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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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
▶어느 목사님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무당처럼 열심히 기도하기만 하면 아마도 놀라운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당은 무슨 기도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한번 시작만 했다 하면 밤새도록 몸부림을 치면서 부르짖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아마비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고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활동하는 어느 어린 소녀의 기도문입니다.
'하나님! 고마워요! 오른 손으로 글씨 쓸 수 있게 해 주시고, 두 눈으로 엄마, 아빠 얼굴 볼 수 있게 해 주시고,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세계적인 종으로서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증거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런 목사님의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는데 그때 목사님이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했다고 합니다. '우리 딸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릴 수도 있었는데 목숨 잃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우리 딸이 두 다리를 다 잃어버릴 수도 있었는데 왼쪽 다리만 잃고, 오른쪽 다리가 남았으니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부인을 향하여 '여보! 우리 딸에게 성한 두 팔과 이목구비가 있지 않소, 우리 잃어버린 것은 헤아리지 말고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합시다.' 이 얼마나 멋있는 신앙인의 고백입니까?
사실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과 없는 것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리고 슬퍼하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잃어버린 것, 없는 것은 바라보지 말고 있는 것에 감사합시다. '하나님, 아직 이만큼 남아 있으니 감사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것만큼 믿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행복합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다릅니다. 감사하는 것만큼 강합니다.'
누가 진짜 믿는 사람입니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진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구별된 사람입니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진짜 강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독일과 불란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불란서의 어느 예수님을 잘 믿는 가정에 독일의 비행기가 폭격을 가했습니다. 집이 다 타고 가구하나 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웃 사람들이 와서 '다 잃어버렸군요!' 위로하고 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가고 난 뒤 남편이 부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저분들이 다 잃어버렸다고 소망이 없는 듯 말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당신이 이렇게 건재하고 아이들도 무사하고 믿음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시는데 어찌 다 잃어버렸다고 하는지 모르겠네' 그르더랍니다.
이 사람은 재난 가운데에서도 부인이 자기 곁에 있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이 하나도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했습니다. 믿음이 있고 하나님이 계심을 감사했습니다. 이런 감사를 우리 하나님이 기대하십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의 분량도 많아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하루 감사하셨습니까? 부모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축복과 은총이 있습니다.
세계 제일의 강철 왕, 유명한 미국의 사업가 '카네기'의 아내에게 남편의 성공비결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제 남편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감사했습니다. 절망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큰 일하는 사람, 인생을 생동감 있게 사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할 때에 나쁜 조건이 좋은 조건으로 바뀌고, 막힌 담을 헐어버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⑴아낌없이 주신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⑵변함 없는 사랑입니다. 영원에서 영원까지 변치 않습니다.
⑶늘 풍성한 사랑입니다. 마지못해 주는 감질내는 사랑이 아닙니다.
⑷자상한 사랑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앉고 일어서는 것까지 돌보고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들의 머리칼까지 세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나 세심한 사랑입니까?
▶믿음의 사람, 감사의 사람, 십일조의 사람, 석유의 왕이었던 록펠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재벌 록펠러가 우리나라 돈으로 약70억 원을 십일조로 바치면서 '만일 내가 내 첫 월급 6달러에서 십일조 60센트를 천국 밭에 심지 않았다면 내가 오늘날 70억 원을 십일조로 바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간증했습니다.
그런 록펠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광산업에 손을 대었다가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친구에게서 금광을 하나 인수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이미 캐내 갈 금은 다 캐내 갔습니다. 찌꺼기만 남았습니다. 폐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은행에서 계속 빚 독촉은 날아옵니다. 또 광부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니까 그들이 폭도처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는 결심을 하고서 광산 속 깊은 데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그리고 결심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마음으로 식음을 전폐하면서 기도의 깊은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깊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 깊이 파라. 때가 되면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하면 아무리 깊게 파도 금이 나올 것 같지는 안았습니다. 그러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베드로가 듣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을 때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축복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서 록펠러는 광부들을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깊이 파내려 갔습니다.
한참 파내려 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펑!>하면서 검은 물줄기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흔한 지하수와는 달랐습니다. 분석해 보니까 석유였습니다. 유전이 그곳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록펠러는 미국의 석유 왕이 되었습니다. 당대 세계에서 제일가는 갑부가 된 것입니다. /할/
그런 그가 죽을 때 자손들에게 유언하기를 '나의 모든 사업은 십일조 축복으로 된 사업이니 너희는 이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사의 교훈으로 삼아라'고 유언함으로 지금도 록펠러재단에는 십일조만 계산하는 십일조 국이 있답니다.
