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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웰스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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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웰스의 무덤)


 


▶웰스(Wells)의 단편소설 <무덤>의 내용입니다.


인도에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왕과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던 중 1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왕은 슬픔을 견디지 못 하여 무덤 동쪽에 동상을 세워 주었습니다. 얼마 후 서편에 왕가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조각하여 주었습니다. 1년 후 호화로운 별장도 세웠습니다.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웅장한 성도 건립하였습니다. 왕은 맞은 편 산에 올라가 무덤을 내려다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무덤이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저 무덤을 파버려라.> 처음에는 목적이 분명하였습니다. 무덤 속에 있는 아내를 잊지 않으려고 한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교육자이며 철학자인 듀이가 90세를 맞는 날 한 청년기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같이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좋겠습니까?>


<산에 오르게.> <산에 올라가 무엇을 합니까?> <다시 오를 산을 보기 위해서라네.>


듀이 옹은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산에 오를 흥미가 없어지면 자네도 죽을 날이 가까이 온 거야.>


비전이 없으면 산송장이라는 충고였습니다. 항상 믿음과 비전속에 사는 사람은 힘이 솟구치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 만화 가운데 <미스터 초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초밥집을 냈습니다. 그런대로 잘 되고 있었습니다. 작은 헝공에 만족하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자기 집 옆에 초밥집을 냈습니다. 그리고 자기 초밥집을 음해하였습니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동경 초밥집에 취직하여 오른손, 왼손으로 초밥을 일정하게 떼어내는 피눈물나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밥알이 350개 되었을 때가 제일 맛있다는 것을 연구하여 냅니다. 안주용 초밥은 280알일 때가 가장 맛있고 이상적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오른 손으로 잡으면 350알, 왼 손으로 잡으면 280알이 되도록 훈련을 하였습니다. 밤낮 그것만 하였습니다. 맛있게 만들고 빨리 만들고 정확하게 만드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생선 초밥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훈련을 마쳤습니다. 나중에 실험하여 보니 10번 중에 8개가 한 톨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였습니다. 그래서 생선초밥 왕이 되었다는 만화입니다. 그가 다시 만든 초밥 집 음식점은 항상 만원을 이루었습니다. 작은 성공에 만족하여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장미화원을 가꾸는 한 가정을 방문하였습니다. 이 가정 주인은 정원으로 사업가를 데리고 가서 백장미, 흑장미, 노랑 장미 등 각종 장미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더니 몇 송이만 남겨놓고 모조리 잘라 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사업가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주인은 대답하였습니다.


<많이 잘라야 좋은 장미가 핀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업가는 번 돈을 아낌없이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안락함을 사정없이 거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미국의 대재벌이 되었습니다. 이가 바로 백화점 왕 워너 메이커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현재 생활이 즐거운 엘림이라도 가나안으로 떠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까이에서 보아야 더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인데도 가까이에서 보면 참 부드럽고 재미있고 인간답고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가까이에서 사귈수록 더 친근해집니다. 그런 사람은 되도록 사람을 가까이에서 만나 사귀어야 유익한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가까이에서 보면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인데 멀리서 보면 굉장히 아름답게 보이고 더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되도록 멀리서 사람들에게 잠깐 나타났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래야 그 좋은 인상과 멋이 오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되도록 가까이에서 봐야 더 좋은 분입니다. 예수님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깊이 사귀어 연구하고 대면하면 더욱 친근하고 자상하고 인간적인 분이십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니까 우선 친근감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 말 한마디에 거리감을 느끼고 괴리를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예수님은 참 인간적이고 고상하고 자상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앤드류 머리'는 "신앙생활은 내려가는 생활인데, 그것이 곧 올라가는 생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신앙생활은 역설의 생활입니다.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살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는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어야만 부활하고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백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했습니다. 모두 역설적인 말씀들입니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있는 한 교회들에 ‘소왈슨’이라는 사람이 만든 ‘예수 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상 밑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성구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어느 여행객이 그 예수상이 하도 유명하다고 말해서 일부러 와 보았다고 합니다. 와서 그 동상을 직접 보았더니 유명하기는커녕 허무 하리 만치 아무것도 아니더랍니다.


그래서 이 분이 안내자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뭐가 그리 유명하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안내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뻣뻣하게 서서 보면 이 조각상이 주는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동상은 가까이 가서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아야 인자하신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그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은 그 인자하신 주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해'라는 말은 영어로 "understand"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두 마디가 연합해서 이루어진 합성어입니다. under라는 말은 '아래'라는 뜻이고 stand라는 말은 '서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상대방을 바르게 이해하고 어떤 사물을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이렇게 상대방의 밑에서 올려다보아야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어느 초원에서 생긴 일입니다. 하루는 동물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자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 틈을 이용해서 굶주린 하이에나가 사자의 새끼 가운데에 한 마리를 잡아 먹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멀리 달아났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사자는 그 사실을 알고서 노발대발했습니다.


