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설교 예화(고백)

본문

설교 예화(고백)


 


 


▶이북에서 생긴 일입니다. 어느 마을에 몰래 예수를 믿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공산 사상에 짙게 염색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당에 고발하였습니다. 온 동네에서 아들이 친 아버지를 고발한 사건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공산당은 온 마을 주민에게 교육을 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공개재판하기로 하였습니다. 사형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벙거지를 씌우고 손을 뒤로 하여 꽁꽁 묶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그 앞에서 아들이 고발장을 큰 소리를 읽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이들은 공산당을 배반하고 아침마다 미신 같은 신에게 기도한 배반자입니다>


사람들은 억지로 끌려 나와 공개재판을 구경하면서 숙연하여졌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여 죽이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는 심정이 얼굴에 역력히 나타났습니다. 공산당들은 이 아이를 영웅으로 치켜세웠습니다. 그리고 상을 주고 대단히 환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편 이 아이는 영웅이 되었지만 고아가 되었습니다. 공산당은 이 아이가 공산사상이 투철하다는 이유로 공부를 시키고 길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싱긋이 웃는 데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사형 당하신 아버지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서야 비로소 자기는 부모님에게 얼마나 죄를 지은 것인지를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자기가 아버지 고발할 때 나이가 들어서야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런 번민 속에 김 요석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은 아버지 어미니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펑펑 울면서 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 할 죄도 용서하시나요?> 김 목사님은 무슨 의미인지 알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한 죄도 용서하십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위의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자기도 아침마다 기도하고 있고 아들이 자기를 고발할까 봐 조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불교에는 죄 사함 교리가 없습니다. 피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피 흘려 돌아가시면서 죄를 씻어 주셨기 죄 사함의 교리가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불교에는 피가 없습니다. 석가모니는 잔칫집에 가서 돼지고기 잘 못 먹고 체하여 죽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불교의 교리는 인과보응의 교리입니다. 그래서 불경에 이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경건하게 살아간 중이 있었습니다. 그 중은 죄를 지은 적이 없었습니다. 죽었습니다. 염라대왕 앞에서 마지막 심판을 받을 때였습니다.


행위 록을 가만히 보고 있던 대왕이 말했습니다. <3년 징역!> 그 중은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대왕님! 나는 세상에서 살면서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3년 징역입니까?>


염라대왕이 말했습니다. <정말 자네같이 죄 안 짓고 깨끗하게 살아간 사람도 보기 드물지. 그런데 이리 와 보게. XX년 X월 X일 자네가 밀밭을 지나가고 있었어. 배가 고팠지. 그래서 밀 이삭을 잘랐어. 비벼 먹으려고 하다가 ‘이것도 죄지. 남이 농사지은 것을 훔쳐 먹는 것이지’ 그리고 손을 털었어. 그런데 그 때 자네 손에 땀이 나서 3알이 묻어갔네. 그래서 3년 징역이야.>


불교도 죄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죄 사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과보응입니다.


 


▶어느 불교 교실에서 학생이 공부하다가 선생님에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선생님! 개를 죽이면 개로 태어나고, 토끼를 죽이면 토끼로 태어나는 것이 인과보응인가요?>


선생님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지.> 학생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죽이면 사람으로 태어나나요?>


선생님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습니다. 불교는 정확하게 인과보응입니다. 피가 없습니다. 그래서 죄 사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죄 사함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죄 사함의 능력입니다.


아무리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잘 하여도 죄는 닦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의사가 수술을 잘 하여도 죄를 도려 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페인트칠을 잘 하여도 죄를 페인트 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학교에 가서 공부를 잘 하여도 죄를 없앨 수 없습니다. 죄 사함을 주는 것은 오직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수영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하고 돌아와서 어머니께 자랑하였습니다.


"어머니! 저 톰이에요. 사랑하는 아들이 금메달을 땄어요?"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잘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금메달보다 네가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바란다. 내 기도제목은 네가 금메달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란다."


"어머니! 다른 어머니는 아들이 이런 금메달을 못 따와서 성화인 데 어머니는 왜 그렇게 기뻐하지 않으세요?"


"1등도 좋지만 예수 믿는 것이 더 좋단다."


