지 않소. 그리고 믿고 싶은 마음도 없소. 나의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렸으나 회복이 되지 않으니 나는 죽을 것이요. 이제 그만 수고하고 나가 주십시오. 그 동안의 사랑에 감사드리오.>
그러나 그는 주님의 사랑으로 온정을 계속하였습니다. 그가 죽어가는 순간에 그는 손목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도 이제 믿겠소. 당신을 내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가하오.> 그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그 병사는 전쟁이 끝나기까지 그 포로수용소에 남아서 포로들을 돌보며 전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사명입니다.
▶필리핀 대통령 막사이사이 아버지는 땜쟁이었습니다. 아들이 대통령이 되자 늙은 아버지를 궁궐로 모시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끝내 그는 평생 땜장이로 일하다가 죽었습니다. 이것이 사명입니다. 사명의 지계 표를 옮기면 안 됩니다.
▶미국 강철 왕 카네기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카네기가 공장을 순찰하고 있는 데 땜장이 한 명이 너무나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성실에 감동을 받은 카네기가 말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사장이 되면 우리 회사가 잘 될 것 같소. 이 공장 사장직을 맡으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사장은 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텐데 이 땜질은 나 외에는 할 줄 아는 이가 없습니다. 나는 그대로 이 일을 하겠습니다.>
이 말에 감동을 받은 카네기는 그에게 대통령 월급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사명입니다.
▶미국에서 제일 부자는 록펠러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부잣집 손자가 뉴욕 흑인 헬렘 가에서 구멍가게를 열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이런 곳에서 이런 직업을 갖습니까?> 그는 간단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자기 사명의 지계 표를 옮기면 안 됩니다.
▶이조 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왕이 민정시찰을 나갔습니다. 아무도 왕을 왕으로 알아보는 이가 없었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똑똑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너 면장 시켜 주면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지요.>
<너 군수 시켜 주면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지요.>
<너 시장 시켜 주면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지요.>
<너 도지사 시켜 주면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지요.>
<그러면 욍시켜 주면 할 수 있겠나?>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왕의 뺨을 세차게 후려치면서 말했습니다. <나보고 왕에 반역하라고요?>
왕은 뺨이 너무나 아팠지만 그 청년의 말에 너무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후에 그 청년을 궁중으로 불러서 큰 벼슬을 주었습니다. 지계 표를 넘지 말라는 말은 한계를 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목사는 목사처럼 살지 말고 목사로서 살아야 합니다. 장로님들은 장로처럼 살지 말고 장로로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처럼 살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사사기 9장에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숲속에서 나무들이 나무의 왕을 뽑기로 하였습니다. 감람나무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감람나무가 말했습니다.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나무들은 두 번째로 무화과나무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무화과나무가 말했습니다.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그리고 또 거절하자 나무들은 이번에는 포도나무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포도나무도 거절하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이번에는 나무들이 가시나무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가시나무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자기 한계를 아는 나무였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자기 한계를 모르는 나무였습니다. 가시나무는 모든 나무를 망치게 하였습니다. 자기 한계를 알고 살라는 말을 하나님은 지계 표를 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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