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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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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성경)


 


▶성경은 역전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습니다. 그는 부모가 원래 우상 재조업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순종해서 갈 바를 알지 못하다가 나갈 때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우상제조업자의 아들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역전된 인생입니다.


  야곱은 사기꾼이요, 아버지를 속이는 자고, 형제를 속이는 자이지만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고, 그는 요셉의 아버지로 믿음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의 인생이 변화된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형제들에게 팔려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역전의 주인공입니다. 모세를 보면 그런 것을 많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 이주해간 레위인의 자녀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이 핍박을 받을 때 남자아이를 낳아 더 이상 키울 수 없어서 나일 강에 버렸는데 마침 애굽의 공주가 데려가서 아들로 삼으니 왕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자가 되는가?’ 했더니 나중에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그곳에서 양치는 목동으로 40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다시 불러서 그를 출애굽의 주인공으로 삼으십니다.


  역전의 인생입니다. 성경의 인물은 다 그렇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8형제 중에 제일 막내 동생이었고 양이나 돌보는 별로 인증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최대의 왕이 되고 가장 훌륭한 왕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 왔던 흑인이지만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슈퍼볼의 MVP를 차지한 하인스 워드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자기처럼 혼혈아들을 만나서 격려도 하고 장학금도 주고 했습니다.


  하인스 워드는 6.25 때 어머니가 흑인  병사를 사귀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그만 이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어머니는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까지 남편에게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아들을 다시 찾기 위해 신용을 얻게 되고, 직장을 가지게 됩니다. 열심히 일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양육권을 회복하고, 아들을 대리고 와서 키웁니다.


  그런데 아침마다 직장에 나가면서 아이를 학교에 대려다 주고 직장을 나가는데 하인스 워드가 늘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흑인 친구들이 “너 네 엄마는 한국인이냐? 얼굴 피부가 이상하다.”라고 자꾸 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인스 워드는 엄마 차에 갈 때는 숨어 있다가 차에 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차에서 내려 도망치다가 힐끔 엄마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차안에서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 울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어린 하인스 마음속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리지만 마음의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엄마의 눈에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 이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하고 오늘날의 하인스 워드가 있게 했습니다. 사랑은 차별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게 합니다.




  ▶오래 전에 금요일 밤 철야예배가 끝나면 나오는 방송극이 있습니다. ‘사랑과 전쟁’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전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고아원 출신입니다. 결혼하고 나서는 너무 너무 남편에게 잘하고, 시어머니에게 잘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치매 현상이 왔습니다. 어머니에게 삼계탕을 해 드리려고 시장에서 삼계탕 재료를 사와서는 냉장고에 넣는다는 것이 다른 곳에 넣어두었습니다. 며칠 후에 농에서 썩은 삼계탕 재료가 나옵니다. 초록이 치매라고 해서 젊은 사람에게서도 이런 치매가 옵니다.


  어디 나갔다가 돌아오면 자기 집을 못 찾았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남편 직장을 못 찾습니다. 이제 그 사실을 알고는 이 시어머니가 보다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 그렇게 어떻게 살겠냐? 우리 아들과 이혼해라! 우리 아들이 아직 젊은데 어떻게 치매 걸린 여인과 살겠느냐?’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그는 반대를 합니다. ‘어머니 나는 고아입니다. 내가 이혼하면 갈 곳이 없습니다. 내가 이혼하면 어떻게 하라고요.’ 그러나 결국 본인이 깨닫습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이혼을 해야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참 아내에게 못되게 했습니다. 바람도 많이 피웠습니다. 이 아내가 치매 환자가 된 이유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얻은 병입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만나서 외도하는 것을 수없이 목격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이 깨어질까봐서입니다. 자기는 가정이 깨어지면 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야기 하지 못하고, 참고 참다보니 병이 걸린 것입니다.


  그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됩니다. 아내가 이혼 서류를 내밀 때 ‘나는 당신과 이혼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병든 것이 나 때문인데 어떻게 당신과 이혼을 하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자꾸 강요합니다. 결국 이 아내가 스스로 이혼 서류를 내밀지만 남편은 그것을 반대합니다.


  법정에 갔는데 시어머니가 대리로 나가서 자기 며느리가 이혼하기를 원하니 이혼해 달라고 말합니다. 아들은 이혼할 수 없다가 말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판사가 말합니다.


