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復活節, The E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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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復活節, The Easter)
성 고난 주간(Holy passion week)의 금요일에 죽어 장사되신 주님은 삼일만인 일요일 곧 주일날에 스스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는바 부활절은 이를 기념하는 주일날을 가리킨다.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절을 '파스카'(Psacha)로 불렀다. 이는 구약의 유월절(Passover)을 뜻하는 히브리어 '페사흐'( j s p )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구약의 초대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유월절 양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구속 희생을 당한 사실에 근거하여 구약의 유월절을 예수의 부활 기념일로 변용시켜 기념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한편 부활절을 의미하는 영어 '이스터'(Easter)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인 Eastre와 Ostara가 합성된 말로, 유럽의 튜튼족이 숭배한 새벽과 봄의 여신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새벽은 어둠을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봄은 새 생명이 겨울을 이기고 나온다는 의미에서 각각 부활절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 바 두 단어를 합성하여 부활절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던 것이다.
1. 시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이 살아나심으로 인해 그를 믿는 자들 역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새 생명을 얻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복음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이다. 이에 교회에서는 부활절을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음을 기념하는 성탄절과 함께 교회의 중요한 절기로 기키고 있다. 소아시아를 중심한 동로마 교회들은 일찍이 구약시대부터 유대인들이 지키던 큰 절기였던 유월절을 주님의 부활절로 변용하여 니념해 왔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기념하기 위한 날로, 유월절은 유대의 종교력으로 니산월 14일에 지켜졌다. 그래서 동로마 교회의 부활절은 주일과는 상관없이 유대력 니산월 14일이 되었다.
그러나 서로마 교회의 부활절은 동로마 교회의 부활절 시기와는 달랐다. 왜냐하면 동로마 교회가 유대의 종교력을 중요시한 반면 서로마 교회는 주일, 즉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요일을 주요시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금요일에 일어났고 부활 사건은 안식일 다음날에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막 16:9; 눅 24:1-7). 이러한 성경의 근거에 의해 서로마 교회는 부활절을 주일로 지킬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렇게 동,서로마 교회의 주장은 서로 팽팽하게 맞서 2-3세기까지도 부활절 시기에 대한 의견의 합의를 보지 못한 채 계속해서 교회의 논쟁의 불씨가 되었었다.
그러다가 A.D.325년 이러한 교회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니케아 회의(the council of Nicea)가 열리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부활절은 언제나 유월절 기간이어야 한다는 동로마 교회의 주장과 반드시 주일이어야 한다는 서로마 교회의 주장을 다 수용시킨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 결과 부활절은 춘분(春分)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지키되 특정 일요일일 필요는 없다고 정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한 해결점이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동,서로마 교회가 사용하는 월력의 차이로 인해 그 계산에 있어 심할 경우 5주씩이나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계산상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다시 수정인이 나오게 되었는데, 결국 부활절은 유월절기와 연계시키지 않고 3월 21일로 고정되어 있는 춘분 이후에 오는 그 해의 14번째 일요일에 지켜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당시 동,서로마 교회의 호응 부복으로 7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받아들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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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래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기록들이 비교적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자체에 관련된 것이며 부활절의 기념과 그 행사에 대한 것은 유월절과 관련되어 잠깐 언급될 뿐이다(고전 5:7).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종교력으로 1월인 니산월 14일, 즉 유월절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였다. 이렇게 유월절이 부활절로 변용되어 기념된 것은, 예수의 부활이 유월절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출애굽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심으로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속과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역이 그 의미에 있어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출 12:13).
전통적으로 소아시아 지역의 동로마 교회들의 성도들은 부활절에 양고기를 먹으면서 승리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기도 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일부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다. 또한 부활 주일 이전의 월요일로부터 토요일까지 고난 주간의 행사로서 금식이 행해졌으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절에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함께 모여 애찬과 성찬을 나누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는 동로마 교회 뿐 아니라 서로마 교회에서도 행해진 것이었다.
