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화(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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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눈물)
▶사람은 일생동안 눈물을 흘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정말 가치 있는 눈물을 흘릴 때가 있는데 그것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남을 위해 울어 줄 수 있을 때입니다. 나를 위해서 우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 아니 다른 사람을 위해 울어 줄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렇게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치 있는 일일 것입니다.
<눈물>이란 무엇입니까? 사전에 찾아보면 '눈동자 위에 있는 눈물샘에서 나오는 물로 늘 조금씩 눈을 축이지만 정신의 감동이나 자극을 받으면 더 많이 나기도 하는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눈물에 대해서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 정의가 다릅니다. 생리학자들은 눈물을 이렇게 말합니다. '눈알을 매끄럽게 하며 눈동자의 건조함을 방지해주는 눈물샘에서 분비되는 용액이다' 화학자들은 '수용액 속에 염화나트륨과 칼슘과 다른 화학 원소들이 들어 있는 용액'으로 설명하고, 시인들은 소리 없이 흘러내려 입 가장자리로 스며들면 약간은 시큼한데 짭짤한 맛이 더 하면 슬픔의 눈물로 설명하고, 심리학자들은 인간만이 갖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 표현으로 설명하고, 종교인들은 감사와 정성, 사랑과 순결이 담겨져 있는 영혼의 증류수라고 정의합니다. 어쨌거나 모두가 눈물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 한 것들로 보여 집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악어의 눈물>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사람을 만난 악어가 사람을 죽여 놓고 그 사람을 위해 울어주고는 잡아먹는다는 데서 유래된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죽여 놓고 우는 악어의 눈물, 이 눈물은 결국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눈물입니다. 더구나 울어주고 잡아먹는 악어의 행위는 자기의 고약한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교활함이 있습니다.
이러한 눈물을 가치 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을 위해 울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이 없이는 안 되는 일입니다.
▶영국의 어느 시골에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가난하였지만 신앙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길가에서 구두 수선공으로 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혼자 터득하였고 특히 생물학과 식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가난하여 정규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던 그는 이 모든 공부를 혼자 힘으로 독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그에게 닥쳐왔지만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기도하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여 나갔습니다. 힘이 들 때마다 그는 작업실 벽에 써놓은 '하나님께 큰 것을 구하라.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계획하라'는 글을 보며 하나님을 향한 큰 비전을 되새기곤 했습니다.
어느 날 외국 선교회가 조직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선교사로 자원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였습니다. 영국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드디어 인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인도에 상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의 경제 상황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그에게 보내졌던 선교비가 뚝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도활동을 그치지 않았고 인도인과 함께 노동을 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너무 많았지만 오직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인도에 바쳤습니다.
훗날 많은 사람들은 그를 인도 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 1761-1834)입니다.
▶백화점왕 워너 메이커는 많은 헌금을 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또한 많은 구제금을 세계 각국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자기가 보낸 구제 금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중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골에 이르렀을 때에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소 한 마리와 그 곁에 젊은 청년이 같이 쟁기를 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노인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 두 마리가 쟁기를 끄는 것이 당연하건만 소 한 마리와 젊은 사람 하나가 쟁기를 끄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그 이유를 노인에게 묻자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소 두 마리가 쟁기를 끌었는데 지난 주 한 마리를 팔았소. 저기 보이는 예배당을 지을 때 우리 부자는 헌금할 것이 없어서 염려했는데 내 아들이 소 한 마리를 팔자고 했소. 자기가 소 한 마리를 대신해서 일을 하고 소는 팔아서 헌금하자고 하기에 결국 그 소를 팔게 되었소. 그래서 지금 내 아들이 소를 대신하여 일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말을 들은 워너 메이커는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 충성스러운 청년에게 축복하여 주옵시고, 나로 하여금 저 청년과 같이 기쁨으로 희생하게 하옵소서.'
▶어거스틴이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의 입구에서 그는 천사로부터 너는 누구냐 하고 제지를 받습니다. 나는 어거스틴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천사가 자세히 보더니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네 머릿속에는 키케로의 철학만 가득 들어있다.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하고 호통 치며 내려가라고 하더라고 합니다.
놀라서 눈을 떠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믿음이 좋은 줄로 알았습니다. 예수의 진실한 제자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철저하게 회개하고 그 다음부터 예수에 대한 지식으로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성자가 됩니다.