▶D.L. Moody라는 유명한 전도자가 대서양을 배를 타고 건너가는데 불이 났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게스에 물을 받아 나르며 불을 끄고 있었는데, Moody도 사람들 틈에 끼어 불을 끄고 있었습니다. 같은 일행중 한 사람이 "Moody 선생님, 선생님은 물을 붓지 마시고 저기 구석에 가셔서 하나님께서 불을 꺼주시도록 엎드려 기도하세요"라고 말하자 Moody는 "아닐세 나는 지금 물을 길어 나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겠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도와 행동을 같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역과, 맡는 청지기의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할 때 때로는 뜻하지 않는 오해도 받고 비난도 받고 우리가 조롱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령님께서 나를 온전히 주장하심으로 능력 있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Barbara Johnson여사는 남편과 네 명의 아들을 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 5년사이에 셋째아들이 월남전투에 파견되어 3개월만에 18살의 젊은 나이에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경찰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기쁨에 가득 차 있던 첫째아들이 음주 트럭에 치어 죽게 되었습니다.
또 얼마 후에 가장 사랑하던 둘째 아들이 동성연애자가 되어 애인과 함께 집을 나가 소식이 없게 되었습니다. 존슨여사는 욥과 같은 시련을 당하면서 왜 나에게 이 불행한 일들이 하나도 아니고 소나기처럼 많이 부어지는가 생각하며 자신과 세상과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원망하고 불평해 보았자, 오히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욱 비참해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존슨여사는 자기의 운명과 필자를 탓하고 환경을 원망하기보다는 주어진 삶의 문제에 대하여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했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하는 적극적인 삶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간호를 통해 식물인간이던 남편이 기적적으로 회복되는 기쁨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처럼 아들을 월남전에서 잃어버린 부모들을 돕는 기관을 만들어 그들을 향한 전화상담센터, 신문을 발간하는 등 봉사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음주 운전자에 대한 더 엄한 벌칙을 가하는 입법개정운동을 벌리면서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부모를 돕는 기관도 설립하여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동성연애로 둘째 아들을 잃어버린 것에 절망하지 않고 동성연애자를 자녀로 둔 사람들의 중보 기도회를 조직하여 함께 기도 네트워크를 설치하고 필요한 정보를 나누는 기관도 그녀는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존슨여사는 자기의 체험을 책으로 출판하여 미국에서 유명한 여류인사가 되었고 각처에 초빙을 받아 세미나 강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동성연애자인 아들을 향한 존슨여사의 11년 간의 기도가 응답을 받아 아들이 homosex의 삶을 청산하고 회개한 후 예수님을 영접하고 가정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비관적으로 자기신세만 한탄하고 있었더라면, 이러한 기적의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나, 그녀는 환경에 도전했고 믿음으로 일어나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존슨여사는 "인생에서 고통은 피할 길이 없으나, 그 고통 때문에 비참하게 되는 것은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지구촌의 변화에 가장 크게 몰아쳤던 세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화시대입니다. 이제는 이 세계화가 얼마나 실감이 있느냐 하면 우리 스스로는 이제는 식생활도 안됩니다. 우리 식탁에 들어와 있는 이 세계의 농산물, 축산물, 우리가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 이 모든 환경이 이제는 세계의 것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것도 세계로 다 나갑니다. 이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세계가 한 가족이 되어 있습니다. 세계화에 아무도 역행을 할 수가 없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고령화시대입니다. 지금 고령화시대를 우려하고 염려하던 때가 15년 전입니다. 15년 전의 미래학자들이 고령화시대를 많이 예언을 했는데 이제 도래했습니다. 이제 고령화는 우리 사회의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현상으로 다가옵니다. 지금까지는 고령화도 고령화대로 그대로 별 영향이 없었지만 이제는 가정마다 노인 때문에 돈을 써야 되고 시간을 써야 되고, 우리 사회의 에너지가 노인 때문에 이제는 소모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도래 하였습니다. 이제는 노인병원이 필요하고 노인을 위한 온갖 프로그램이 따라와야 되고 교회도 노인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향후 10년을 내다보면 이 고령화시대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양태로 다가옵니다. 고령화가 점점 가까이 우리 사회에 큰 이슈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전문화시대입니다. 이제는 전문화가 안 되면 살지를 못합니다. 전문화가 안 된 사람들은 이제는 다 밀려납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이제는 쓰레기를 치워도 전문성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아무렇게나 해 가지고는 일이 안됩니다. 이런 상황으로 지금 세 가지 경쟁을 하고 있고, 이 지구촌이 이 세 가지 때문에 지금 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굴러가고 있습니다.
