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한 예화 모음
본문
행복에 대한 예화 모음
가장부유한 사람은
인간은 배우는 동물이다. 요람에서 무덤에 갈 때까지 인간은 배워야 한다. 특별히 인간은 감사의 철학을 배워야 한다.
"행복은 감사 속에 있고 감사는 만족 속에 있으며, 만족의 나무에 감사의 꽃이 피고, 감사의 꽃에 행복의 열매가 열린다"는 말이 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흐뭇한 정신적인 만족감이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우리는 유대인의 다음 명언을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
1.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 모든 사람에게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
2.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3.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자기의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행복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거지 왕
앨리스테어 맥클린은 독일의 신비주의 타울러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인용하여 들려준다.
어느 날 타울러가 한 거지를 만났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좋은 날을 주셨군요. 친구여." 그가 말하자 거지는 대답했다. "나쁜 날이 하나도 없다는 걸 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타울러는 말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행복한 삶을 주셨군요."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결코 불행하지가 않아요." 타울러는 놀라서 말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네, 나는 날씨가 좋아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비가와도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 뜻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나도 기뻐하는데, 왜 불행하지 않은 때에 불행해 해야 합니까?" 타울러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왕이요." "그럼 당신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타울러가 다시 묻자, 그 거지는 조용히 대답했다. "내 마음에 있소." 누군가가 "나는 늘 행복하다. 그 비결은 늘 바다를 항해하면서도 마음은 항구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사야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나이다"(사26:3)
그리스도와 함께라면
영국의 애버딘시를 방문했을 때 나는 친구의 안내를 받아 이곳저곳 볼 만한 곳을 구경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여기는 빈민가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몇 군데 있는데 가보겠느냐는 얘기다. 친구는 뒷길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한참 가다가 3층 집을 가리켜 보이며 “저기 저 방이 보이죠. 전에 거기에 하나님의 훌륭한 한 여성도가 살고 있던 곳이랍니다.
그렇게 가난하고 질병가운데 살았지만 항상 명랑한 웃음을 잃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으로 항상 빛나던 성도였습니다..” 하면서 말을 잇는다.
한번은 어느 전도자가 고든 미션에서 설교를 하는데 이 소식을 듣고 찾아 왔더랍니다. 이 전도자가 방에 들어서니 그렇게 가난한 처지에도 화창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할머니. 그리스도께서 이곳을 방문해 주신다면서요.." 하고 묻자 이 성도는 "아냐. 아냐. 그건 틀린 말이야." 하고 대답하더랍니다.
이 할머니가 아마 가는귀가 먹은 거지 하고 크게 한 번 더 외쳤더니 역시 "아냐. 아냐. 그건 틀린 말이야. " 하기에 이 전도자는 귀가 먹은 것이 틀림없구나 생각하고 귀에다 입을 갖다 대고 "할머니. 그리스도께서 이 집을 방문하시지 않습니까.." 하고 소리쳤답니다.
그러자 이 성도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그건 틀린 거야. 틀리고말고. 그분은 지금 여기 살고 계셔" 하더랍니다.
내 자리에서 찾은 행복
지루한 애벌레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날개를 가지게 된 매미가 그토록 소망하던 나무 위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땅 속에서 나무 위로 올라와 살아보니 그것도 별 것 아니었다. 징그럽게 생긴 쐐기가 침을 세우며 경계를 펴고 있고, 쓰르라미가 시끄럽게 저 잘난 체를 하지를 않나...
매미는 다른 데에 가서 행복을 찾아보리라 마음먹고 여태껏 살던 감나무를 떠났다. 매미들이 여럿이 노래하며 노닐고 있는 벚나무에 날아가 앉았다. 그러나 거기에도 쐐기가 있었고 경쟁자가 더 많았다. 나무에서 물을 빨아 먹기는 더욱 힘들었다.
그는 그곳을 다시 떠나 이번에는 아카시아 나무위에 가 앉았다. 그러나 그곳도 고생스럽기는 매 한가지였다. 더구나 가시가 있어서 더욱 불편 하였다. 잎이 무성하여 겉보기만 시원하고 근사했지 속은 형편없었다. 징그러운 벌레들이 아주 많았다.