서운한 마음에 그 아들은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한참을 배회하다가 보니까 자기가 수영 연습하던 곳이 보였습니다. 다이빙 연습을 하려고 높은 곳에 뛰어 올라갔습니다. 두 팔을 벌렸습니다. 십자가가 길게 늘어져 보였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제기랄! 이놈의 십자가는 물속에까지 나타나는 구먼!" 그는 기분이 상하여 다이빙을 포기하고 내려 왔습니다. 그는 무심코 수영장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수영장 안에는 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차 싶어 시계를 보았을 때 그는 또 놀랐습니다. 이미 수영장에서 물을 뺀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뛰어 내렸다면 자살이었습니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기도는 결국 아들을 예수를 영접함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야베스가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증거가 둘입니다.


하나는 자기이름이 그렇게 안 좋은 데도 불구하고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민족의 약속을 받았을 때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사래는 사라로 바뀌었습니다. 야곱의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사울은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야베스란 이름은 좋지 않은 이름입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끝까지 그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늘 기억하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야베스가 하나님께 헌신하며 살았다는 증거가 또 하나 있습니다. 동네 이름이 가난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명예스러운 데 불구하고 그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야베스란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수필에서 어느 분이 말했습니다.


"유명한 사람은 많은 데 존경 할 사람이 없다. 물은 많은 데 마실 물이 없다. 숲은 많은 데 쓸 만한 나무가 없다. 훌륭한 사람은 많은 데 존귀한 사람이 없다. 유명한 사람은 많은 데 존귀한 사람은 없다"


야베스는 유명하고 존귀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 잘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재임 시에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재임 후에 가장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는 전직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인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미국인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문기자가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귀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카터가 대답하였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주시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대통령으로 사용하려고 하신 것보다 그 후에 쓰시려고 하신 계획이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불과 4년이지만 그 후 일은 무궁하였습니다.


 


▶피는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고난이요 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원하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일본 하네다 공항 근처에 조그마한 일본 교회가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도로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그 교회가 헐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보상이 나왔습니다. 교회 재산이 생각지도 않게 엄청난 재산으로 불어났습니다. 교회에서 임원회가 열렸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제였습니다. 어느 장로님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헐렸으니 교회부터 지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된 기회에 교회를 잘 지읍시다. 멋진 교회 건물을 지으십시다."


이 때 집사님 한 분이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거저 받은 돈 가지고 교회당을 지으면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이 돈은 거저 받았으니 자선기관에 줍시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우리가 땀 흘린 정성으로 지어야 됩니다. 우리가 희생된 돈으로 교회를 지어야 합니다."


그 때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공짜로 받은 돈은 모두 불우이웃을 위하여 나누어 주고 모두 피와 땀을 흘려 헌금하여 교회를 지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교회입니까? 모두가 하나님을 멋지게 기쁘게 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믿음을 원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피의 믿음입니다.


 


▶"19세기 독일의 단막극"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돈 불>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부요한 가정에 계모로 들어간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모가 얼마나 착했든지 전실의 자녀들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 가정에는 행복의 꽃이 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뜨자마자 그 화목한 가정은 전쟁터로 바꾸어졌습니다. 재산 상속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계모는 '내 몫을 챙겨야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큰 아들은 내가 장남이 재산을 자기가 상속받아야 원칙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웃음은 사라지고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시신을 건너 방에 두고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한 자녀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싸우지? 어제까지는 화목하게 살았잖아. 화목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지 무엇 때문에 이러지? 돈 때문에 그래? 그러면 돈을 버려야지"


그때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래 돈을 다 버리자 그리고 우리 화목하게 살자"


그들은 금고에 있던 돈을 다 꺼내서 불을 질렀습니다. 그러니까 딸이 불을 쬐면서 '아, 돈 불이 따뜻하다.' 하고 말했습니다. 불을 쬐면서 서로 얼굴을 보니까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할례는 은밀한 곳에 표시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보여 줄 수 없습니다. 자기와 하나님만 아는 비밀입니다.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떠벌릴 필요가 없습니다.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누가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사이만 진실하고 되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이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1968년 북한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자녀들이 모두 월남하고 혼자 남은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반동분자로 찍히게 되었습니다. 사상이 불순하다고 체포되어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으로 전전긍긍하면서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역이었습니다. 차라리 죽였으면 좋겠는 데 죽이지 않고 고생만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수용소를 옮겨갈 때마다 이상하게도 소중히 들고 다니는 방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본 감시원이 그 방석을 찢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서 두 가지가 나왔습니다. 하나는 성경책이고 하나는 태극기였습니다. 은밀하게 간직하며 자기 신앙을 기르던 두 가지였습니다.


