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화(소돔과 고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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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소돔과 고모라)
▶어떤 사람이 부자이며 구두쇠 집에서 은수저를 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 두 개를 갖다 주었습니다. 부자가 웬 일이냐고 묻자 그 동안 새끼를 낳았다고 말했습니다. 구두쇠는 좋아라 받았습니다.
그 후 그 사람은 그 부자에게 와서 은잔을 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안심하고 빌려 주었더니 얼마 후 두 잔을 가지고 왔습니다. 역시 새끼를 낳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두쇠는 또 받았습니다. 얼마 후 그는 금시계를 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구두쇠는 좋아서 또 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달라고 하자 그는 시계가 죽었다고 말하면서 주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시계가 죽을 수 있소?> 그가 말했습니다.
<은 수저가 새끼를 낳고, 은잔이 은잔을 낳는 데 시계가 안 죽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하셨습니다.
▶덴막이 전쟁에 지면서 좋은 국토를 빼앗겼습니다. 모두가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달가스에게 하나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밖에서 잃은 땅을 안에서 찾자> 그래서 달가스는 국민들에게 밖에서 잃은 땅을 보고 슬퍼하지 말고 안에 있는 나쁜 땅을 개발하여 사용하자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덴막은 산이 없는 나라입니다. 산이 없으니까 강도 없습니다. 달가스는 여기 저기에 물을 개발하였습니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바람을 막고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농업국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쓰실 사람에게 남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먼저 본 사람이 앞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쓰실 사람에게 먼저 보여 주십니다. 국가적으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을 통하여 남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앞서 일하게 하십니다.
그 사람이 그 교회에 있기에 그 사람을 통하여 그 교회에 되어질 일을 미리 보여주심으로 그 교회에서 앞서 가게 하여 주십니다.
바울에게 유럽 복음화의 시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게도냐입니다. 바울은 먼저 보고 먼저 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미리 가서 고급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부유하게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루디아는 깨달았습니다. 바울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그 곳에서 유럽 최초의 교회 빌립보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위대한 출발이었습니다. 유럽 복음화의 싹이 루디아의 집에서 피어나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먼저 본 사람이 앞서게 됩니다.
▶1945년 8월 15일,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광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때 남한 땅에서는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해서 정부수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땅에는 공산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정부수립을 준비하면서 최 측근에 있는 한 사람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은밀한 가운데 그를 평양으로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해외에서 40년을 살아가는 동안에, 조국 땅에서 우리 동포들이 일제치하에서 고통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오. 그러나 평양 산정현 교회 장로인 고당 조만식 선생이 우리 민족의 앞장을 서서 우리 동포들을 이끌고 일제와 맞붙어 싸운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내가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소. 이제는 우리가 해방을 맞이해서 우리 힘으로 속히 정부를 수립해야 되니까, 민족의 지도자인 고당 조만식 선생을 서울로 모시고 오시오.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쳐서 일해야 되지 않겠오?"
이승만 박사의 보냄을 받은 사람이 평양에 있는 고당 선생을 비밀히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그는 고당 선생을 서울로 모셔가기를 원했습니다. 그 때 고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필요해서 나를 데리러 와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오. 그러나 지금 이 북녘 땅에는 공산정권하에서 신음하는 내 동포가 일천 만 명이 살고 있소! 어떻게 그들을 내버려두고서 나 혼자 편하겠다고 서울로 갈 수 있겠소. 안될 말이오. 나는 갈 수가 없소. 그리고 내가 여기에 남아있어야 공산당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지를 못한다오."
고당은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도 그를 존경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 걸쳐서 그를 구출해 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당 선생은 그 때마다 번번이 거절을 했습니다.
"그럴 수 없소. 나는 내 동포들을 이곳에 남겨 두고 나 혼자 서울로 갈 수 없소. 나는 살아도 이곳에서 내 동포들과 더불어 살고, 죽어도 이곳에서 내 동포들과 함께 죽을 것이오."
고당 선생은 자기 개인을 생각하기보다는 먼저 나라를 생각하고 민족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6·25동란이 터졌습니다. 계속해서 밀리던 우리 국군들이 북진을 했습니다. 평양을 탈환했을 때 평양에서 철수하던 인민군들이 평소에 자기들의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던 고당 선생을 학살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당 선생은 자기의 말대로 그곳에서 동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다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남성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서 옷가게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긴 바지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내일 그 바지를 입고서 어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저녁 식사 후에 가족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사온 바지를 입어보니까 아무래도 너무 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옷을 벗어 거실에 있는 소파 위에 걸쳐놓고 아내에게 이렇게 일렀습니다.
"여보! 내일 아침 일찍 내가 이 옷을 입고 가야되는데, 아무래도 조금 긴 것 같으니까 당신이 밑단을 5cm정도만 줄여 주구려."
