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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크사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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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유대교·기독교·회교 공통의 성지(聖地)다.예루살렘 문제를 놓고 이스라엘인들이 자주하는 농담이 하나 있다.예루살렘은 자신들의 하나밖에 없는 聖地지만 아랍인들에겐 성지가 셋이나 있으니 하나는양보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물론 아랍인들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얘기다. 1948년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가 끝나자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제1차 중동전이 발발했다.이때 예루살렘은 동·서로 양분돼 동쪽은 요르단이,서쪽은 이스라엘이 차지했다.67년 제3차 중동전에서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점령,예루살렘을 영구(永久)수도로 선언해 버렸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10세기 솔로몬왕때 전성기를 맞았다.솔로몬왕은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유일신(唯一神)여호와를 모신 성전(聖殿)을 세웠다.그러나 기원전 597년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점령,그리고 586년 유대왕국의 멸망으로 聖殿은 완전히 파괴됐다.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했으나,알렉산더 원정군·이집트·시리아의 지배를 거치면서 성전은 다시 황폐화했다. 기원전 37년 로마로부터 유대왕 칭호를 받은 헤롯은 聖殿 재건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거대한 성전이 탄생했다.그러나 기원 66년 성전은 또다시 파괴됐다.로마에 항거하는 유대인 반란이 일어나자 로마군은반란의 중심지였던 성전을 철저히 파괴했다.그 후 성전은 서쪽 벽만 남아 유대인들의 수난과 희망의 상징이 됐다.이것이 유명한 '통곡의 벽'이다. 기원후 7세기 예루살렘이 아랍에 정복되면서 모리아산은 회교성지가 됐다.691년 칼리프 압둘 말리크가 예언자 마호메트가 승천(昇天)한바위에 황금빛 바위의 돔사원을 세우고,이어서 8세기초 그 옆에 은(銀)돔의 알아크사사원이 세워짐으로써 예루살렘은 메카·메디나에 이어회교 제3의 성지가 됐다. 최근 이스라엘 정부가 관광목적으로 알아크사사원 아래 터널을 개통함으로써 빚어진 유혈충돌은 독선(獨善)에서 비롯된 것이다.예루살렘은 이스라엘만의 성지 아닌 인류공동의 성지며,특정 민족·종교가 독차지할 수 없는 곳이다.이스라엘은 민족적·종교적 편협(偏狹)에서 벗어나 타민족·종교와 공존할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그것이 바로 중동에 진정한 평화를 심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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