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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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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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화가 나도 보통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아이는 김장김치 절여놓은 듯 바짝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이유인 즉은 오늘도 아내가 한나를 데리고 집에 오기 위해 유치원에 가보니 아이의 얼굴이 마구 쥐어뜯겨져 있었습니다. 깊이 손톱으로 패인 자욱이 역력했지요. 유치원교사의 아들이 아이들의 얼굴에 흉측한 손자욱을 내는데 한나도 몇 번 당하더니 오늘은 된통 걸린 것입니다.그런데 유치원교사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며 아내는 분통을 터뜨렸고 급기야 그 불똥은 아이에게로 떨어졌습니다. 이제 아내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화끈 놀랐습니다. 물론 나도 아내의 속상함과 분노에 동의했습니다.그러나 나는 목사입니다. 내 자신의 생명보다 아이가 더욱 중요하지만 마구 뜯겨진 얼굴의 상처 때문에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나는 운명적으로 얻어터지는 것이 임무로 되어있는 목사입니다.{아, 안돼. 넌 안돼. 너는 절대 다른 아이에게 상처를 내거나 피해를 입혀선 안돼. 넌 목사 딸이야.}깜짝 놀라 그렇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 말이 사실 어디 쉬운 일입니까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사딸로 태어난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감내하라고 말하기에 한나는 너무 어렸습니다. 목사가 아니라 아빠로서 가슴이 한켠 무너지고 있었습니다.저녁 늦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무릎 꿇었습니다.그래도 내 자식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당하고 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 딸이 억세고 못되어서 남의 아이 얼굴에 상처를 내고 그로 인해 그의 부모들이 집앞에라도 와서 시위라도 벌일량이면 어쩌란 말입니까오히려 상처난 얼굴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주님을 닮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렇듯 가장 소중한 곳에 작은 흔적(Stigma)들을 남기며 살아가는 건지 모릅니다.<정학진 목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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