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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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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성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광장에 개 조각상이 있다고 합니다. '보비'라고 하는 작은 개가 떠돌아다닙니다. 떠돌아다니니까 얼마나 굶주렸겠습니까? 그래서 아주 말랐습니다. '조크'라고 하는 한 노인이 보비를 발견하고 식당에서 저녁 한 끼를 잘 사 먹였습니다. 

  얼마 후에 노인이 죽었습니다. 문상객들이 노인의 시신을 운구할 때 그 개가 졸졸 그 뒤를 따라다닙니다. 장례를 치렀습니다. 매장하는 인부들이 개를 쫓아내도 가지를 않습니다. 장례식이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보비는 떠나지 아니하고 밤낮으로 노인의 무덤을 지키고 있습니다. 보비가 묘지를 떠날 때는 매일 오후 먹을 것을 찾아서 나설 때뿐이었습니다. 

  보비의 행동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이 보비를 위해서 작은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14년을 하루같이 묘지를 지키던 보비도 죽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에게 식사 한 끼 따뜻하게 해 준 친절에 그토록 헌신적이었던 보비를 노인 옆에 묻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서 에딘버러 광장에 조각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배은망덕하는 인간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짐승도 따뜻한 밥 한 끼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평생 동안 그 무덤을 지켜내고 감사를 표시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너무 많은 은혜를 받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가장 귀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같은 사람은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내가 짐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 감사하다. 두 번째로는 내가 하고많은 세상 사람들 중에서 헬라 사람으로, 그리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참으로 감사하다'고 감사 드렸습니다. 

  우리는 만물들 중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 창조되었으니까 우주만물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존재요, 또 이 땅에 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재창조되었으니까 사람 중에서도 위대한 사람들 아닙니까?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 성도의 위치인 것입니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지혜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랍비가 나귀를 타고 닭 한 마리와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고 가도 집은 없고 해는 저물어 캄캄한 밤이 되었습니다. 천막을 치고 나귀와 닭은 천막에다 묶어놓았습니다.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시간을 알기 위함이었고, 등불을 들고 다니는 것은 성경을 읽고자 함이었습니다. 불을 켜고 성경을 보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등불을 넘어뜨려 불이 꺼졌습니다. 그는 기도하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맹수들이 나귀를 잡아 죽였습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잠잔 곳에 가까운 동네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 들어갔더니 온통 아수라장입니다. 어제 밤에 강도 떼들이 들어와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강탈해 갔습니다. 랍비는 그 자리에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닭이나 나귀가 살아 있었더라면 

  강도들이 쳐들어와 자기 목숨을 해쳤을 것입니다. 불이 켜 있어도 문제입니다. 생각해보니 잃어버린 게 많다. 그것이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좋게 여긴다.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은 나의 미래도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감사하게 되고 이런 이들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노만 필' 박사는 항상 적극적 사고방식을 강조한 사람으로 어느 날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맞은편에는 한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그 부인은 계속해서 주변 환경에 대해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좌석이 불편하고 시트가 지저분하고 청소도 제대로 안 돼 있고 승무원도 불친절하다는 등 불평을 했습니다. 이때 부인의 불평을 듣고 있던 남편이 필 박사에게 인사를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들을 소개하기를 '저는 변호사이고 제 아내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필 박사는 '그럼 부인께서는 어떤 것을 제조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웃으며 '제 아내는 불평을 만들어내는 제조업자입니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부인처럼 불평을 만드는 제조업자가 아니라 감사를 만드는 제조업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살인범이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힌 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마치 자기가 억울하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처럼, 분노 속에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살인범의 형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 나라를 위해서 혁혁한 공을 많이 세웠습니다. 그래서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의 형은 자기의 절친한 친구인 주지사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상의를 했습니다. 형은 주지사 친구와 함께 대통령에게 그의 동생을 사면을 해 달라고 청원을 했습니다. 대통령은 살인범의 형이 나라를 위해 세운 공로를 참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동생을 사면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제 살인범의 형은 양복 안쪽 주머니에 대통령의 사면장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동생을 찾아갔습니다. 감옥에서 동생을 만난 형은 제일 먼저 이렇게 물었습니다. 