한편 서로마 교회들이 어떻게 부활절을 기념했는지, 또 그 시기는 언제였는지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다. 그러나 서로마 교회에서는 유월절에 기초해서 부활절을 기념하는 동로마 교회와는 달리 유대 전승에 근거한 부활절을 거부하며 보다 성경의 기록에 근거한, 로마 전승을 반영한 부활절을 기념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이유로 동,서로마 교회는 시기 문제에서부터도 합의를 보지는 못했으나, 이날을 성대하게 기념한 것은 일치하였다.
A.D.325년 니케아 회의 이후 오랜 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부활절 시기의 문제가 동,서로마 교회에 합의가 이루어지자 이들 교회들은 부활절과 관련한 보다 다양한 해사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 교회들은 부활절 전날 촛불을 밝히며 부활절 전야제 등을 거행하였다. 또한 이날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모세 오경과 주님의 수난 설화등을 낭독하였으며, 성유를 바르는 의식 ꁹ 성찬을 행하였다. 하편 중세 기록에 의하면, 부활절을 기념하는 기독교인들의 즐거운 축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예수 부활을 믿지 않던 유대인들의 문밖 외출을 금했다고도 한다.
이런한 부활절은 개신교 모든 교단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자신들 역시 영생의 부활에 동참하기를 기원하는 중요한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또한 이날 세례와 입교식, 그리고 성찬을 행하여 더욱 의미 깊은 날로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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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풍습
(1) 부활절 새벽 예배(일출 예배)
부활절에 행해지는 대표적인 풍습으로 부활절 새벽 예배가 있다. 이는 초대 교회 시대부터 행해진 것으로, 초대 교회 성도들은 부활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 위로 세 번 뛰어 오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구름을 뚫고 찬란하게 비치는 태양 광선은 기쁨의 춤을 추는 천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며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해가 솟아 오르는 순간을 보기 위해 새벽에 넓은 들이나 언덕 꼭대기에 모여 기도와 노래, 부활 축하 타종 등으로 해돋이 순간을 맞이하였다.
오늘날도 이러한 풍습은 유럽 등지에서 행해지며 미국에서는 새벽 예배 형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활절 연합 예배로 새벽에 곳곳에서 새벽 예배를 드린다.
(2) 부활절 행진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행해지는 풍습으로 부활절 행진이 있다. 이는 부활절 아침에 예배를 마친 사람들이 꽃과 부활절 촛불로 장식된 십자가를 선두로 행렬을 지어 기도를 음송하고 부활절 찬양을 부르며 마을을 행진하는 풍습이다. 때로는 들판이나 국토를 횡단하기도 한다. 이때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흰 예복을 입었으며,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음을 축하하는 뜻으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이 행렬에 참가하였다.
이러한 부활절 풍습은 원래 콘스탄틴 대제 때 의회에서 명령한 것으로, 이는 부활절에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종교 개혁 이후로 이러한 부활절 행진은 부활의 참뜻을 기리기보다는 의상에 너무 치중하는 부활절 패션 행진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거부되었다.
(3) 부활절 달걀 나누기
부활절에 달걀을 나누어주는 풍습은 많은 부활절 풍습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이다. 달걀은 봄과 풍요의 상징으로, 달걀을 주고받는 것은 원래 새해에 행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유대의 종교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때는 주님이 고난받으심을 기억하며 경건히 보내야 하는 사순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님의 살아나심을 축하하는 부활절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붉은 색 또는 그 밖의 여러 색의 물감으로 색칠한 달걀을 선물로 주는 풍습은 어느 불우했던 부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느 한 부인이 남편을 잃고, 살던 집조차 빼앗겨 살길이 막막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그 부인을 도와 주었다. 마을 사람들의 친절을 늘 감사하게 생각했던 부인은 그 마음에 보답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부인은 그 방법으로 친절한 마을 사람들을 축복하는 글과 성경 구절을 달걀에 써서 동네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이것이 점점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한편 부활절 달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상징으로 그 껍질은 예수님이 사흘 동한 머무르셨던 바위 무덤을, 달걀 껍질에 칠하는 붉은 색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흘리신 피를 상징한다. 기독교인들은 부활절에 채색한 부활절 달걀을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날 다양하게 장식한 부활절 달걀을 성도들에게 나누어준다.