▶찬송가 405장을 작사한 존 뉴턴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사다가 팔아먹는 노예선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아들 뉴턴도 커서 아버지와 함께 노예를 타고 다니며 노예들을 팔아먹던 사람입니다.
뉴턴이 아무 죄의식 없이 노예들을 팔아먹던 중 어느 날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읽게 됩니다. 그 책 속에서 그는 예수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경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신앙과 믿음을 알게 되고 헌신의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뉴턴은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합니다.
그리고 새 생명을 얻을 후에 쓴 가사가 405장 찬송 '어메이징 그레이스'입니다. 그는 죽은 후 묘비에 스스로 작사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존 뉴턴 그는 한때 방탕에 빠진 노예상인이었으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다 갔노라'
이것이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 고백 속에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이 있고 살아있는 체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요! 이것이 신앙의 고백입니다.
▶한 소년이 있었는데 그는 몹시 가난하지만 신앙을 지키며 십일조를 하며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소년은 성실과 믿음이 인생의 성공을 가져온다고 믿고 가난과 싸워나갔습니다. 그 결과 30세에 모빌런치서비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고 이어서 세계적인 도너츠 상표를 개발했습니다.
그가 바로 던킨 도너츠 창업주인 로젠버그입니다. 전 세계 어느 곳에 가도 던킨 도너츠 상점이 있습니다. 그는 72세를 맞이하는 생일축하 자리에서 '나는 가난하고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채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제 짐을 맡아 주셨습니다. 성공은 지식에 있지 않고 태도에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늘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자신의 짐을 맡기고 살았습니다. 주께서 그의 짐을 대신 맡아 주시고 그를 이끌어 주셔서 그는 대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식이 나를 성공시킨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나를 성공시킨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믿고 순종하는 태도가 인생을 성공으로 만들어 주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정경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기독교적 교훈을 주는 외경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모르지만,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산에 올라갈 때 각자 돌을 하나씩 들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나름대로 돌을 하나씩 들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아주 대조적으로 돌을 들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 성질이 급해서 덜렁대는 것이 흠이지만 예수님의 수제자답게 베드로는 힘에 겨울 정도로 큰돌을 들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돌은 무슨 돌하고 코방귀를 뀌며 조그마한 돌 하나를 들고 유유히 걸어갔습니다.
어느 듯, 산에 다 올라가게 되자,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향해서 기도하시고,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가지고 간 돌이 떡이 되었습니다.
그 날 베드로는 포식을 했고, 가룟 유다는 자기가 들고 간 손바닥만한 떡 하나 먹고 쫄쫄이 굶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게 되었답니다. 가장 큰 점수를 면접에다 두었습니다. 면접 약속시간이 되자 시험에 응시한 사람들이 면접 장소로 다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면접관도 나오지 않고 늦어지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면접하러 온 사람들끼리 막연히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10분, 20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걱정합니다. '무슨 일일까? 웬 일일까?' 30분이 지나고 40분이 옵니다. 그러더니 점점 사람들의 말이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놈의 회사가 이 모양이야?'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중에서도 '좀 기다려봅시다'하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 사람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한 시간 30분 후에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여러분! 우리 회사에 지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약속대로 우리는 한 시간 30분전부터 여러분을 면접했습니다. 다만 면접방법이 평소와 달랐을 뿐입니다. 면접은 다 끝났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회사에서 일부러 그렇게 면접을 한 겁니다. 비디오카메라를 딱 설치해 놓고 약속시간이 되자 '이 사람이 정확하게 들어왔는지, 기다리는 태도는 어떠한지, 회사에 대한 반응과 기대가 어떠한지, 늦어지는데 대하여 그들의 해결방법은 무엇인지'를 다 찍은 것입니다. 그 중에 화내고 성질 냈던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요? 무조건 불합격이죠. '뭔가 이유가 있겠지'하고 조용히 기다린 사람, 불평 없이 기다린 사람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합격이었습니다. /할/
여러분, 인생살이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십니다. 면접 카메라보다 훨씬 정확합니다. 그렇습니다. 인내 없는 성공은 없습니다. 모든 성공 자들의 공통점은 인내하고 참은 자들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꾼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20대 젊은 나이에 정치판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40여 년 동안 험준한 역사의 준령과 정치변동의 파도를 타면서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도전과 인내의 연단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3년 2월 25일 목요일 대한민국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지금은 무섭게 추락하고 있습니다만 민선시대를 연 김영삼 전 대통령입니다. 그분이 기다리고 참고 도전하는 그 용기는 우리가 배우고 또 닮아야 합니다.