  '얘야, 네가 만일 죽지 않고 이곳을 살아서 빠져나간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 그러자 동생은 뜻밖에도 살기 등등한 모습으로 '형님, 나는 복수심에 불타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나가는 길로 내게 사형언도를 내린 판사와 법정에서 내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을 찾아가서 총으로 쏘아 죽이고 싶습니다. 그것이 여의치 못하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복수를 해야지 내 직성이 풀릴 것 같습니다.' 

  형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잠시 뒤 형은 동생과 작별인사를 하고서 그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형의 양복 안쪽 주머니에는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사면장이 그대로 들어있었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악한 일을 했습니까? 그럴지라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마십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납해 주십시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의 천사가 하나님의 사면장, 하나님의 축복 장을 받아 쥐고서 우리에게 왔지만 그것을 전달할 길이 없어 그대로 떠나 버리고 말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않습니다. 그 어떠한 경우라도 악을 대응 무기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누가 우리를 저주합니까? 그럴지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원수로 대하고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우리는 그 사람을 원수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무엇인가 충족되는 데서 오는 감사입니다. 

  배가 고팠다가 배불리 먹게 되면 만족하게 됩니다. 어렵게 살다가 좀 나아지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욕구충족에서 오는 감사입니다. 그러나 이 감사는 지극히 순간적이며 일시적입니다. 다시 배고프고 부족해지면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다음은 철학적인 감사입니다. 이것은 생각하는데서 오는 감사입니다. 이를테면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서 어제보다 오늘이 낫다고 생각하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헬라의 철학자 '탈레스'는 세 가지를 비교하면서 감사했습니다. 그것은 금수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고, 천대받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고, 야만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헬라인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서 찾는 감사는 그 생각과 판단이 불확실하거나 달라지면 다시 감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은총적 감사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이것은 본질과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입니다. 환경이나 소유의 조건에 따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무엇이 되었다'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데서 오는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데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었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되었다는 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할 수 있을 때에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내일이 불확실함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초원에서 생긴 일입니다. 하루는 동물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자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 틈을 이용해서 굶주린 하이에나가 사자의 새끼 가운데에 한 마리를 잡아 먹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멀리 달아났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사자는 그 사실을 알고서 노발대발했습니다. 

  사자는 즉시 초원의 모든 동물을 한 자리로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는 하이에나가 저지른 악행을 발표를 말하면서 하이에나를 전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또한 사자는 그 일에 초원의 모든 동물들이 협조를 하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모든 동물들은 하이에나가 저지른 악행을 듣고서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물의 왕인 사자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누구도 예외 없이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번 일로 인해서 초원의 평화가 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코끼리가 조용히 사자를 찾아갔습니다. 코끼리는 사자에게 조심스럽게 이렇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왕이시여, 물론 하이에나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는 마땅히 응징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초원의 모든 동물들이 이번 일로 인해서 평화가 깨어지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왕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번 일에 대한 노여움을 푸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사자가 화를 벌컥 내면서 말했습니다. '무엇이라고? 이런 굴욕스러운 일을 그냥 참고만 있으라고? 그렇게 비겁해서야 내 어찌 동물의 왕이라고 불릴 수 있겠느냐?'

  코끼리는 다시금 사자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자기 힘을 휘두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을 절제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왕께서 극심한 아픔을 당하셨지만 그래도 분별력을 잃지 아니하시고, 평소와 같이 침착하고 위엄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초원의 모든 동물들은 왕을 더욱 존경하고 잘 따르게 될 것입니다.' 