매미가, "이젠 어디로 가지?"하면서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저쪽에 무지개가 찬란하게 걸려있는 행복 나무를 찾았다. 매미는 단숨에 날아서 그곳까지 갔다. 순간, 매미는 놀랐다. 그 나무는 맨 처음 자기가 살았던 그 감나무였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이란 북부에서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수도승 한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이렇게 농사를 짓고 밥만 먹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나? 이 세상에는 다이아몬드라는 것이 있다네. 이 다이아몬드는 산 사이로 물이 흐르고 백사장이 있는 곳에 가면 있는데 그것을 캐내기만 하면 자녀들을 일류 대학에서 공부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걸세. 그러니 다이아몬드를 찾도록 하게.”
이 말을 들은 농부는 그 때부터 시작해서 다이아몬드에 대한 탐욕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농부는 농사짓는 일이 제 분수인 줄 모르고 다이아몬드를 찾겠다고 집과 전토를 다 팔고 가족들은 친구에게 부탁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 농부는 일확천금의 탐욕을 갖고 영국을 다 돌고 유럽을 다 돌았습니다. 결국 이 농부는 노자를 다 써버리고 초췌한 모습으로 이탈리아의 나폴리 항까지 왔습니다. 그는 지친 몸으로 절망에 몸부림치다가 넘실대는 파도에 몸을 던져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농부의 땅을 산 사람이 어느 날 들에 나갔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돌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돌을 주워 자기 집에 장식품으로 진열해 두었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나 그 수도승이 또 다시 옛 농부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집에 들어선 그 수도승은 이 돌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이아몬드 원광석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원광석은 잘 다듬어져 러시아 황제의 왕관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바로 죽은 그 농부의 집터에서 아프리카 다음으로 큰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행복의 다이아몬드 광산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현재 내가 앉은 그 자리가 다이아몬드 광산인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탐욕을 갖고 살게 될 때 자신 뿐 아니라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까지도 파멸로 이끌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무지개 같은 행복
마릴린 몬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
행복을 찾고, 찾고 또 찾았지만 완전한 행복을 잡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행복은 살짝 지나갑니다. 무지개처럼 지나갑니다. 붙잡으면 현실이 아닙니다. 모래처럼 새어 나가 버립니다. 그것은 환상이고 환영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말은 만고의 인간이 배워야만 할 지혜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전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세계를 정복하고 정복했지만 나의 왕국은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예수는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사랑의 왕국은 날로 날로 번져 가지 않는가? 그와 우리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영웅들과도 다르며 성자들과도 다르다. 이상한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변하지 않는 행복
옛날에 구두 수선하고 다니던 어떤 사람이 지금 돈으로 일억 원의 복권에 당첨되었는데 너무 기뻐서 구두 수선하던 궤짝을 내버리려고 한강에 갔습니다. 속 시원히 내던져 버리고는 집에 가서 보니까 그 궤짝 속에다가 복권 당첨된 것을 집어넣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 충격으로 죽어 버렸습니다.
운이 그렇게 너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죽어 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십년동운(십년동운)은 드문 것입니다. 돈은 있어도 정신이 비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처럼 세상이 줄 수 있는 행복이라는 것은 아주 변덕스럽습니다. 사정이 늘 달라집니다. 건강이 상실될 때도 있습니다. 계획과 소원이 좌절될 때도 있습니다. 세상의 행복은 그러한 조건에 좌우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안에서 소유하고 있는 행복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행복의 공식
LA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알지 못하는 부인이었다.
"우리 딸 신랑감 하나 소개하세요."
"부인도 부인의 딸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모르는데 어떤 총각을 소개합니까?" "다른 조건은 볼 것도 없어요. 의사면 돼요."
"나는 그런 총각 한 명도 모릅니다."
화 때문에 음성이 떨리지 않도록 되도록 조용히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상도 사랑도 성격도 볼 것 없이 사윗감으로 의사면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나 혼자 추측이지만 혹시 돈이면 돼요 라는 뜻이 아닐까?