  ‘이 여인에게는 가족의 사랑이 누구보다도 필요합니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만이 이 여인의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혼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곳에서 끝이 납니다. 그러나 그 남편이 아내와 살겠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흘리게 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할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땅 위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유대 나라 이 작은 땅은 하나님께서 이 땅위에 그 아들을 보내어 주신 땅이어서 온 세계 인류가 모두 사모하는 성지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세계 인류의 약 70%가 예루살렘을 성지로 삼고 모두 사모하고 그곳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가톨릭도 다 모두 예루살렘을 성지로, 개신교도 예루살렘을 성지로, 또 아랍사람들도 이슬람교도들도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이 있었던 예루살렘을 성지로 알고 찾아가고 있습니다. 유대교들도 물론 예루살렘을 성지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땅은 작은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보내 주신 메시아가 탄생한 땅입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행복을 얻으려면 자기만족에서 멀어져야 한다. 가장 훌륭한 지혜는 친절함과 겸허함에 있다. 그래서 두뇌를 갈고 닦는 것보다 마음을 닦는 것이 더 소중하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먼저 보고 그 다음에 그의 두뇌를 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얼마나 바르게 사는지 그걸 본다. 공짜로 써주는 의사의 처방은 믿지 말라.” 축복의 통로에는 생명을 지키는 부표가 있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지혜와 안내서가 있습니다. 축복의 사람은 항상 생명의 부표를 보고, 사랑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며, 축복받은 가정은 화목의 부표를 보고 서로 마음을 읽고, 격려합니다.    




  ▶‘쌩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아주 간단해.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현재 우리는 외형적인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단편적인 판단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가장 중요한 것은 간과한 체 허구를 좇지는 않는지, 이제는 마음의 눈으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빅톨 위고가 쓴 세계적인 명작인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을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배가 고파 빵 한 개를 훔친 것이 죄가 되어 무려 20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옥중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다 출감하지만 전과자인 그를 환영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해가 저물어도 갈 곳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요즈음으로 말하면 어느 교회의 목사님 댁입니다. 목사님은 그가 전과자인줄 알면서도 그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잘 대접하여 재워줍니다. 이튿날 깨어난 장발장은 또 다시 하루 끼니를 걱정하다가 끝내 그 목사님 댁에 있는 값진 은(銀)식기를 훔쳐서 달아납니다.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이 붙잡고 물어보자, 그는 "목사님이 주셔서 가지고 나왔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도 미심쩍었던 경찰은 결국 그를 끌고 목사님 댁까지 찾아가 목사님과 대질 신문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장발장을 보신 목사님은 뜻밖에도 "왜 은 식기만 가져갔소? 은(銀)촛대도 내가 자네에게 주었는데..."하고 답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목사님의 변호와 사랑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장발장의 마음, 20년 동안 옥살이를 해도 변하지 않던 그 마음이 봄에 눈 녹듯 그렇게 녹아내리고 이제 그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한 도시의 시장이 되어 존경과 명성을 한 몸에 받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회개는 매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법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비판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가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축복도, 은혜도 역사하지 않습니다. 한 목사님을 통하여 경험된 하나님의 사랑이 장발장의 마음에 닿게 되자 비로소 그는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쌀 한 가마를 메라고 하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리 어른들에게는 가능한 것입니다. 역시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합니다.




  ▶강국이 소국을 쳐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국 왕은 싸워보아야 쑥대밭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사신을 보내어 어떻게 하든지 전쟁을 하지 않게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사신은 고민하면서 강국으로 갔습니다.


  <무슨 말을 하여야 강국 왕이 전쟁을 그칠까?> 사신은 강국 왕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내가 보니 우리 왕은 초생달 같고 대왕은 보름달 같은 왕이십니다. 보름달 같은 왕이 초생달 같은 왕을 쳐서 무엇 하시겠습니까? 보나마나 우리가 집니다. 전쟁을 그만 두시지요.> 이 말을 들은 대왕은 기분이 좋아서 전쟁을 포기하였습니다.


  전쟁을 그치게 하고 돌아 온 사신은 그대로 보고하였습니다. 왕은 수고하였다고 치하하면서 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상을 주자 말자 빼앗으면서 칼을 빼면서 말했습니다. 왕은 대노하였습니다.