  역시 사자는 동물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코끼리의 말을 듣고서 일리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자는 자기의 분노를 참고 코끼리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초원의 평화는 그대로 유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멀리 달아났던 하이에나는 그 소식을 듣고서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자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에 있는 동물들에게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사자는 겁이 많은 동물이야. 나하고 싸우기가 싫으니까 나를 피하는 거야' 그 소리를 듣고 나이 많은 코끼리가 하이에나를 찾아갔습니다. 코끼리는 자기의 큰 발로 하이에나를 사정없이 짓밟은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똑바로 들어 두어라. 사자가 너 같이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짐승을 정말 두려워해서 참고 있는 줄 아느냐? 사자는 모든 동물의 평화를 위해서 자기의 아픔을 억누르면서 참고 있는 거야!'


 


  ▶우리나라의 여순반란사건 때 '사랑의 원자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손양원 목사님에게 어린 중학생 두 아들이 빨갱이들에게 붙들려 나무에 묶였습니다. 

  빨갱이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을 고문하면서 '만일 너의 머리 속에 있는 예수 사상을 빼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를 죽이겠다.' 그 때 아이들은 '너희들이 우리를 죽일 수는 있어도 우리의 마음속에 불타고 있는 예수의 사랑은 결코 빼앗지 못할 것이다!'

  결국 두 아이는 총살당했습니다. 사흘 뒤에 순교한 두 아들의 시신을 앞에 놓고서 손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의 두 아들은 미국으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미국보다 훨씬 더 좋은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셨으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평범하게 살다가 죽는 것만 해도 감사한데, 예수님을 전하다가 순교하게 해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는 오히려 환난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환난 너머에 있는 소망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뒤에 두 아이를 죽였던 범인이 붙잡혔습니다. 그도 역시 젊은 학생이었습니다. 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손 목사님은 경찰서로 뛰어갔습니다.

  '그 아이를 죽이지 마십시다. 차라리 그 아이를 제게 양자로 주십시오. 그 아이를 죽이는 것은 사랑하는 제 두 아들을 다시 한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맡아서 훌륭하게 기르겠습니다.' 그의 청원은 받아 들여졌습니다. 손 목사님은 그 아이를 자기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훌륭하게 믿음으로 잘 길렀습니다. 나중에 그 아이는 자라서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그 교회 목사님께서 설교 도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앉은뱅이처럼 앉아만 있습니다.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화답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이어서 목사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일어나서 걷는 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뛰어가야 합니다.' 교인들은 너도, 나도 신이 나서 맞장구를 치며 화답했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뛰어가야 합니다!' 목사님은 더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너무나도 넓습니다. 우리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갑시다!'

  그러자 모두가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는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갑시다!'

  목사님께서 흐뭇한 모습으로 교인들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 시간 구체적으로 작정을 해서 하나님께 헌금을 합시다.'

  그러자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화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지 한 사람이 용기를 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로 하여금 예전처럼 다시금 앉아있게 하십시다.' 여러분! 이것이 행여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기차가 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개구쟁이들이 괜스레 지나가는 기차를 향하여 돌멩이질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별생각 없이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기차의 유리창이 깨어지기도 하고, 타고 있던 승객들의 머리가 깨지는 등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그래서 시간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구쟁이들의 장난질은 끊어지지를 않았습니다. 

  하루는 선생님 가운데 한 분이 좋은 생각을 해 내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철로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기차가 지나갈 때 이렇게 아이들에게 외쳤습니다.

  '얘들아! 저 기차를 향해서 손을 흔들어 주자' 그래서 선생님과 더불어서 아이들이 손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열차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도 덩달아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은 손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돌멩이를 던지는 장난질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돌멩이를 던지지 말아라'는 말로는 장난질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손을 흔들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으로 바뀔 때, 자연스럽게 돌멩이를 던지는 장난질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 사랑입니다. 리빙스톤의 지나간 발자취를 스탠리가 찾아가 보았는데, 현장에 가보니 새까만 흑인들 말도 잘 안 통하는데 리빙스톤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보고 놀랐답니다. 

  그전까지는 백인이라면 이를 갈았는데, 왜냐하면 잡아 팔아먹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백인 리빙스톤이 와서 병을 고쳐주고 교육도 시켜주고 복음도 전해주니 너무도 감사하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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