소유의 부피와 행복의 부피
1977년도는 미국의 최대 부호였던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던 해였습니다. 그들은 석유의 제왕으로 불리었던 폴게티 라는 사람과 한 사람은 하워드 휴즈입니다.
하워드 휴즈는 20억불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죽기 전 10년은 가장 고독한 생활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의 유흥장과 호텔, 항공사, 영화사, 방송국 등 50여 개의 업체를 거느렸으나 그 거대한 물질이 그의 인생과 생활을 병들게 했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던 그가 죽음의 원인이 어이없게도 영양실조라는 것이다. 정신적인 고독과 공허감을 달래려고 방탕한 생활을 한 결과 얻은 병 때문에 몸져누웠을 때에 그의 주위에는 그의 재산을 탐하고 노리는 자들이 몰려들었고, 그 결과 하워드 휴즈는 아무도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어 홀로 숨어 살다보니 결국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가 된 것이다. 그가 죽기 전 거의 10년 동안 외부인과 일체의 접촉을 끊고 있었으며, 그 자신 또한 외부세계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유령과 같이 밀폐된 생활을 하다가 그가 죽었을 때에는 누구 하나 슬퍼하며 울어 줄 사람조차 주의에 없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아내도 자녀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화려했던 시절에는 여성편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헐리웃의 유명한 배우들과 끊임없는 스켄달을 만들어냈다. 돈과 명예와 미녀들 속에 파묻혀 살았지만 죽을 때에는 조강지처마저 없는 가장 외롭게 죽어갔던 것이다.
석유의 제왕이라 불리었던 폴게트는 무려 30 - 40억불의 재산이 있었지만 그도 역시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생동안 5번 결혼했다가 5번 이혼했으며, 59년도에는 막내아들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73년도에는 장남이 과음으로 ... 모두 자신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당대에 세계 최대의 부자였던 두 사람이 주는 교훈은 두 사람이 소유했던 재산만큼 똑같이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행복이란 소유의 부피만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호의 상징인 현대그룹의 정몽헌 회장의 자살도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스페인 왕과 행복
옛날, 스페인의 어느 왕이 행복해지려고 사치와 연락을 즐기면서 매우 호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왕은 행복감은커녕 도리어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 초조하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신하들을 모아놓고 어명을 내렸다.
"경들은 속히 전국을 수소문하여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찾아서 데리 고 오렸다!"
신하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몇 날이고, 몇 달이고 걸려서 만나는 사람들을 죄다 붙들고, "당신은 행복합니까?"하고 물었다. 그러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오직하나 밖에 없었으니, 그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막대기 하나를 들고 두메산골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목동이었다.
슬퍼할 필요가 없다
이 이야기는 독일의 신학자요, 목사였던 디트리히 본 회퍼에 관한 것이다. 그는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명의로 1945년 처형을 당했는데, 다음의 내용은 1944년, 크리스마스 전 날에 그의 약혼녀에게 쓴 마지막 편지 내용이다. 그는 비극적인 인생의 한 가운데서 그것도 죽음을 직면한 가운데 그의 사랑하는 마이어 폰 베데마이어(Maia Von Wedemeyer)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던 것이다.
"나의 사랑! 당신은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오. 행복은 무엇이고 불행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약간의 환경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얘기지요."
울타리 안의 행복
어떤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계곡에 살고 있는 가족을 하나님이 계신 높은 산으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느니라. 그러나 당신 집안을 정돈하라. 당신이 떠난 후 다른 사람이 머무를지 모르느니라."
그 여인은 집안을 깨끗이 정돈하고 "하나님 이만하면 당신의 품에 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천사는 "아직 정원에 잡초가 많아. 네가 떠난 후 어떤 사람이 정원을 보고 싶어 할지도 몰라."이 말을 들은 여인은 정원의 잡초를 뽑고 몇 해 동안 정원을 정성스럽게 가꾸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하나님, 이제 우리 가족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그때 천사가 머리를 가로저으며 "문 밖에 거지가 서 있다. 네가 그를 먹일 때까지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없다." 부인은 걸인을 향하여, 남편을 향하여, 자식을 향하여, 사랑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만하면 됐습니까?"
