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거짓말들
본문
콜롬버스1492년 8월 3일 새벽,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는 세 척의 배를 이끌고 에스파냐의 팔로스 항구를 출발했다. 목적지는 인도, 후추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콜롬버스는 인도가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쪽으로 7백 리그(1리그는 3마일), 즉 3,200킬로미터쯤 가면 도착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심 불안했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선원들이 동요 하거나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심 끝에 그는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선장인 그가 매일 쓰게 되어 있는 항해 일지를 두 권 만들어 하나는 그 날의 항해거리, 배의 위치 등을 정확히 기록하되 몰래 감춰두고, 다른 하나는 실제보다 훨 씬 짧게 기록해서 선원들에게 공개하기로. 이를테면 이중 장부를 만든 셈이다. 덕분에 일행은 무사히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고 콜롬버스 말 고는 아무도 실제 항해 거리를 알지 못했다. 그 거리는 약 7천킬로, 콜 롬버스가 예상한 거리의2.5배였다.나폴레옹전쟁 영웅 나폴레옹은 전황보고서, 각종 공문서를 수없이 변조한 것 으로 유명하다.프랑스 혁명 직후, 유럽 각국은 혁명의 불꽃이 자기 나 라로 튈까봐 전전긍긍하며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공격했다. 이 때 프 랑스 국민에게 연전 연승의 승전보를 안겨주어 열광케 한 장본인이 바로 나폴레옹인데, 사실 그가 거둔 승리의 상당수는 과장되거나 변조 된 것이었다. 패배가 축소, 은폐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나폴레옹의 비서로 그의 전기를 쓴 부리엔느의 증언에 따르면, 편지 나 보고서들이 원래대로 활자화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한다. 보고서 를 위조할 때마다 아군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혹은 적군을 유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붙였지만 실은 국민의 지지를 얻어 자신의 입지를 유리하게 만들려는 야심을 나폴레옹은 갖고 있었다.그 결과, 왕정을 무너뜨리는 혁명을 치렀던 프랑스 국민들이 나폴레옹을 도로 황제의 자리에 앉히는 아이러니를 낳았다.주(周)의 유왕중국 주나라 12대 유왕에게 포사라는 아름다운 후궁이 있었다.포사 는 절세미인이었지만 도무지 웃질 않았다. 유왕은 그를 웃게 하려고 별별 수단을 다 써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사방에 제후국을 거느린 주나라는 통신수단으로 봉화를 이용했다. 봉화를 올리면 제후들이 군 사들을 이끌고 급히 왕궁으로 달려오게 돼 있는데, 어느 날 실수로 그 만 봉화가 잘못 올라갔다.허겁지겁 달려온 제후들, 잘못 올라간 봉화라는 걸 알자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우스웠던지 포사가 살짝 웃었다. 유왕은 뛸 듯이 기뻤다. 얼마 후 포사의 웃는 얼굴이 다시 보고 싶어진 유왕은 일부러 봉화를 올리게 했다. 숨차게 달려온 제후들이 투덜거리며 돌아갔다.같은 거짓말이 몇 번 되풀이되었다. 기원 전 771년, 외적이 쳐들어왔다. 유왕은 급히 봉화를 올리게 했지만 이번엔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결국 유왕은 죽고, 그 아들 평왕이 수도를 호경에서 낙양으로 옮겨 나라의 명맥을 이어갔지만, 주 왕실은 이름만 남고 제후들간의 군웅할거 시대가 시작되었다.이것이 바로 춘추전국시대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