  <너는 전쟁을 끝낸 공로로 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를 무시한 죄는 사형이다. 다른 말로 전쟁을 끝내야지 나를 무시하고 끝냈다. 저 왕을 보름달로, 나를 초생달로 비유하며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사형이다.> 그리고 칼을 빼어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사신이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내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나이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십시오. 보름달은 점점 작아지는 달이지만 초생달은 점점 커지는 달이 아닙니까?>


  이 말 한 마디에 왕의 노가 풀렸습니다. 그래서 죽이지 않았습니다. 말 한 마디에 전쟁을 그치게 하고 말 한 마디에 노를 그치게 하였습니다. 말 한 마디의 중요성입니다.




  ▶14세기 초 스코트랜드의 왕 로버트 블루스라는 사람이 잉글랜드와 다섯 번 싸워서 다섯 번 모두 완패했습니다. 6번째 또 전쟁을 했는데 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산 속으로 도망을 가서 숨었습니다. 비바람이 치는 그 밤에 산 속의 어느 빈 오두막집에 숨어서 아주 초라하게 은거하고 있습니다.


  그때 우연히 오두막집의 처마 끝을 보니까 거미 한 마리가 집을 틀고 있는데 비바람이 너무 거세어서 짓다가 실패하고 또 짓다가 실패합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서 이 거미가 어떻게 하는가 보자하고 자세히 살펴보니까 이 거미가 여섯 번 실패하고 나서 또 일어나 거미집을 또 짓더라고 합니다. 그때 이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거미도 하는데 왜 나는 못 하겠는가” 그래서 일곱 번째 전쟁을 해서 승리했다고 합니다.




  ▶록펠러의 지팡이 


  미국의 부호 록펠러는 수십 개의 대학을 세우고 4,928개의 교회, 그리고 UN 본부 빌딩을 신축하여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도서관도 세워 기증을 했습니다. 기자가 록펠러에게 “ 선생께서는 35년 동안 세계제일의 부를 누리를 원인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록펠러는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두드리면 돈이 나오는 요술 방망이 4개를 물러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첫째 방망이는 십일조입니다. 나는 여섯 살 때 십일조를 배웠고 그것을 지켰습니다.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다 보니 어느새 세계최고의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 방망이는 교회가면 맨 앞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부모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저는 언제나 앞자리를 고수했습니다. 나는 앞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예배시간 한 시간 전 늦어도 40분전에 예배당에 도착했습니다.


  세 번째 방망이는 교회에서 시키는 일이면 무슨 일이던지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무조건 복종했습니다.


  네 번째 방망이는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괴롭게 해서 이로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록펠러는 92세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모가 지키라고 한 것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고합니다.




  ▶미국 오클라호마의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이 마을에 새로 목사님이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도착하자마자 매우 의욕적으로 집집마다 심방을 다니며 오는 첫 주일에 예배를 드리려 교회에 오라고 요청했습니다. 정성을 다해 설교 준비도 했지요. 주일이 되자 이 목사님은 흥분된 가운데 마을 사람들을 기다렸지만 몇 명 오지를 못했습니다.


  다음날 이 목사님은 지방 신문 광고란에 조그만 안내문을 실었습니다. "교회가 죽었습니다. 따라서 담임목사로서 장례식을 치르려 하오니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례식은 오는 주일에 교회에서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신문을 보고 모두 놀라고 의아해 주일이 되자 교회로 찾아 나왔습니다.


  교회 강대상 앞에는 관이 있고 아름다운 꽃도 장식 되여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의식을 따라 장례식을 거행하였고, 이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떠나시는 분에게 조의를 표하라고 하였습니다. 조객들은 차례로 앞으로 나와 관을 드려다 보고는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서곤 했다고 합니다. 그 관속에는 큰 거울이 들어 있어서, 그 관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각자가 본 죽은 교회는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입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여류 작 가 스토우(H. B. Stowe 1811-1896) 부인과 링컨 대통령이 만났습니다. 링컨 은 부인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부인을 만나니 매우 반갑습니다. 나는 부인의 Uncle Tom's Cabin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쓴 저자는 강대한 장군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아주 연약한 분이시군요.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쓰셨습니까?"


  부인은 겸손한 태도로 대답했습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것은 제가 받을 칭찬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오히려 각하께서 하신 일이 놀랍습니다. 남북전쟁을 대승리로 이끄시고 오늘 이와 같은 평화로운 국가를 만드시지 않았습니까? 각하 의 공이야말로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 역시 겸손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그 무슨 말입니까? 나는 단지 하나님의 종일뿐입니다. 내 자신에게는 아무 런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영광은 오직 주 하나님께만 돌릴 뿐입니다."


