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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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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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이 바람났다는 세상 소문이야 어떻든 내 서방은 끝까지 아니라고 우겨주기를기대하는 속없는 여편네처럼, 우리는 그래도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진노하면서까지)절대로 아니라고 우겨대니까 그말을 믿고 싶어했었다. 왜냐 하면 최고국정책임자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기껏 돈이나 긁어 모으는수준의 인물에 의해서 이 나라가 좌지우지 당해왔다는 사실은 우리들 자신과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뭉개버리는 일이니까.그런데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어떤가. 믿고 싶지 않았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우리는 지금 너무나 허탈하고 또 무지 화가 난다.우선 용어부터 정확히 하자. 전에도 한번 칼럼에서 말했지만 보통사람으로 물러난 전직 대통령의 몇백억 혹은 몇천억원은 정치자금이나 비자금 통치자금의 일부가 아니라 부정축재로 챙긴 돈이거나 그냥 해먹은 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도의 통치행위를 위해서 필요했던 통치자금은 일반법에 따른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식의 괴상한 이야기가 절대로 또다시 나와서는 안된다.노태우전대통령의 직계 부하에 의해서 '3백억원은 통치자금으로 쓰다가 남은돈'인게 처음으로 확인된 지난 일요일, 야당들은 노씨의 사과 또는 소환조사만을 촉구했을 뿐이다. 왜 야당들마저 즉각 노씨의 구속 수사를 요구하지 않는건지 나는 답답했다. 혹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고려했던 거라면 나는 생각이다르다.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민과 국가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예우조차 망각한 이에게 무슨놈의 예를 차린단 말인가(야당이 구속 수사를 말하기 시작한 건 월요일부터였다).또 수사결과 그것이 뇌물수수든 공갈이든 정치자금법 위반이든 하여간 실정법에분명하게 어긋날 경우에는 법에 따른 처벌이 엄격하게 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경우 재판에서 형이 확정된 이후에 현직 대통령에 의한 특별사면같은 것도 포함될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가령 백담사같은 곳에 가서 얼마동안 지내는 것으로 죄값을 어영부영 때우게 해서는 안된다. 그건 지구상의 어떤 법치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해괴한 짓이었으니까.정치자금은 무조건 덮어두는 관행이 있어왔다고도 한다. 이런 식의 말도 안되는관행이 오직 관행이라는 이유로 계속 존중된다면 정치는 영원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낙후된 분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하필이면 가장후진 분야의 사람들에게 이끌려가는 불행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정치자금을 건드리면 내로라 하는 정치인들이 다치고 재벌들이 다치고 그러면 결국 나라가 엉망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은 법 무서운줄 모르고 불법과 비리를 밥먹듯이 저지르는 몇몇 정 재계 인사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유지되고 있다는 억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부정한 인사들이 다친다고 해서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그들 당사자 자신의 오만한 발상이거나 국민들을 협박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우리 정치 사회의 도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는 까닭은, 그래야만 그야말로 성실하고 정직한 보통사람들이 배반당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부디 이번 노씨가 해먹은 돈관련 파문이 정파간의 득실 계산이나 다가오는 총선에 미칠 영향 등에 의해서 조정수습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현 정권은 이제까지 여러가지를 역사에 맡겨왔다. 이번만은 진짜 역사적인 관점에서 설령 현정권 역시부분적으로 상처나는 한이 있더라도 당당하게 역사를 만들어가는 역할에서 도망치지 말기를 기대한다.발 행 일: 9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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