사자는 즉시 초원의 모든 동물을 한 자리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하이에나가 저지른 악행을 발표를 말하면서 하이에나를 전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또한 사자는 그 일에 초원의 모든 동물들이 협조를 하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모든 동물들은 하이에나가 저지른 악행을 듣고서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물의 왕인 사자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누구도 예외 없이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번 일로 인해서 초원의 평화가 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였습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코끼리가 조용히 사자를 찾아갔습니다. 코끼리는 사자에게 조심스럽게 이렇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왕이시여, 물론 하이에나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는 마땅히 응징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초원의 모든 동물들이 이번 일로 인해서 평화가 깨어지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왕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번 일에 대한 노여움을 푸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사자가 화를 벌컥 내면서 말했습니다. "무엇이라고? 이런 굴욕스러운 일을 그냥 참고만 있으라고? 그렇게 비겁해서야 내 어찌 동물의 왕이라고 불릴 수 있겠느냐?"


코끼리는 다시금 사자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자기 힘을 휘두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을 절제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왕께서 극심한 아픔을 당하셨지만 그래도 분별력을 잃지 아니하시고, 평소와 같이 침착하고 위엄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초원의 모든 동물들은 왕을 더욱 존경하고 잘 따르게 될 것입니다."


역시 사자는 동물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코끼리의 말을 듣고서 일리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자는 자기의 분노를 참고 코끼리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초원의 평화는 그대로 유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멀리 달아났던 하이에나는 그 소식을 듣고서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자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에 있는 동물들에게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사자는 겁이 많은 동물이야. 나하고 싸우기가 싫으니까 나를 피하는 거야."


그 소리를 듣고 나이 많은 코끼리가 하이에나를 찾아갔습니다. 코끼리는 자기의 큰 발로 하이에나를 사정없이 짓밟은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똑바로 들어 두어라. 사자가 너 같이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짐승을 정말 두려워해서 참고 있는 줄 아느냐? 사자는 모든 동물의 평화를 위해서 자기의 아픔을 억누르면서 참고 있는 거야!"


여러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평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툼이 있습니다. 싸움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평화를 추구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으로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일의 평화를 위해서 오늘은 싸우고, 다투고,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힘으로서는 이루어낼 수가 없습니다. 시34: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어떤 살인범이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힌 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마치 자기가 억울하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처럼, 분노 속에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살인범의 형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 나라를 위해서 혁혁한 공을 많이 세웠습니다. 그래서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의 형은 자기의 절친한 친구인 주지사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상의를 했습니다. 형은 주지사 친구와 함께 대통령에게 그의 동생을 사면을 해 달라고 청원을 했습니다. 대통령은 살인범의 형이 나라를 위해 세운 공로를 참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동생을 사면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제 살인범의 형은 양복 안쪽 주머니에 대통령의 사면장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동생을 찾아갔습니다. 감옥에서 동생을 만난 형은 제일 먼저 이렇게 물었습니다.


"얘야, 네가 만일 죽지 않고 이곳을 살아서 빠져나간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


그러자 동생은 뜻밖에도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형님, 나는 복수심에 불타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나가는 길로 내게 사형언도를 내린 판사와 법정에서 내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을 찾아가서 총으로 쏘아 죽이고 싶습니다. 그것이 여의치 못하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복수를 해야지 내 직성이 풀릴 것 같습니다."


형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잠시 뒤 형은 동생과 작별인사를 하고서 그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형의 양복 안쪽 주머니에는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사면장이 그대로 들어있었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악한 일을 했습니까? 그럴지라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마십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납해 주십시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의 천사가 하나님의 사면장, 하나님의 축복 장을 받아 쥐고서 우리에게 왔지만 그것을 전달할 길이 없어 그대로 떠나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기차가 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개구쟁이들이 괜스레 지나가는 기차를 향하여 돌멩이질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별생각 없이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기차의 유리창이 깨어지기도 하고, 타고 있던 승객들의 머리가 깨지는 등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그래서 시간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구쟁이들의 장난질은 끊어지지를 않았습니다.


하루는 선생님 가운데 한 분이 좋은 생각을 해 내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철로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기차가 지나갈 때 이렇게 아이들에게 외쳤습니다.


"얘들아! 저 기차를 향해서 손을 흔들어 주자."


그래서 선생님과 더불어서 아이들이 손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열차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도 덩달아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은 손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돌멩이를 던지는 장난질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돌멩이를 던지지 말라’는 말로는 장난질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손을 흔들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으로 바뀔 때, 자연스럽게 돌멩이를 던지는 장난질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악으로 악을 갚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선한 일을 행해 보십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평화를 이루어내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떤 교회 여자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그의 교회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 시누이가 사사건건 저를 간섭하면서 괴롭히는데 못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목사님은 가만히 생각하시다가 마5:44절의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리고 난 후에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이렇게 권면을 했습니다.


"집사님, 그럴수록 시누이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 집사님은 다시금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또 하소연을 했습니다. "목사님, 정말 괴로워 못살겠습니다. 시누이를 위해서 많이 기도했는데 시누이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목사님께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집사님께 물었습니다. "집사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그러자 집사님은 사실대로 답변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누이의 못된 마음을 좀 고쳐달라고 부지런히 기도했지요. 그런데도 시누이의 못된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목사님은 그 이유를 알겠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이 하신 기도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시누이가 잘 되도록 축복하는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그 집사님은 그때부터 시누이를 축복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시누이를 위한 축복 기도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시누이를 축복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축복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마지못해서 드리는 기도였지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그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정말로 그의 마음속에 시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얼마 가지 않아서 진정으로 시누이를 축복하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시누이와의 관계가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불화가 사라지고 그 가운데 평화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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