(4) 부활절 타종
부활절에 종을 치는 풍습은 러시아, 폴란드 등지에서 행해졌던 고대 풍습이다. 우크라이나 지방 같은 경우 부활절을 연중 가장 중요한 날로 여겼기 때문에 이를 축하하며 부활의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의 종을 울렸다고 한다. 부활절 종소리는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실어다 주며, 엄숙하고 경건한 가운데 주님의 부활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소음 등을 이유로 종을 울리지 않아 부활절 종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부활의 종소리가 갖는 의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이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항상 우리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5) 부활절 촛불 밝히기
부활절 전야에 촛불을 밝히는 풍습은 이미 3세기 중엽 로마 교회 등에서 행해진 것이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부활절 전야에 밝힌 촛불로 인해 도시 전체가 환하여 졌다고 한다. 이때 사람들은 각자 밝힌 촛불을 들고 교회에 와서 철야 예배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이 풍습은 새해 아침에 제단에서 행해지던 예식, 즉 부싯돌로 새로운 불을 붙여 그 불을 다른 양초들에 옮겨 붙이던 예식에서 유래된 것이다.
촛불을 밝히는 것은 이 땅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기념하며 우리 성도 역시 빛으로 살기를 다짐하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중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사랑받는 풍습이다.
(6) 부활절 음식
부활절을 기념하는 음식으로는 양고기 이외에도 햄 종류와 과자가 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요리된 햄, 훈제된 햄 등 돼지고기를 이용한 음식을 먹는데, 이는 돼지가 행운과 성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에서는 부활절 음식으로 paska라고 불리는 부활절 빵과 과자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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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상징물
(1) 어린양
인간들을 대신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흔히 유월절 어린양으로 상징된다. 이는 구약 시대의 절기인 유월절에 어린양이 백성들을 위한 희생 제물로 쓰였듯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인간들을 위한 희생양이 되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였기 때문이다(출 12:3; 요 1:29). 이러한 이유로 인해 중세 기독교인들은 어린양을 음식으로 만들어 먹으며 승리의 어린양이 되신 그리스도를 기념했다. 이 풍습은 지금도 유럽 등지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혹은 양 모양의 형상을 만들어 음식이나 그 밖의 부활절 장식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양고기를 잘 먹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풍습이다.
(2) 부활절 백합
성경에서 백합은 미(美)와 완전한 선(善)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백합을 부활절 상징으로 처음 사용한 나라는 미국인데, 미국인들이 부활절과 관련하여 주로 사용하는 백합은 일명 버뮤다 백합이다. 이 백합은 원래 일본에서 버뮤다로 전해졌다가 1882년에 미국에 전래되어진 꽃이다. 이 백합이 부활절의 이미지를 잘 표현할 뿐 아니라, 그 피는 시기도 부활절에 즈음해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백합은 미국 뿐 아나라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주요한 부활절 장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3) 부활절 토끼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부활절 상징으로 부활절 토끼가 있다. 토끼는 봄의 충만함과 새 생명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특히 부활절 토끼는 부활절 달걀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져다 준다는 민담을 가지고 있다. 토끼와 관련된 부활절 풍습은 15-16세기경 독일에서 유래되었으며, 1572년경의 어느 독일 문헌에 토끼를 부활절 상징으로 삼았다는 최초의 기록이 실려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해 독일인들은 부활절에 토끼 모양을 만들어 장식으로 사용하거나 그 모양을 새긴 과자나 파이 등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4) 부활절 초
부활절 전야를 밝히는 부활절 초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축하하는 것으로 축복을 상징한다. 그리고 부활절 초에 장식된 다섯 개의 낱알(향조각)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생긴 다섯 군데의 상처를 의미한다.
