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화(충성)
본문
설교 예화(충성)
▶계2: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서양역사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의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한번은 알렉산더 대왕이 전쟁에 패하여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왕이 전쟁에 패하고 도망을 가야 하니 얼마나 가련한 신세가 되었겠는가?
그때 다른 군사들은 슬금슬금 자기 살 곳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도망을 가면서 말안장에 무거운 짐을 실어 사병 하나에게 끌고 가게 했습니다. 그 짐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금덩이였습니다.
얼마 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 전쟁에 크게 승리하여 나라를 되찾고 부귀영화를 다시 회복했을 때 왕은 그 병사를 불렀습니다. 왕은 그 병사를 칭찬하고 그 병사가 짊어지고 왔던 짐을 전부 병사에게 주었습니다. 금덩이가 담긴 짐이었습니다. 끝까지 충성한 자에게는 보상이 있는 법입니다. 오늘도 끝까지 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파나이섬에서 선교하고 있는 동생 강요한 선교사와 함께 50여명의 선교사를 대접할 일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대형 버스에 모시고 나는 승용차로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 버스에서 나오는 매연이 무척 심해 나는 강요한 선교사 운전기사인 현지인에게 버스를 추월, 앞장서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 강선교사가 뒤따라오라고 하였다면서 결코 앞장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주인의 형이라고 말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주인이 말한 대로 뒤에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차가 멈추었을 때 동생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자 동생은 웃으면서 이 기사는 자기 말 외에는 누구 말도 안 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이면 화단에 물을 주라고 하였더니 비가 오는 날에도 물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만 고지식하게 들었던 아브라함이 생각났습니다. 명령대로 아들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강문호 목사(갈보리선교교회)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는 40대에 들어서면서 찬란한 부흥 시대를 맞이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들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자, 그의 목회는 예전만큼 눈길을 끌지 못했고 영광의 시대는 흘러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존 녹스는 이런 일기를 썼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일굴 것이다. 그러면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다시 불을 붙여주실 것이다. 하지만 불을 붙여주시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나는 계속 밭을 갈 것이다."
언젠가 존 녹스는 분명히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 25:21).
그렇다. 존 녹스는 그가 이루어놓은 커다란 일에 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은 일들에도 성실했음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일주일이나 이 주일에 한 번 씩 심한 운동을 하는 것은 그보다 덜 힘든 운동을 매일 하는 것보다 효과가 적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성실함은 결승선을 향해 뛰는 마라톤 선수와 같다. 수십 킬로미터 내내 타박타박 뛰어가는 마라톤 선수는 사실 단거리 선수만큼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달리기를 한다. 그리고 마라톤에서는 끝까지 견디어낸 사람이 상을 받는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의 아우 복호(목호)가 왜인에게 잡혀가자 망명객으로 가장하여 일본에 들어가 복호를 탈출시키고 자신은 잡혔다. 박제상의 학문을 높이 산 일본 사람들이 그에게 귀화를 권했으나 그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대나무 창을 밟게 하고 인두로 몸을 지지는 고문을 하면서 귀화를 하라고 협박하는 일인들에게 그는 "나는 신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일본의 벼슬은 하지 않겠다. 나는 조국의 겨를 먹을지언정 일본의 좋은 음식은 먹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인들의 심한 고문과 회유를 물리치고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한편 그의 아내 미사흔은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고 한다.
▶기원후 79년에 이탈리아의 폼페이 근처에 베스비우스 산이 용암을 내뿜어서 폼페이 시 전체를 완전히 페허로 만들어 버렸다. 그 후 고고학자들이 폼페이 시가지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발굴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모습이 하나 발굴되었는데, 그것은 폼페이 성의 문을 지키는 보초병이었다. 그는 그 도시의 성문 앞에 무기를 손에 들고 부동자세를 한 채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런던에 있는 미술관에 가면 이 군인을 모델로 해서 그 당시의 어지러운 모습을 그려놓은 유명한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다. 그런데 그 그림 아래에는 "충성"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관연 그렇다! 주위의 그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바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든지 또는 저렇게 하든지 그것에 관여할 바가 아니다. 또 남들이 알아주든지 몰라주든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은밀히 보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알아주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서서 충성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충성된 자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을 것이다.
▶어떤 마차부가 주인 가족을 동반하고 깊은 산림 지대를 마차를 몰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 갈 때에, 말들이 갑자기 놀라면서 앞으로 마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마차부가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뒤에 짐승들이 여러 마리 따라 옵니다.
그 마차부는 그것이 이리 때인 것을 금방 알고, 네 필의 말에 더욱 채찍질을 가하며 동리를 향해 달립니다.