그때 천사가 창문을 열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가 천국이었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도 사랑스런 사람이었고 정원도 아름답고 가정도 아름다웠습니다. 바로 그곳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천국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에서는 축복의 별미를 만들려고 들로 나갔으나 야곱은 울타리 안에서 양을 취하여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축복은 바로 울타리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톨스토이는 "가정을 잘 경영하지 못하는 여자는 집에 있어서도 행복하지 않다. 그리고 집에 있어서 행복하지 못하는 여자는 어디로 가든지 행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네 가지
거짓말을 가리켜 자살약이라고하면 가장 어울릴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신용을 인정받는 다든가.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지금은 비록 어렵고 가난해도 신용을 인정받고 신뢰를 받는 사람은 반드시 번창하게 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만을 추구하느라 가짜 상품을 마구 만들고, 현재만이 인생의 전부인양 마구 거짓말하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신용이 떨어지고 신뢰를 못 받아 결국 존재할 자리마저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거짓'은 자살약과 같다.
거짓에 대한 교훈이나 예화는 이 세상에 너무 많아서 삼척동자라도 거짓이 죄악임을 알고 있다. 풀라톤의 대화편에도 '거짓된 말은 그 자체로서 죄악일 뿐 아니라, 영혼을 죄악으로 더럽힌다.'고 하였다. 하다못해 농담으로 한 거짓말조차 커다란 슬픔을 초래할 수 있다.
성경에도 '거짓 증거'에 대하여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거짓이 자신에게 적이 되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뿐더러 타인에 대한 거짓 증거는 그 사람에게 치명적이 된다.
특히 거짓 무서운 이유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계속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거짓은 계속 거짓을 낳는다.
사람이 전혀 거짓 없이 세상을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짓에도 본의 아닌 것이 있을 수 있다. 즉 실수에 의한 것이 그렇다. 그랬을 때에는 거짓말을 깨닫자마자 곧바로 그것을 고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의에 찬 거짓과 다를 것이 없다.
거짓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로 인해 손실을 봄으로 늘 진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진실을 말해야 하며 화평 중에 우리 인간의 적인 거짓을 버려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들이 살길이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작은 문제를 소홀히 여기지 말자
옛날에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유명한 장수가 지휘하는 큰 군대가 적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적보다 훌륭한 지휘관과 병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싸움에 패한 원인이 무엇인가 살펴보았더니, 그 군대를 지휘하던 장수의 말의 편자의 못이 하나 빠져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작은 일은 무시해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 무관심할 때, 그것으로 인하여 큰 실패를 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가 한 신문사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기록으로 우승을 하였는데, 당신이 달리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신발 속에 들어간 작은 모래였습니다."
우리의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는 많은 요인들도 단순하고 작은 이유들입니다.
우리가 작은 문제에 소홀히 해서는 행복을 쉽게 잃어버리게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존재의 목적
목적론적으로 말할 때 모든 것은 다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이 볼펜도 전화기도 시계도 다 저 혼자 보기 좋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졌고 또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존재의 목적은 물건전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의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계는 자기 혼자 뱅글뱅글 돌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시간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도 먹고 자고 일하고 자식 낳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 아닙니다.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에 진정한 행복과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목적에서 어긋날 때 혹은 알지 못 할때 아무리 명예와 재산을 다 소유했다고 해도 참 만족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치고 자기에게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참된 미
참된 미란 무엇인가? 꽃인가, 새인가, 살결 좋은 얼굴인가?
불행하게도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 나서, 두 눈 다 뜨고 있으면서도 참된 미를 알지 못한다. 이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생애를 가련하게 하는 소위이다.
그러면 참된 미란 무엇인가? 그리스도 이외에 없다. 만일에 그리스도의 미를 볼 수가 있다면 그는 인생의 행복에 달했다고 할 수가 있다.
옛 시인은 여호와의 미, 이것이야 말로 인생의 행복이므로, 오직 이것을 바란 것이다. 구할 것은 오직 이뿐이다.