한편 중세 시대에는 부활절에 각 교회마다 커다란 초를 세우는 것이 경쟁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큰 부활절 초는 1517년 영국의 Salisbury의 제단에 세워진 것으로 그 길이는 무려 9미터가 넘었다고 한다. 부활절 초와 관련된 행사로는 촛불 예배와 촛불 행진이 있다.
(5) 부활절 동산(묘지)
부활절 묘지는 그리스도께서 장사되셨던 모덤을 상징하는 것으로 고난 주간 예배에서도 사용되는 성묘(聖墓) 모형을 말한다. 이것은 교회의 후미진 곳, 무덤, 둥근 천장의 경내 또는 부속 예배당 등에 만들어졌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성금요일에는 이 묘지의 가운데에 십자가와 촛불이 놓이게 되는데, 부활절 아침에 그리스도가 살아나셨음을 의미하기 위해 십자가를 치웠다. 13세기 영국과 노르망디에서는 성 목요일에 축성(祝聖)된 성체(聖體)를 십자가와 함께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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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요 행사
(1) 부활절 철야제
부활절 철야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억하기 위한 부활절 주요 의식으로 성 토요일과 부활 주일 사이에 거행되었다. 히폴리투스가 지은 '사도 전승'(Apostolic Tradition)에 의하면 이때 교회에서는 세례식이 베풀어지고 성찬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나 4세기 이후에는 교회력의 발달로 그리스도께서 수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성 금요일을 이날과 명확히 분리시켜 준수하게 되어, 성찬 등의 의식은 주로 그 이전에 행하고 부활절 철야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중점을 두어 지켜지게 되었다. 그러나 10세기 이후 철야 예배가 토요일 오후, 토요일 아침 등으로 그 시간대가 변경되면서 사실상 철야제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1951년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부활절 철야제가 부활되어 다시 지켜지고 있다.
(2) 부활절 연합 예배
우리나라의 교회들은 새벽에 연합 예배를 드리고 있다. 제 1회 부활절 예배는 1947년 서울 남산의 조선 신궁터에서 거행됐는데, 이때 모인 신도는 1만 5천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부활절 연합 예배가 드려졌던 남산의 조선 신궁터는 과거 일제시대 때 신사 참배가 행해졌던 곳으로 해방 후 이곳에서 드린 부활절 연합 예배는 종교의 자유를 되찾았다는 실로 감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때 설교는 자로 교회의 한경직 목사가 맡았었다.
4회까지는 계속 남산에서 예배가 개최되었으나 6.25사변으로 인해 제 5회 연합 예배는 부산의 보수 공원에서, 제 7회 부활절 연합 예배는 부산 사범학교 뜰에서 거행되었다. 그리고 1960년 이후에는 진보파와 보수파의 분열로, 또다시 예방측 합동 교단이 별도로 예배를 드리게 되어 부활절 예배가 같은 날 세 장소에서 드려지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1978년에 와서야 재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서울 뿐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별로 부활절 연합 예배가 거행되고 있다. 한편 서울에서는 1975년부터 연합 예배의 장소가 여의도 광장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계속적으로 그곳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다.
평소 교파를 달리하던 각 교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지체 의식을 가지고 이렇게 함께 모여 화목 제물이 되셨던 그리스도의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뜻 있는 부활절 예배가 될 것이다.
(3) 촛불 행진
부활절 새벽 예배가 끝난 다음 행해지는 부활절 행사로 촛불 행진이 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새 희망과 세상에 빛으로 이 땅에 오사 이를 완성하시기 위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이 행사에 참가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 주변을 돌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린다.
촛불 행진시에는 전도지 등을 미리 준비했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나누어주거나 근처에 있는 집의 대문 안에 넣어 준다. 이때 주의할 것은 우리의 작은 행동도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임을 인식하여 경건하게 행동하도록 한다. 또한 주위의 많은 가정이 잠들어 있을 때이므로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한다.
