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 조각과 훈장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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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라디움의 발견으로 퀴리부부가 노벨상을 받자, 프랑스정부가 부부에게 레종 도뇌르 훈장을 주기로 했다. 신문기자가 이 소식을 전하자, 피엘 퀴리는 오히려 언짢아하는 말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내게 훈장을 주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기자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띄우자, 피엘은 말을 이었다. "나는훈장 따위는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과학자인 내가 훈장을 단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지금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은 훌륭한 연구소다."때마침, 6세 가량의 귀엽게 생긴 금발머리의 소녀가 방안에 들어왔다. 그러자 피엘은 그 어린이를 껴안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또 하나의 소망은, 이 딸아이가 우리 내외의 뜻을 이어서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주는 것이다."레종 도뇌르 훈장은, 군사 또는 문화에서 뛰어난 공적을 쌓은 사람에게 주는 프랑스 최고의 훈장이다. 이것을 제정할 때, 반대여론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이렇게 응수했다. "훈장을 어른들의 장난감이라 부르든 말든 그것은 자네들 자유다. 그렇지만, 인류를 지배하는 것은 장난감이다." 그런 [장난감]을 받겠다고, 해마다 프랑스 대통령 앞으로 4천통 이상의 자기추천서가 쏟아져 들어온다.훈장이란, '겉으로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은근히 군침을 삼키는 '이라는, 플로베르의 말은 진리인 것 같다. 그의 말에는 다음과 같은 꼬리가 붙어있다. '만약에 훈장을 타게 되면, 자기는 그걸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준다기에 마지못해 받았다고 말하라.'일본의 한대기업가는 훈장을 받게 되자, '개인적으로는 사양하고싶지만, 내가 거절하면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그러니 안 받을 수도 없다'고 말한적이 있다.훈장이 전혀 쓸모 없는 것도 아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나오는 영국장교 토마스 로렌스는, 1차대전 후에 아랍작전에 공이 크다해서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훈장을 개목에 달고 매일산책때 끌고 다녔다는 설이 있었다.프러시아의 왕이 베토벤에게 '훈장과 50다카트의 금중 어느쪽을 원하느냐'고 물어왔다. 베토벤은 망설임없이 '그야 물론 금'이라고 대답했다.버나드 쇼에게 메리트훈장을 주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자,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거절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예를 주겠다니, 고맙기 이를데 없지만, 내 직업의 성격상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정당한 평가를 받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세익스피어나 몰리에르와 비교될만한 극작가로서 후세에 남겨질 것인지, 당대가 끝나기도 전에 어릿광대로서 잊혀지고 말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저 일개 버나드 쇼로 일생을 마치고 싶다.'가까운 일본에도 훈장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지난 해에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사브로가 문화훈장을 거부했다. '전후 민주주의자'에게는 그런 '국민적 영예'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때 일본의 한 신문은 이렇게 논평했다. '문화훈장이란, 정부라는 국가 권력이 수여하는 것이다. 언론 또는 표현의 일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은, 항상 권력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 권력으로부터 사탕을 받는다면 권력에게 할말을 못하게 된다.''남이 한평생을 바쳐 한 일에 대해서, 정부가 등급을 매겨 훈장을 준다는 게 우스꽝스럽다'면서, 거절한 반골의 기업가며 전직장관들도 있다. 사치다 로한이라는 소설가는 훈장을 받으면서 고마워하지를 않았다. 그는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인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본래의 사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으니, 나도 노망했다.'최근에 황순원씨가 훈장을 거부했다. 훈장을 받을만한 사람이 많은 것도 좋겠지만, 굳이 훈장을 마다하는 사람도 가끔 있어야 그래도 세상이 멋이 있다.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지난 7월 '5공인사와 함께 훈장을 받을수 없다'며 거부한 이효재씨가 처음이며, 황순원씨가 두번째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가 공평하지 못하게 훈장의 등급을 매긴다는 소리는 많았다. 응당받아야할 사람이 빠지고 단순히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훈장을 받는 사람도 많다.지난해에 작고한 김생려씨는 불모지에서 음악계를 일으켜 세운 공로자였다. 그러나 알량한 훈장으로라도 그의 공적을 기리자고 제안한 사람이 정부에는 없었다. 훈장은, 그것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어울리는 훈장을 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제 값을 하게 된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한낱 고물상에서도 받지 않는 양철조각노릇밖에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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