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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아버지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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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목회자로서 헌신해 오셨고 지금은 목회 일선에서 은퇴하신 일흔 일곱(77) 연세의 할아버지 목사님이셨습니다.수 년 동안 제가 성대의 정상적 기능을 잃고 연약한 가운데 있다는 소식을 쪽지를 통해 읽으셨다며 당신께서 겪으신 모든 경험과 오랫동안 쌓아 온 한방 치료법을 총동원하여 편지지 앞뒤로 빡빡하게 한방 처방 20여가지를 상세하게 적어 보내셨습니다. 그러면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그런데 얼마후 뒤이어, 저를 위해 당신께서 친히 주문하여 제조하셨다는, 성대를 위한 환약(丸藥) 한 박스가 그 목사님께로부터 날아왔습니다. 거기에다 또 다른 처방 열 몇 가지도 함께 적어 보내셨습니다. 그뿐입니까 그 다음 주간에는 그 연로하신 몸으로 안양에서 대전으로 아예 직접 찾아오신 겁니다. 저를 꼭 끌어안으시고는 너무 염려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몸조리 잘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무엇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하셨습니다."자, 이건 아이스크림이고, 자 이건… 우리 사모님 좋아하시는 피자, 그리고 이건 우리 로아 장난감, 이건 최선생님 위한 펜... 이건 안 번지는 볼펜이예요. 글쓰는 분이시니까..."울컥 목이 메었습니다. 일흔 일곱이나 되신 할아버지 목사님께서 이제 겨우 서른 중반인 저에게 민망할 정도로 깎듯이 존칭을 쓰시는 것, 생면부지의 한 가족에게 베푸시는 그 따뜻하신 사랑, 대전까지 친히 찾아오신 그 은혜, 쪽지에 농담처럼 스쳐 지나가듯 적은 내용을 잊지도 않으시고 제 아내를 위해 피자까지 챙겨 오신 섬세한 배려... 그 하나 하나가 전부 말입니다.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고는 하나 살아오신 생의 연륜을 어찌 감출 수 있으시겠습니까 일흔 일곱이신데... 그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마치 손자네 집을 찾아가시듯 눈물겹도록 사랑이 가득한 선물 꾸러미를 들고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대전의 한 젊은이네 식구들을 친히 찾아오신 할아버지목사님..."물론 교회 목회 일선에서야 오래 전에 물러났지만 제에겐 '은퇴'라는 거 없어요. 주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진 열심히 일해야지요. 아직 넉넉히 다닐만 하니까 다니는 겁니다."당신의 생애엔 '은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노 목사님! 함께 사무실에 있던 어느 자매가 오랫동안 허리의 통증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무섭게 당신이 들고 다니시는 가방을 탁자 위에 올려 놓으셨습니다. 뚜껑이 열린 그 가방 안에는 놀랍게도 온갖 종류의 침구가 다 들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목사님께선 사무실 방에서 무려 30분이 넘도록 온 정성을 다 하여 그 자매의 허리와 손발에다 침과 뜸을 놓으셨습니다."우리 주님께서도 하늘의 복음도 전하셨지만 몸이 아픈 사람들도 직접 고쳐 주셨지요. 나도 주님처럼 목회하고 싶어서 오래 전부터 한방 치료법과 침술을 조금씩 배웠던 게요."그런 후 목사님께선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저희가 드리는 2만원의 교통비 조차 완강히 거절하시면서! 나중엔 화까지 내시며 "이러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입으신 양복은 족히 10년은 넘은 듯 보였습니다. "다들... 건강히 잘 있으세요"라며 저희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하시곤 떠나가시는일흔 일곱의 백발 할아버지 목사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제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습니다.세상엔 오직 먹고살기 위해서 혹은 오직 돈벌이만을 위해 어떤 기술을 익히고 배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평생토록 자신들의 재능과 기술을 오직 수입 몇 푼과 맞바꾸며 살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엔 오직 이웃들을 돌보고 섬기기 위해서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쓰려는, 그 할아버지목사님 같은 분도 계십니다. 가능만 하다면 '거저' 나누고 싶어 몸부림치는 이런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입니다. 은퇴 목회자로서 생활비도 여의치 않으실 텐데 얼마간의 용돈을 모으셔서 저 아랫고을 무명의 한 젊은 형제를 위해 친히 환약을 지어 보내시고, 아이스크림 다섯 개와피자 두 판과 딸랑이 강아지 인형과 안 번지는 볼펜 셍트를 사들고 대전까지 찾아오신 일흔 일곱의 할아버지 목사님...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노라니 그동안 얼마나 제가 이해 타산적이고 쩨쩨하게 살아 왔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아... 주님처럼, 천사처럼 홀연히 다녀가신 겸허하신 노(老)목사님! 저희 쪽지를 인식하시곤 당신 이야기는 절대 적지 말라며 신신당부하셨지만 이 못난 젊은이는 넉 달을 참고 참다가 거역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웃과 나누지 않으면 더 큰 죄가 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목사님, 용서하십시오. 주님도 이해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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