행복의 질량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프롬은 다음과 같은 도식적 원리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이것은 미숙한 사랑이다. 나는 너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이것은 성숙한 사랑이다. 미숙한 사랑-나는 너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나는 너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성숙한 사랑-나에게는 네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대체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소유만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만큼 행복한 것입니다.
소유와 행복이 정비례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많은 돈을 가졌으니 사랑받으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출세를 했으니 남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사랑의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내게 많은 소유가 있으니 행복하리라고 오해하지도 마십시오. 행복과 소유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소유만큼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만큼, 사랑을 아는 만큼, 사랑을 하는 만큼만 행복한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용기와 강함이 지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그가 지닌 지식만큼 강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느끼는 만큼 강한 것입니다. 행복의 질량은 같습니다. 사람은 사랑의 진실만큼 행복한 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의 속옷
동쪽 나라의 임금님이 병에 걸려 앓아 누워있었다. 아무리 치료해도 임금님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나그네가 홀연히 찾아와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임금님은 온 나라 방방곡곡에 신하들을 보내 행복한 사람을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지만 신하들은 어디에서도 행복한 사람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 어스름 무렵, 왕자님도 이제 궁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바로 그때 길가 가난한 오두막집에서 행복에 찬 기도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저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이렇게 무사히 지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자는 기뻐하며 신하를 시켜 금은보화를 대가로 주고 그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하도 가난해서 속옷조차 입고 있지 않았더란다.
불행이란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려고 하는데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빈 손, 빈 마음일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랑 때문에 가난하게 되시고 생명까지도 내놓으신 예수, 그분을 만나게 된다. 그분의 진정한 행복을 배우게 된다.
행복해지는 법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구세주의 본을 따르지 못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불행한 사람이 된다. 어떤 사람은 "비참해 지는 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암시를 하고 있다.
"오직 당신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라. 이야기할 때는 가능한 한 "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라.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사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라. 사람들이 당신에 대하여 하는 말을 열심히 듣고 항상 칭찬받을 것을 기대하라. 언제나 좋은 시간을 갖기를 바라며 기회 있을 때마다 당신의 의무를 회피하라. 다른 사람들을 될 수 있는 한 조금만 사랑하고 당신 자신을 가장 사랑하라." 이것은 백퍼센트의 오류가 없는 보장된 비결이다.
당신이 겸손히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참된 축복이 당신의 삶에 가득 찰 것이며, 풍성한 평안과 기쁨이 당신의 영혼에 흘러넘칠 것입니다.
행복해지는 습관 (오스틴목사)
마음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 집중하라
1. 마음을 훈련해야 합니다.
삶에 접근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태도, 품행, 기쁨, 평화의 대부분은 모두 학습된 행동이며 오랜 기간에 걸쳐서 형성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마치 컴퓨터와 같아서 프로그래밍 한대로 움직입니다. 오랫동안 걱정과 불만에 집착하고 옳지 못한 것에 집착하면 부정적인 패턴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의 잘못된 습관은 부정적인 부모나 환경으로부터 왔습니다. ‘난 원래 걱정이 많아요., ‘난 원래 무뚝뚝해요’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 학습된 행동입니다. 데살로니가 5장 16절에는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항상 행복 하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직장을 구하기를, 아이가 정신을 차리기를, 몸이 건강해지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행복하려면 지금 행복해져야 합니다. 행복은 의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일단 행복하기로 결정한 사람에게선 결코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에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칩니다. 행복의 습관을 가지려면 절망하지 말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없는 것에 불만하지 않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2. 부정적인 조건반사를 긍정적인 조건반사로 바꾸십시오.
