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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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후기인 헌종때의 일이다. 왕의 외숙이 안질이 있어 안경을 낀 채임금 앞을 지나쳤던 것 같다.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낀다는 것은 대단한 불경으로 쳤던 시대인지라 임금이 노하여 말했다. "외숙의 목이라고 해서 칼이들지 않을꼬--" 하고. 이 말을 전해들은 외숙은 며칠간을 밥을 못먹고 고민하다 자결하고 말았던 것이다. 고종과 후에 순종이 되는 황태자의 사진을 처음으로 찍은 것이 영국 할머니 탐험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였다. 그녀가 써남긴 것을 보면 순종은 극심한 근시안으로 부축을 받을 정도였으나 예법상 안경은 낄 수 없다 하니 딱하기 이를데 없다 했다.한말 조선의 외부 협판(차관)에 고용되어온 독일인 묄렌도르프는 안경없이는 더듬거릴 정도로 심한 근시안이었다. 하지만 고종을 배알할 때 그는 안경을 벗고 들어갔다. 비틀거리는걸 보고 고종은 안경을 끼라고 권했지만 예의가 아니라면서 끝내 안경을 끼지 않았고 그것으로 고종의 신임을 톡톡히 받았던 것이다.서재필이 미국서 돌아와 러시아 공사관에 파천해있던 고종을 배알하고 대궐로 돌아갈 것을 간청했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친로파들은 서재필을 모략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략자료가 바로 안경이었다. "서재필은 황제를 뵙는데 안경을 낀채였다 하여 조정이 그 불손무도에 분통해 했다" 는 것이다.임진왜란때 명나라의 사신인 심유경과 왜승인 현소가 많이 늙었음에도 안경을 끼고 잔 글자까지 거뜬히 보아넘기는 것을 보고 조야가 감탄 했다는 [지봉유설]의 기록이 우리 나라에 있어서 안경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아닌가 싶다. 제주도 정선현감 이종덕이 풍파를 만나 일본 랑가삭기(장기)에 표착하여아란타인(네덜란드 사람)들이 안경 끼고 다니는 것을 보고 벌눈에 게눈깔(봉목해정)을 하고 다닌다고 적고 있을 정도로 신기한 물건이었다. 한데 이미 선조의 하사품 가운데 안경이 들어있고 순조 중엽에는 시정에서 안경을 파는데무려 그 종류가 30여가지나 된다고 했다.정승으로는 남구만이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빠 안경을 꼈으며, 김득신 이나혜산의 그림 가운데에도 안경을 낀 이가 등장하고 있다. 완당 김정희는 연행길에서 돌아오면서 이것을 끼면 대낮에도 별이 보인다는 극상품의 안경을 사오기도 했다.지금 우리 조상들이 껴내린 각종 안경을 비롯 안경집, 안경장식 등 3백22점의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다 해서 한국의 안경문화와 역사를 더듬어 본 것이다.- 1996. 8. 1. 이규태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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