첫째가 부요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돈벌이를 추구하는 욕구, 잘 살아보겠다는 욕구가 온통 이 지구촌에 생존경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고 실제로 부자들이 많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요의 욕구가 우리 사회에 지금 굉장합니다. 두 번째는 휴가문화입니다. 어떻게 하면 휴가를 값비싸게 고품질로 할 수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사업하는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호텔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펜션이 많이 들어서서 신혼부부들이 펜션으로 많이 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고급정보화 시대라는 것입니다. 국가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고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고급정보를 얻는 것이 생사가 걸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세 가지 R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일수록 이것이 더하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북한을 이기는 길은 북한에 대한 고급정보입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고급정보가 우리에게 주도권이 있는 게 결코 아닙니다.
▶문호 빅토르 위고는 인생을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오늘의 문제는 생존과 싸우는 것이다.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생은 마지막 날에 다 죽음으로 가는 것이다.'
이 문호가 관찰했던 것은 인간이 사는 것은 전부 생존싸움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승자와 패자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승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인생의 패자가 됩니다. 그러나 결국은 다 죽음으로 갑니다. 이겨 봐도 별 것 아니고 져 봐도 별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아공은 만델라 이전에 흑인지배 사회입니다. 그 때 일어났던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대법원장인 올리버경이 자기 집에 흑인 하인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성찬식을 하는 주일날, 그 흑인들이 섬기는 시온성 교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마침 세족 식을 거행하는데 이 지체 높은 백인 대법원장 올리버경이 자진해서 그 흑인 여자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는 떳떳하게 대답했습니다. '저 여자는 우리 집의 하인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발을 평생동안 씻겨준 여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배드리는 이 시간 내가 저 여자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마음에 느꼈기 때문에 내가 나가서 씻어 주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때문에 대법원장에서 파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백인지배 사회에서 흑인의 발을 씻기는 대법원장의 행위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1968년도에 제가 첫 전도사로 한산도의 섬 지방에 부임을 했습니다. 60가구 정도 되는 조그마한 섬 동네입니다. 한산도 본도가 있고, 거기서 또 떨어져 있는 조그만 섬들이 수 십개가 있는데, 거기의 한 교회에 제가 부임을 했습니다.
네 가구가 예수를 믿고 어른이 전부 10명이고, 아이들이 30명 정도 되는 섬 교회였습니다. 가보니 그 교회 사연이 아주 극적이었습니다. 섬에 있는 조그만 교회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다는 사실 앞에 교회가 존경스러웠고 그 교회를 예사로 보지 않는 눈이 열렸습니다.
초라한 초가집을 헐어서 예배당처럼 보이지 않는 그 교회를 세운 집사님은 뱃사공이었습니다. 한산도 본도와 지섬을 연결하는 나루를 건네주는 뱃사공이었습니다.
하루는 낯선 사람이 탔는데 이 사람은 떠돌이 전도사입니다. 옛날에는 떠돌이 전도사가 있었습니다. 이 전도사가 그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면서 뱃사공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바다의 주인이요,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고, 참 신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용왕은 절대 참 신이 아닙니다. 이 섬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은 다 거짓입니다. 참 신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는 그것이 마음에 새겨져서 저 본도의 먼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살던 집을 헐어서 기도 소를 만들었는데 한 사람, 두 사람 동조해서 제가 거기 부임했을 때는 4가구가 예수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그 교회도 감당하기 어려운 환난을 겪었습니다. 예수 믿고 제일 어려운 것은 정월 대보름날 용왕제를 지내는데 거기에 경비를 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는 우상 숭배하는데 돈을 낼 수 없다' '계명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에 돈을 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동네사람들이 분노해서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주일 날 예배드리는데 돌멩이질을 하고, 문이 부서지고, 심지어 동네를 떠나라고 협박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동네에 한 사건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사라호 태풍'이 그 동네의 아름드리 나무가 되는 당산나무가 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동네 길을 막은 것입니다. 큰일났습니다. 동네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동네사람들은 그 나무를 치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 나무에 손을 대면 벌을 받는다고 아무도 나무를 치우지 못합니다. 감히 그 나무에 톱질을 못합니다.
그 때 교인들이 우리가 치우겠다고 나섰습니다. 우리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는 당신들처럼 그런 두려움이 없으니 우리에게 맡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를 며칠을 걸려서 톱질을 해서 장작을 만들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동네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저 예수 꾼은 건드리면 안 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냥 두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용왕제 경비를 내지 않는 핍박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이름 없는 뱃사공 한 사람이 그 동네의 교회에 복음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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