▶구전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어느 날 아브라함의 집에 노인 한 사람이 찾아와 지나가는 길손이라며 식사를 요청했습니다. 손님 대접을 잘 하는 아브라함은 그분을 기쁘게 맞아드려 정성껏 대접을 했습니다.
밥상을 받은 그 노인이 식사기도를 안하고 그냥 숟갈을 드는 것을 본 아브라함이 '왜 감사기도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우상을 믿기 때문에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화가 난 아브라함이 그를 당장 내 쫓으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말리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참의라, 그 노인을 내쫓지 말라! 나도 그 노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100년이 가도록 참고 기다리느니라.'는 음성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임종시에 세 가지를 후회한답니다. '첫째가 좀 더 베풀 걸, 둘째가 좀 더 즐길 걸, 셋째가 좀 더 참을 걸'이랍니다. 참지 못한 것이 우리 마음을 임종시에 괴롭힌다고 합니다. 잘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대만의 역사가이자 사학자이자 작가인 '백양'이라는 분이 쓴 글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사람, 미국사람, 중국사람 세 사람이 돼지우리 속에 들어가서 '누가 오래 참나?' 상금을 걸고 인내심 경기를 하게 됐습니다.
먼저 일본사람이 들어가자마자 '아이고, 숨 막혀 못 견디겠다'하고 나왔고, 그 다음에 미국사람이 어지간히 견디더니 '아이고, 이제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나왔답니다. 그리고 중국 사람이 들어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옵니다. 심사위원들이 들어가 보니까 돼지를 떡 베개하고 누워 자고 있더랍니다.
이 중국작가는 말하기를 '이것이 중국 사람의 저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인내로서 승부가 결정이 됩니다. '얼마나 잘 참느냐, 얼마나 넉넉하게 느긋하게 참아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야고보 장로님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에는 되돌아온 소포가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도했으면 응답을 받았을 터인데 참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응답이 되돌아왔다는 뜻입니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응답이 옵니다. 그런데 참지 못하고 포기하면 응답은 없습니다.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느냐에 따라 믿음이 좋다고도 할 수 있고 나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남보다 얼마나 오래 더 참을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만큼 큰 승리를 거두고 그만큼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과 인내는 쌍둥이와 같습니다. 강한 인내심이 없이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없고, 믿음이 없이 참된 인내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약5장에 보면 세 가지를 비유로 우리들에게 길이 참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⑴농부처럼 참으라! 약5:7절에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으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했습니다. 농부는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 위하여 이른봄부터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을 흘려 가꿉니다. 그리고 가을을 기다립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열매, 거두는 기쁨이 인내하는 자에게만 있는 계절입니다. 모든 것은 참아야 얻습니다. 참고 기다릴 때 잘 익은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참는 자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카뮈'는 '행복이란 그 자체가 긴 인내다'라고 했습니다. 금방 거둘 수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농부가 오랫동안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이 참고 기다려서 얻는 열매가 바로 행복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공은 인내로써 얻어진다고 했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과 억울함과 굶주림과 고독을 오래오래 참아낸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멀리 바라보고 천천히 인내하면서 걸어갈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십니까? 봉사하십니까? 사랑하십니까? 인내를 통해서 기도의 열매, 봉사의 열매, 사랑의 열매를 기쁨으로 거두게 되는 줄 믿습니다. 농부의 인내로 열매 맺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⑵선지자의 본을 바라보라! 약5:10절에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선지자들의 고난과 오래 참음과 순교는 우리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신앙의 본이 되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애굽 옥중에 갇히는 모진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함으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온 가족을 가난에서 구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 중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 때문에 사자굴속에 던져지는 시련이 있었지만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 참는 인내로써 승리하고야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 받고 아들을 얻기까지 25년을 참고 기다렸습니다. 야곱은 20년을 참아 축복의 거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참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온가족이 구원받았습니다.
다윗도 참았습니다. 사울의 추격 속에서도 끝까지 참아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인내로써 고난을 기꺼이 받을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인내를 바라보고 길이 참아 마침내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
⑶하늘의 축복을 바라보라! 약5: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으로써 원인 모를 시험을 받아 고난에 처하였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인내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고난 받기 전보다 배나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가 받을 축복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인내해야 합니까? 약5:7절에서 '길이 참으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길이'는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 참을성이 있다'는 의미로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오래 참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약5:11절에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라고 했으며 약1:12절에서도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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