  흑인 노예해방은 스토우 부인의 저서로 말미암아 민중이 계몽을 받았고 거기에다 링컨의 정치적 활동으로 승리적인 성과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린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배우고 닮아가면서 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미국 달라스에서 일어난 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주일 아침에 예배를 인도하기 위하여 예배실로 들어가니 흑인 성도가 계속 눈물을 닦으면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저 무식한 성도가 무엇을 알까?’ 하여 그 옆에 다가서서 "지금 무슨 이야기를 읽으면서 울고 있습니까?" "목사님 제 이야기가 나와서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신기하기도 하고 혹시 이 흑인 성도가 머리가 이상하게 된 것이 아닌가 의아해서 되물었습니다. "무엇이 형제의 이야기인가요?" 그러자 흑인 성도는 읽던 성경을 목사님 앞으로 내밀면서 "보세요. 죄인. 내 이름 아닙니까? 예수를 비방하고 욕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감히 이 죄인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죄인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 받았으니 울지 않고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그래서 웁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순간적으로 경박했던 자신의 인격이 미안하고 죄스러워 그를 붙잡고 울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죄는 인간에게 육체적인 고통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성도는 죄와 더불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합니다. 이 투쟁이 있는 한 성도는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뛰어난 명작이라고 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탠버그의 십자가'라고 하는 유명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도 그림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에 있었던 이야기가 일화로 전해지고 있어서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스탠버그라고 하는 유명한 화가가 성 베드로성당 위고신부의 요청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그는 성당의 부탁을 받고 그림을 조심스럽게 그려 갑니다 만은 얼마동안 그리다가 중단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림 값이 너무 싸게 흥정되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림 값을 다시 흥정할 생각으로 그림 그리기를 중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도 그는 다른 그림을 또 그렸습니다. 집시 페피타라고 하는 모델을 놓고 그는 세속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마도 나체화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림을 그리다가 잠깐 쉬게 될 때, 이 모델 페피타라고 하는 여인이, 초안만 만들어놓고 완성하지 않은 그림을 보면서 "저 그림은 무엇이에요?"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그림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모습이군요." "그렇습니다." "무슨 사연입니까?" 교회에 대하여 성경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한 집시여인의 질문입니다. 좀 귀찮지만 설명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통속적인 성경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오셨고 이렇게 많은 병자를 고치고 착한 일 많이 하시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이 페피타는 그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슬퍼합니다. 너무너무 슬퍼하니까 화가인 스탠버그는 그 우는 집시여인을 위로할 마음으로 "울지 마세요.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셨으니까 울지 마세요."


  그랬더니 눈을 번뜩 뜨면서 "정말로 부활 하셨습니까?" 이 여인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밝아지는 것이에요. 그렇게 기쁜 낯을 하는 것이에요. 이걸 보는 순간 스탠버그는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지금 이 여인에게 예수는 만백성을 위해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셨다고 말했는데 이 말을 듣고 저 사람은 저렇게 밝은 생명력을 얻는데 내가 정말 예수의 부활을 믿고 있느냐? 정말 내가 부활했다고 말했는데 내가 정말 믿는 것인가?' 하고 자기 자신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다시 부활신앙을 부활시켰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림을 그리면서 돈 적게 준다고 흥정을 하고 있어? 이 나쁜 놈아' 자기 마음에 가책을 느꼈어요. 감사한 마음으로 이 그림을 완성하게 됩니다. 부활신앙을 회복하고 부활신앙을 부활시켜서 그림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탠버그의 십자가' 이 그림은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고 영감을 주는 그림으로 기독교사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  ▶"M. Luther는 요3:16절을 ‘축소된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의 에센스 중의 본질입니다. 이 짧은 말씀에는 ‘최고’들만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최고의 애인입니다.


  ‘세상을’… 최고의 숫자. 민족과 인종을 다 포함합니다.


  ‘이처럼 사랑하사’… 최고의 수준입니다. 자기 생명을 희생시킨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최고의 선물입니다.


  ‘주셨으니’… 최고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다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최고의 초청입니다. 제한 없는 우주적 초청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최고의 단순함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멸망하지 않고’… 최고의 해방입니다. 죽어야할 죄수가 석방된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리라’… 최고의 소유입니다. 영생, 그 이상의 재산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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