(4) 부활절 달걀 나누기
부활절 달걀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 껍질은 무덤을, 달걀 껍질에 칠하는 붉은 색은 죄인의 대속을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부활절에 부활절 달걀을 교인들에게 나누어준다. 이때 이러한 행사가 우리 교회만의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주위의 이웃에게도 부활절 달걀을 나누어주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동안 교회 출석을 게을리 했던 성도를 직접 찾아가 부활절 달걀을 선물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부활절 달걀과 관계된 부활절 놀이로는 날계란 찾기, 달걀 굴리기 등이 있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달걀이 상징하는 바를 알려주고 달걀과 관계되 동화나 이야기를 해주며 부활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한다(3. 풍습 참조)
(5) 음악 예배
부활절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음악 예배가 드려진다. 부활절 음악 예배는 주로 부활절 저녁에 드려지며 부활절에 행해지는 음악예배로는 뮤지컬, 오페레타, 칸타타가 있다(성탄절,5. 주요행사 참조). 그중 부활절 칸타타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 예배 프로그램이다. 이밖에도 부활에 관계된 찬송들을 모아서 발표하거나 예배 순서에 부활절과 관계된 찬송을 많이 넣어서 진해할 수도 있다.
다른 행사 프로그램과 같이 부활절 음악 예배도 능숙한 운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해 주님의 부활을 기리는 우리의 마음을 돈독히 갖는 것이다. 부활절 예배를 통해 다시 한번 주님의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6) 성극 예배
성극 예배는 연극 형식으로 드려지는 예배로, 보통 예배와 같이 찬송과 기도, 묵도 등이 예배 순서에 포함되며 단지 설교 대신에 부활에 관계된 성극이 공연되는 예배이다. 성극 예배에서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은 사신들이 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인식하여 진지한 태도로 예배에 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성극 예배에서는 부활절 설교 메시지가 성극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대사와 몸짓에 의해 전달되어지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예배가 아닌 단순한 '극'으로 격하되기 쉽다.
(7) 낭송극 예배
낭송극 예배는 성극 예배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예배는 성극 예배처럼 대사에 따른 행동이 없이 부활에 관계된 성경 본문이나 글을 낭독자들이 읽음으로써 예배가 진행되어진다. 낭송극 예배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드리는 예배임을 기억하여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극을 통해 낭송자 자신도 예배드리는 시간이 되도록 한다.
(8) 묵상 예배
묵상 예배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관계된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는 형식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묵상 예배 전에 예배실 조명을 어둡게 조절하여 고요한 가운데 묵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불을 끄고 각자가 촛불을 들고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 묵상 예배는 찬양과 성경 낭독, 간단한 설교 말씀으로 꾸며지며 묵상할 내용을 그린 그림을 이용할 수도 있다. 묵상 예배시 선포되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관련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베드로의 부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것을 외치는 이스라엘 백성들,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가상 칠언 등과 관련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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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불신자의 차이
죽음을 앞두고 사람은 가장 진실 되고 착한 말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임종어는 그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의 임종어와 믿음을 거부하며 불신의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임종어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대한 확신과 불안, 죄에 대한 자신감과 염려 그리고 삶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어리석은 삶을 산 자에게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는 혼자가 아니며, 그의 종착지가 어두운 무덤이 아니라 새로운 아침을 기다리는 곳임을 분명하게 확신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자들의 마지막 말을 살펴봅시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1769-1821)은 "프랑스 군대! 조세핀!"이라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1749-1832)는 "어둡다! 어둡다! 나에게 빛을 달라"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볼테르(1694-1778)는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다. 나는 지옥에 떨어진다. 오! 그리스도시여, 예수 그리스도시여!"라고 말했으며, 프랑스의 혁명가로 많은 사람을 죽인 미라보는(1749-1791) "영원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 있도록 나에게 아편을 다오"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의 고백은 다릅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1732-1799) "좋다! 저 세상은 참 아름답군"이라는 말로서 믿는 자에게 죽음은 불행이 아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1628-1688)은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이제 당신께로 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전도 중에 순교하면서 "주의 손에 내 영혼을 돌려드리나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임종어는 이미 얻은 자들의 당당한 메시지였습니다. 천국을 소유한 자들의 넉넉함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집사였던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말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 문제를 해결 받았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당당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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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그 기쁨의 날 -Sandra Simpson LeSourd
이제 난 알콜중독에서 벗어나 회복 단계에 접어들었다. 최근엔 결혼도 했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역도 하면서 나는 무슨 일에서나 항상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예수님의 수난일인 부활절 전의 성 금요일은 여전히 눈물을 닦아주는 날이었으며 토요일은 기다림과 인내를 배우는 날이었다. 그러나 내겐 기쁨이 없었다. 특히 부활절의 그 기쁨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여러 해 동안 난 그 기쁨을 얻고자 갈망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부활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는 내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쁨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아주 엉뚱한 시간에, 뜻밖의 사람들을 통해 찾아들곤 한다. 내겐 그 기쁨이 10일간의 멋진 이스라엘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찾아왔다.