그 뒤 아내는 설거지를 마치고 옷을 수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자꾸 칭얼거립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아기를 재워두고 나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방에 들어가 아기를 옆에 누이고 재웠습니다. 아내는 아기를 재우다 자신도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여동생인 시누이가 그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니가 살림을 하랴, 또 아기를 키우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하겠는가? 언니를 깨우지 말고 차라리 내가 하지." 그러면서 오빠의 옷을 가져다가 5cm를 자르고, 밑단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림질까지 정성껏 해서 옷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깊은 밤중이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잠시 일어났습니다. 거실을 지나가다 보니까 옷이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쯧쯧, 젊은 아이가 얼마나 고단했으면 저렇게 정신 없이 잘까? 그래 깨우지 말고 그냥 두자. 내가 하지 뭐." 그러면서 시어머니가 또 5cm를 잘랐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습니다. 깜박 잠이 들었던 아기 엄마는 놀라서 깨어보니 이미 새벽 5시입니다. 정신 없이 나와서 5cm를 또 잘랐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몇 cm를 잘랐습니까? 15cm를 자른 것입니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입어보니까 이게 웬일입니까? 바지가 깡총해졌습니다. 반바지가 다 되어버렸습니다. 남편은 바지를 보며 왜 이렇게 많이 잘랐느냐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알고 보니까 자기 여동생이 5cm를 자르고, 또 어머니가 5cm를 자르고, 아내도 5cm를 자른 것입니다. 비록 바지는 짧아져서 볼 모양이 없었지만, 그의 마음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래, 바지의 길이가 짧은 것이 무슨 대수냐? 우리 가족이 이만큼 서로 생각해 주고 위해주고 아껴주는데 내가 더 부러울 것이 무엇이냐?"
그러면서 그는 자랑하는 마음으로 그 짧아진 바지를 입고 모임에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주미 한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김 명배집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서울에서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서울로 귀국하여 장례를 잘 치렀습니다. 그리고 3형제가 모였습니다. 큰 형은 의사로, 둘째형은 사업가도 모두 생활이 윤택하였습니다. 어머니 유산 문제가 나왔을 때, 형은 막내가 제일 가난하니 막내에게 유산을 다 주자고 하였습니다. 둘째가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김 집사는 말했습니다.
<형님! 그것은 안 될 말씀입니다. 재산은 당연히 장자가 받아야 합니다. 아니면 사업을 하시는 둘째형이 돈이 많이 필요하실 터이니 받으셔야 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어머님이 평생 보시던 성경입니다. 두 형님은 언제나 한국에 계시고 나는 해외에서 떠돌아 다니니 재산을 필요 없고 어머니 성경을 읽으며 살고 싶습니다>
온 가족은 어머니가 읽으시던 성경을 꺼내어 막내에게 주면서 모두 울었습니다.
▶영국이 위대해 질 수 있었던 것은 성경의 위대성을 발견한 후부터입니다. 그 중요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1단계 성경을 번역한 알프레드 왕 때 영국은 미개국에서 벗어나 통일왕국이 되었습니다.
제2단계 성경을 공식으로 반포한 엘리자베스 여왕 1세부터 영국은 강대국의 대열에 들었습니다.
제3단계 빅토리아 여왕 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되었습니다. 그 비결을 묻자 빅토리아 여왕은 <하나님의 말씀>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킬케코르는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자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맥런이라는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때때로 생의 어려운 일을 만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기도의 끈을 묶어서 온전히 기도에 매달리라>
▶지금은 다 고인이 되셨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변호사는 이 태영 여사입니다. 그의 남편은 우리가 잘 아는 정 일형 박사입니다. 이 태영은 이화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정 일형 박사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 일형 박사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 태영은 남편 옥살이 뒷바라지를 하여야 했습니다. 이제는 일본 경찰의 감시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양을 떠나 객지에 가서 몰래 살면서 이불 장사를 하였습니다. 밤새 누비이불을 누벼야 했습니다. 밤새 가위질로 손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밤새 만들고 낮이면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팔았습니다. 전차 비를 아끼려고 수 십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 때 일본 경찰이 무기를 만든다면서 집안에 있는 쇠붙이란 쇠붙이는 다 공출하였습니다. 이 태영에게는 생명과 같은 가위를 빼앗아 갔습니다. 가장 귀중하고 필요한 도구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잘라야 했습니다. 손이 휘어졌습니다. 가위가 없어서 제일 고생을 하였습니다.
해방을 맞았습니다. 정 박사도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 후 정박사는 외국에 다녀올 때면 꼭 가위를 선물로 사다 주면서 말했습니다.
<가위가 없어서 고생하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살아요> 이 태영은 이런 위로를 받으면서 36살 1946년에 법학 공부를 시작하여 한국 최초의 여자 변호사가 된 것입니다. 그 당시 남편이 외국에 나갈 때마다 사다 준 가위가 200개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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