격노한 정치 간부는 군중을 모아 놓고 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성경책과 태극기를 불에 던지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때 그 노인은 조용히 그리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간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성경과 태극기를 저 불속에 던져라"


그러나 그 노인은 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항하였습니다. 당당하였습니다. 마침내 이 노인은 인민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과 태극기를 품에 안고 외쳤습니다.


"하나님! 이 조국에 평화를..." 그는 은밀하게 감추어 가지고 신앙 생활하던 성경과 태극기를 품에 안고 목이 잘렸습니다. 붉은 피가 하늘로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장렬하게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싱싱한 믿음을 은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남이 볼 수 없고, 남에게 보일 수도 없는 할례입니다. 누가 보자고 할 수도 없는 할례입니다. 할례 믿음은 자기만이 간직한 은밀한 믿음입니다.


 


▶영국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일 예배시간에 기도를 맡은 장로님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아 봤더니 영국 왕실의 초청을 받고 오찬에 간 것입니다. 그 다음 날 목사님께서 조용히 물었습니다.


"장로님! 무슨 일로 주일예배를 빠졌습니까?" "어제 영국 여왕께서 저를 초청하셔서 거기에 갔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당당하였습니다. 장로님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개인적으로 여왕의 초청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여왕의 초청을 받았다.'


그 때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장로님! 우리 주님께서 초청하신 오찬에 오셔야 되겠습니까? 여왕이 초청하신 오찬에 가셔야 되겠습니까?"


장로님은 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당신의 거룩한 몸을 성전으로 이루어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왕의 초청을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가셨습니까? 장로님은 거룩한 예배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셨으므로 지금부터 3 년 동안 근신하십시오. 이제 장로님은 기도할 자격이 없습니다. 장로님은 예배시간에 조용히 앉아서 회개하면서 은혜를 받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저는 늘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한번 빠지는 것은 괜찮을 것이라고 여겼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 장로님은 3 년 동안 말없이 교회에서 근신했습니다. 3년이 지나고 근신을 회복하고 그에게 기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배를 중요시여기는 믿음이 할례 믿음입니다.


 


▶어떤 사업가가 장미화원을 가꾸는 한 가정을 방문하였습니다. 이 가정 주인은 정원으로 사업가를 데리고 가서 백장미, 흑장미, 노랑 장미 등 각종 장미를 보여 주었습니다.그러더니 몇 송이만 남겨놓고 모조리 잘라 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사업가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주인은 대답하였습니다.


"많이 잘라야 좋은 장미가 핀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업가는 번 돈을 아낌없이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의 대재벌 워너 메이커 이야기입니다. 잘라야 할 것은 잘라야 합니다. 떠나야 할 곳은 떠나야 합니다.


 


▶호랑이는 확실히 동물의 왕입니다. 모든 동물은 호랑이를 무서워합니다. 동물들은 호랑이와 마주친다든지, 호랑이를 한번 보면 숨이 막히고 오금이 저리고 정신이 아찔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동포 사냥가인 강동만씨의 사냥개들은 예외였습니다. 그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의 개들은 호랑이를 보면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기가 섭니다. 자신만만하게 호랑이에게 달려듭니다.


어느 날 그는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호랑이와 마주쳤습니다. 먼저 호랑이가 노려보며 으르렁 거렸습니다. 그 소리를 신호탄으로 삼기라도 한 듯, 두 마리의 사냥개는 거침없이 호랑이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호랑이는 겁을 먹고 옆의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본래 호랑이는 나무를 타는 동물이 아닙니다. 하도 다급해진 나머지 호랑이가 나무 위에는 올랐지만 이내 나무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사냥개에게 잡혔습니다. 어떻게 개가 호랑이를 나무위로 몰아붙일 수 있었을까요?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사냥개의 뇌리에 새겨진 자아상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개는 평소에 주인에게 철저히 의지하는 훈련을 받아 왔습니다. 과거에 어떤 무서운 맹수가 달려들어도 주인이 총으로 죽이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호랑이가 앞에 있어도 달려들기만 하면 주인이 책임진다는 것을 확실히 배워 왔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덤벼 들은 것입니다. 주인에 대한 절대 신뢰가 그런 무서운 힘을 준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던 것입니다. 아무리 키가 큰 골리앗이 덤벼들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달려 든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23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