그렇지만 이리처럼 빨리 달릴 수 없었다. 얼마쯤 가다 보니 이리떼가 점점 가까이 오는 데 몇 마리가 아니라 여러 수십 마리가 따라 옵니다. 맨 앞에 달려오는 놈을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그래도 잠시뿐 또 가까이 다가옵니다. 이 마차부는 생각다 못해 말 가운데 한 마리를 떼어 놓아 다른 방향으로 달음질 시켰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쫓아서 달려가 잡아먹었습니다. 잠시의 시간을 얻었을 뿐 계속 이리 때들이 달려옵니다. 할 수 없이 또 한 필의 말을 떼어 내었습니다. 그러자 이리떼들이 달려들어 잡아먹고는 계속 쫓아옵니다. 저 멀리 동리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으나 동네에 도착하기 전 이리떼에 모두 다 희생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말을 떼어 낼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마차부는 주인에게 "이 말을 몰아서 빨리 동리로 들어가세요, 나는 저놈들과 싸우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급히 마차를 보내고 뛰어 내렸습니다. 주인 가족은 무사히 동리로 들어갈 수 있었으나 마차부는 총탄이 다 떨어 질 때까지 이리 떼와 싸우다가 희생되었습니다.
이렇게 이 마차부는 자기의 주인가족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쳤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희생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거룩한 사랑입니까?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옛날 한 마을에 병약한 부자와 건강한 가난뱅이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몹시 부러워했다. 신은 두 사람의 소원을 받아들여 서로의 모습을 바꿔주었다. 부자는 건강한 가난뱅이가, 가난뱅이는 병약한 부자가 됐다. 시간이 지나 가난뱅이가 된 '부자'는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돈을 벌어 곧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던 습관 탓에 결국 몸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병약한 부자가 된 '가난뱅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시 가난해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돈을 물 쓰듯 써버렸고 다시 가난뱅이가 됐다. 그러나 그 사이에 모든 질병은 말끔히 사라졌다. 어느새 두 사람은 예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칭찬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멀찌감치 선 채로 웃고 있어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남들은 다 그 사람을 칭찬하는데 당신 혼자서 비웃고 있는 것 같아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아무리 말 주변이 없더라도 자신이 칭찬해주고 싶은 사람에게 칭찬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용기만큼은 있어야 한다. 칭찬의 말이 반드시 길고 장황해야 할 필요는 없다. 정말로 감동 했을 때 나오는 말은 의외로 짧고 간단한 것이다.
칭찬은 사람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칭찬은 새로운 일을 하게 한다. 칭찬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모두 긍정적인 성품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모간 블레이즈라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이 있다. 나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국가, 그리고 어떤 조직도 파괴할 수 있고, 수많은 사람을 파멸 시킬 수 있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한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무력하고, 아무리 깨끗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더럽다. 나는 바다보다 더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으며, 나는 결코 망각하지 않으며,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내 이름은 비난이다.”
현대 사회의 비난은 말 또는 글을 넘어서 인터넷으로, 방송으로 퍼져 나갑니다. 사회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비난을 사용하고, 자신이 내뱉은 비난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는 잊지 말아야 할 책임이라는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무책임하게 내뱉은 비난의 한마디, 그것은 살인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음악사를 살펴보면 어느 국가이고 음악을 전쟁에 사용하지 않은 국가는 없다. 예로서 중공군들은 전쟁을 할 때 피리를 불고 징을 치며 전투에 임하는데 이것은 약하여진 병사들의 마음을 고무시키고 격동시켜서 그들의 마음을 강하게 만들어 싸우도록 한 사례이다.
또한 음악은 인간의 마음을 약하게도 만든다. 신라시대 때의 일이다. 적군과 전쟁을 할 때에 이쪽의 병사의 수는 적군의 절반도 못 되었다. 도저히 승전의 가망이 없었다. 영리한 장군이 피리를 잘 부는 부하를 골라서 적진이 가까운 곳에서 처량한 음악, 고향생각이 나는 애닮은 곡조를 불도록 하였다. 이 피리 소리를 들은 적군의 군사들은 모두 고향을 생각하고 부모, 처자를 생각하면서 전쟁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음악은 인간을 강하게도 약하게도 하는 예술이다. 십자가의 군병인 성도들에게도 찬송을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탄과의 영적전투에서 찬송은 우리의 큰 힘이 되며 강력한 무기가 된다. 찬송은 우리의 연약해진 영적 전투력을 새롭게 고취시키는 은혜가 되기도 한다.
▶싱가포르가 주변 국가들에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왜? 주변의 어려움을 이용해 이익을 챙겼기 때문이다. 분노한 주변국들은 교류를 끊으려고 한다. 싱가포르는 경주 최 부자의 교훈을 들었어야 한다. 경주 최 부자는 300년 동안 부를 이어온 가문이다. 그 가훈 중에 하나가 ‘흉년 때 남의 땅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치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남의 아픔을 이용하지 않고 품어주는 것이 친절한 인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가면 신문왕 허스트가 지은 거대한 저택 허스트 캐슬이 있다. 1919년부터 20년이나 걸려 지은 집으로 방만 160개가 넘는다. 이런 집을 섬기는 데 사용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3대도 잇지 못하고 지금은 20달러 받고 구경시켜주는 관광지가 되었다. 친절을 베풀지 않는 부는 썩는다.