정원 무덤(영국의 개신교도 고던 장군이 발굴한 장소로, 예수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고고학자들에게 인정을 받은 곳은 아니지만 기도할 수 있도록 꾸며진 아담한 장소로 기독교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편집자 주)에 이르러 돌산을 깎아 들어가 만든 작은 방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가슴속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거기엔 좁고 긴 의자 같은 선반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곳으로 추측되는 곳이었다. 아무 것도 놓이지 않은 이 돌 선반을 바라보면서, 난 그 양쪽에 앉아 마리아를 맞이했던 두 천사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자그마한 전자 하프를 가지고 있던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조심스레 현을 튕기기 시작했다. 무덤 안에 감미로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자 우리들은 조용히 그 곡조를 따라 흥얼거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부활하셨네. 할렐루야!'
우리 일행 중 나머지 사람들도 우리의 노랫소리를 듣고는 무덤 앞뜰에서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쁨을 나누었다. 새 노래를 이어 부를 때마다 우리들의 영혼도 함께 소생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바로 그 방안으로 옮겨진 듯 느끼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파도처럼 내 온몸으로 밀려들었다. 예수님은 살아 계셨다!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예수님은 정말 무덤에서 일어나셨다!
우리들은 계속 노래하면서 밖으로 걸어나갔다. 차분한 성격의 영국인 안내인까지 우리들의 환희에 압도되어 흥겨운 춤을 추었다. 그때 친구 마가렛이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오늘, 나는 1984년, 성지 순례 여행의 기록이 담긴 사진첩을 죽 훑어보면서 내 모습이 담긴 그 사진을 바라본다. 두 손을 높이 든 채 내 얼굴은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로 그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던 것이다!
(
<예증>- 한 여인이 루이지애나주의 성공회 교회의 묘지에 있는 150년 된 참나무 숲 아래 묻혀있습니
다. 그녀의 묘비에는 “기다림”(waiting)이라는 한 단어만 새겨져 있습니다. 그 기다림은 어떤 의미의
기다림일까요? 죽음 너머에 또 다른 소망이 있단 말일까요? 물론입니다.
미국의 어느 연로한 목사가 “오늘은 금요일. 그러나 주일이 오고 있다”(It’s Friday, but Sunday’s
Comin’)라는 제목으로 감동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점점 빠르게, 점점 더 큰 소리로 그는 세상에서는
악의 힘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던 금요일과 주일을 잘 대비시켰습니다.
<설명>- 이 두 날을 실제로 보냈던 제자들은 다시는 하나님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안
계시는 것처럼 여겨질 때, 하나님은 무엇보다 가장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는 요일 이름 없는 하루(지금은 토요일로 확정되었지만)를 건너뜁니다. 당시 제자들은
하루라는 짧은 시간을 살았지만 지금 우리는 엄청나게 긴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
고 있는 이 지구의 세상은 토요일입니다. 과연 주일이 올까요?