낙심하고 부정적으로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다시 짜듯이 인생의 프로그램을 다시 짜세요. 타인을 대하는 방법을 바꾸세요. 마음에서 그릇된 사고방식을 완전히 삭제하시면 이 작은 수정이 프로그램을 완전히 바꿔줍니다. 타인을 대하는 방법, 문제 해결 방법을 수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부정적인 조건반사를 허용했습니다. 도로에서 차가 막히면 즉시 혈압이 오르고 짜증이 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쁨이 없고 그저 뚱하게 하루를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동료가 내게 말도 안하고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털어버리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자기 연민에 빠집니다. 하루에 대한 기대 없이 마지못해 하루를 시작하는 대신에 기대감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새로운 조건 반사입니다. 이날은 주가 지으신 날이니 기쁜 날이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3.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합시다.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실망에서 벗어나 기쁨을 누립시다. 행복하다는 말이 항상 웃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족한다는 의미입니다. 기쁨이라는 단어에는 고요한 즐거움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가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극복해야할 문제와 장애물이 있다 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월요일 마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근이 특별히 힘듭니다. 사실 월요일은 다른 날과 같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다른 날보다 70% 높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출근 시간에 차가 막힌다고 짜증을 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같은 상황에서 찬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게 우리의 관점에 달려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배웠다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됐다는 뜻이 아닙니다. 평안을 얻는 방법,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배운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행복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합니다. 매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가만히 두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경계하지 않으면 이내 우울하고 경직되고 퉁명스러운 사람이 됩니다. 남의 약점을 찾고 비판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부정적인 습관이 생기지 않게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미소를 지으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탄이 우리의 기분을 정합니다. 물론 얼굴은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우울하고 문제가 많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소를 통해 몸 전체에 잘 될 거라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역사하시도록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4. 우리 마음은 모든 정보를 + 혹은 - 로 결정해서 입력합니다.
우리의 뇌는 입력하는 것만 출력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환경에 처하거나 성적이 안 나오거나 승진 기회를 놓쳤어도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한 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쪽 문을 여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고통스러운 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그들이 기쁨과 평화의 장소로 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자기연민, 절망, 실망과 낙심 등의 부정적인 것들만 입력하면서 행복한 삶을 기대할 순 없습니다. 기차 시간이 늦어 중요한 모임에 늦었어도 하나님이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게 하셨다고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새롭게 행복을 프로그래밍 하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뇌 속에는 ‘세망활성계’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기억력, 습관과 관련되어 있으며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생각이나 충동을 없애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필요하고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 정보를 전하지 않는 것이 ‘세망활성계’의 기능입니다. 철로 옆에 살면서 기차가 지날 때마다 잠에서 깨어났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뇌리에 기차소리는 부정적인 정보로 입력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그는 기차소리에 대해서 반응할 필요가 없는 무의미한 소리라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과연 놀랍게도 며칠 뒤부터 그 사람은 한 번도 안 깨고 깊이 잘 수 있었습니다. 그의 뇌 속에 있는 세망활성계가 더 이상 그 정보를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도 이처럼 훈련할 수 있습니다. 하루를 망치는 우울한 생각도 무시하십시오. 기차 소리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생각을 걸러내는 훈련을 하다보면 결국엔 우리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믿음, 평화, 기쁨, 승리, 행복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5. 행복의 습관은 긍정적인 생각을 반복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공부를 안 하고 말썽을 부리면 하나님이 자녀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옳은 결정을 하게 도우시도록 간구하십시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선포하십시오. 빚이 늘어가고 유가는 올라갑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여호와 이레, 채우시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믿고 내가 만지는 모든 것이 번영할 것이라고 믿으십시오. 절망, 패배감, 짜증을 버리고 행복의 습관을 만들어갑시다. 며칠 전 뉴스에서 허리케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경험담을 얘기했는데 대부분은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분노에 차서 다른 사람과 정부, 하나님을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나왔습니다. 그녀는 뭔가 달랐습니다. 얼굴에 미소를 담고 기쁨과 평안으로 광채가 나는 듯 했습니다. 기자가 어떤 문제를 겪었느냐고 그녀에게 묻자 "문제는 하나도 없어요. 전 불평하러 나온 게 아니에요. 제가 아직 살아있음을 감사하러 나왔어요. 내가 건강함을, 아이들이 무사함을 감사합니다.” 그 모습에 기자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평안과 신뢰, 긍정적 태도를 갖고 부정적인 생각이 몰려와도 부정적인 생각을 향해서 “어차피 안 통하니 시간낭비하지 말라”고 선포합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