건강한 인격은 친절하다. 비굴하거나 무례한 극단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너무 비굴하다.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다. 너무 비굴한 것은 옳지 않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너무 무례하다. 일종의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건강한 인격은 비굴도, 무례도 아닌 친절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상대방을 숭배(Worship)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존경(Respect)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옳은 일이다. 정당하게 상대의 문화에 대해서 존경해주면 상대도 우리를 존중해준다. 이것이 친절의 힘이다.
어떤 여대생이 친구 소개로 남자를 만났다. 별로 마음에 드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여대생이 마음에 들었다. 초콜릿도 주고 의자도 빼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나 여대생은 그런 남자의 행동이 느끼하기만 했다.
어느 날 6층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쉬려고 밖에 나왔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런 날은 커피가 생각난다. 그런데 6층의 커피판매기가 고장이 나 있었다. 좀 후진 학교였는지 커피판매기가 1층과 6층에만 있었다. 1층까지 내려가기 귀찮아서 여대생은 다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그 남자가 쏜살같이 1층으로 뛰어 내려가 커피 두 잔을 들고 올라왔다. 하도 빨리 뛴 탓으로 커피가 쏟아져 손목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화상을 입은 듯한 손으로 커피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네게 뜨거운 커피를 주려고 뛰다가 많이 흘렸어. 그럴 줄 알고 두 잔을 뽑았지. 두 잔을 합치면 한 잔이 될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대생은 두 가지를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그 남자를 미워할 수 없었고 두 잔을 합쳐 한 잔으로 만들 수 없었다. 반잔의 커피를 나눠 마시다가 교제가 깊어지고 나중에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친절은 얼어붙은 마음도 녹이는 힘이 있다. /전병욱 목사(삼일교회)
▶미국에서 세탁소로 성공한 그리스도인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그 땅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자 세탁소를 하면서 수입의 일부분으로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세탁소를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이전 모습과 비교하면 지금의 모습이 너무 한심하고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맡겨진 세탁물의 안주머니에서 2천 7백 달러가 발견되자 그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하는 일도 힘들고 자존심도 상하는데, 이제는 시험거리까지 생기는군."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그 세탁물의 주인이 오자 그 사람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왜 이런 것으로 나를 시험하는 거요?"
얼마 후 세탁물 주인은 이 사람을 다시 찾아와 세탁 공장의 운영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 세탁물 주인이 항공사의 부사장이었던 것이다. 결국 세탁소의 주인은 현재 700명의 직원을 고용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이는 정직의 힘이다. 정직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삶이 힘들다고 기준을 낮추지 말라 이러한 일상의 일들을 통해 주님의 모습이 드러난다. 진정한 영성은 일상에서 증명되는 것이다. /박호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는 순간만은 이타적이 된다. 사랑하는 순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사랑에 빠지면 자신의 것과 사랑하는 사람의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자신이 것을 다 퍼주지만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상대가 웃으면 자기도 웃는다. 상대가 울면 자기도 운다. 상대의 불행은 곧 나의 불행이다. 상대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다. 자기를 잊고 온전히 상대를 위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상태가 바로 사랑이다. 이것은 일종의 신비체험이다.
인간의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행위는 사랑인 것이다. 목회를 하면서 사람의 행동 방향이 바뀌는 예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회개이고 둘째는 사랑이었다. 회개하면 바뀐다. 인생이 유턴한다. 또 사랑하면 바뀐다. 자기 것을 잊고 남을 위해서 살아간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을 보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한다. 온전한 사랑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사랑이 없을 때는 오로지 ‘부분’에만 반응한다(고전 13:9). 그러나 온전한 사랑을 알게 되면 전인격에 반응하게 된다.
어떤 여자가 좋은 여자인가? 빠지게 만드는 여자는 좋은 여자가 아니다. 꽃뱀이다. 좋은 여자란 그 여자를 만남으로 해서 나를 자각하고 나의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여자이다. 좋은 남자는 누구인가? 그 남자를 만나서 빠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비족이다. 그 남자를 만남으로 해서 나를 자각하고 내가 여자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남자가 좋은 남자이다. 수가성의 여인은 아침에 우물가에도 나오지 못할 부끄러움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예배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예수님은 대화를 통해서 예배에 대한 열망이 있는 좋은 점을 드러나게 하셨다. 여인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사마리아 전역에 좋은 소식을 알리는 메신저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린 창기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속에 헌신과 사랑의 가치를 드러내어 가장 고귀한 여인으로 변화시키신다. 삭개오는 일반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는 세리장이었다. 그런데 그의 열정과 믿음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의 집에 들어가기를 청한다. 그리고 그의 회개의 고백을 듣고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선언한다. 가치와 장점과 가능성을 드러내는 좋은 영적인 거울의 역할을 한 것이다. 사랑만이 사람을 성장케 한다. /전병욱 (삼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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