<본문 연결>- 그 암울했던 날이 ‘성 금요일’이라 불리는 까닭은 오직 그 다음 주일에 일어났던 일 때문
입니다. 부활절은 쇠퇴의 길에 접어든 우주에 작은 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이 부활
절의 기적을 전우주적인 규모로 확대하실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소망 속에서 기다리며 이름 없이 틈새에 낀 기나긴 토요일을 살아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5). “기다림”이란 글자 하나만
달랑 새겨진 루이지애나의 어느 묘비에서처럼, 우리 역시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것
도 보이지 않는 토요일입니다. 그러나 승리와 소망과 부활의 주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밤 같은 암흑, 죄악이 우리를 덮치고
무거운 슬픔의 짐 우리가 지고 가나
이제 주님이 오신다는 표적들 보고
우리 가슴 타오르며 기쁨의 잔 넘쳐 흐르네”
굳었던 손발 부활절에 펴졌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입원했던 한 목회자가 신자들의 기도와 장로들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만5개월만에 강단에 다시 섰다. 서울 신당동 신일교회 이광선목사(53)가 쓰러져 입원한 것은 작년 10월 30일 새벽1시경.이목사의 왼쪽 눈과 손,발은 거의 굳어 있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장로들은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담임목사를 껴안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특히 국방부장관을 지낸 김성은 원로장로(74)의 간병은 눈물겨웠다.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병실을 찾아온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이목사의 몸 곳곳을 주물러주었다.
"목사님, 팔좀 들어보시지요"
이목사는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미동도 못하던 그가 팔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의사들도 놀랐다.
"이제 발을 좀 들어보시지요"
왼발을 들어올린 이목사를 보고 신자들은 "아멘","할렐루야"를 연발했다. 로장로의 정성과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다.
이목사는 평소 축구 배구 볼링 테니스등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체격이 건장하고 건강도 양호했다.그러나 휴식없이 열정적으로 부흥회등을 인도한 것이 화근이었다.누적된 피로가 뇌졸중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뇌졸중에는 완치가 없다고 하더군요.퇴원후 입과 눈이 비뚤어지는 등 약
간의 후유증을 피할 수 없다더군요.또 혀가 굳어있어 당분간 설교를 못할거라고 의사들이 말했습니다"
이목사의 입원기간은 약1개월.신자들은 담임목사의 쾌유를 비는 특별기도를 드렸다.장로와 권사들은 수시로 병실을 찾았다.제몸 아낄줄 모르고 불철주야 목회에 전념한 목자에 대한 양들의 사랑표현이었다.특히 원로장로들은 노구를 이끌고 병실을 찾아와 젊은 목회자의 팔과 몸에 지압을 가했다. 이 과정을 통해 이목사는 수술을 받지 않고도 막힌 혈관이 뚫리는 기적을 체험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지 만5개월만인 지난달 30일.이광선목사는 신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강단에 올랐다.이날은 공교롭게도 부활절이어서 감격이 더했다. 이목사는 예전의 날카로우면서도 은혜가 넘치는 설교를 회복했다. 그래서 부활절예배는 은혜가 차고 넘쳤다.
"고난주간때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며 마음을 추스렸어요.그리고 감격적인 주일 대예배를 인도한 것이지요. 노장로님들과 교인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병원을 찾은 이목사는 의사로부터 "거의 정상을 회복했다"는 말을 들었다. 또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에 나타났던 지방간증세도 말끔하게 나았다는 통보를 받았다.해외선교에 가장 열심있는 교회로 알려진 신일교회 신자들의 "목사사랑". 교회 지도자와 교인들간의 상호신뢰. 출석신자 5천여명에 이르는 대교회로서 전담선교사 12명,협동선교사 17명,
현지인선교사 6명을 파송한 신일교회는 이목사의 쾌유로 다시한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사랑은 행동으로 표출됐다. 북한의 굶주린 동포 들을 위해 1억원을 모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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